매일신문

[좋은생각 행복편지] 행복한 나

지난주 수능 시험 날 오전, 시숙모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재수생이었던 사촌 동생의 안부가 궁금했지만 전화를 걸지 못했던 터여서 반갑게 전화를 받았습니다. 숙모님은 편안한 마음으로 수험생을 보내놓고 저희 아이들의 안부가 궁금해서 전화를 했다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최근 만났을 때 저의 표정이 어두웠던 게 마음에 걸린다고 하시면서 밝고 긍정적인 마음을 갖도록 노력하라는 말씀을 덧붙이셨습니다. 긍정적이고 밝은 에너지를 가지면 아이가 곁에 있건 없건 아이에게도 좋은 에너지가 전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에서 수험생의 부모 입장에서도 편안하게 저의 안부를 물을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최근 저의 불안하고 불편한 마음이 주변 사람들에게 들키고 있는 것 같습니다. "눈이 웃지 않고 입만 웃는군요." 얼마 전 사무실의 동료가 제게 한 말입니다. 복도에서 마주칠 때마다 제가 '입만 웃는' 미소를 짓는다는 겁니다. 얼마나 어색했기에 저런 말을 하나 싶어 거울을 들고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웃는 표정을 지어보았습니다. 그 동료의 말마따나 눈은 웃지 않고 입만 웃는 모습이 어떤 걸까. 언제나 사람들로부터 환하게 웃는 인상이 좋다는 평판을 듣고 있었기에 조금은 당혹스러웠습니다.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애써 밝은 표정을 짓고 살아도 마음 깊은 곳까지 밝지 않을 때가 많은 요즘이니 그 기분이 고스란히 얼굴에도 드러나나 봅니다. 책을 한 권 들어도 집중해서 끝까지 읽기 힘들고 글도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갈 뿐입니다. 웬만한 공연이나 전시를 봐도 감흥이 쉽게 오지 않습니다. 이렇게 새로운 게 없다는 게 나이 드는 것인가 싶기도 합니다.

항상 스스로에게 채찍질을 하며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일을 하면서 공부를 병행했고 뭔가 하나를 이루고 나면 또 새로운 목표를 찾았습니다. 그것도 아니면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모임을 갖는 것을 즐겼습니다. 어디서든 나를 필요로 할 것 같았고 또 그들로 인해 배울 점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결혼 후 육아를 병행하면서도 이 모든 것들을 포기하려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주변 사람들이나 친구들로부터 "세 아이를 키우면서 대단하다"는 말을 듣는 것을 즐겼던 것도 같습니다. 그렇지만 정말 대단한 것은 딸을 대신해 세 아이의 육아를 전담해주신 친정 부모님과 그동안 건강하게 잘 자라준 아이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초등학교에 진학하면서, 그리고 아직 어린 막내를 어린이집에 보낸 후부터 조금씩 그 빈틈이 드러나는 것을 느끼게 됐습니다. 첫 아이는 이유 없이 보건실을 자주 드나들고 학교 앞에서 만나는 친구 엄마나 학원 선생님에게 이야기를 주절주절 늘어놓는 아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엄마가 자기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막내는 기침이 떨어질 날이 없습니다. 면역력이 약한 나이인데 단체 생활을 하다 보니 늘 감기를 달고 삽니다. 얼굴에도 크고 작은 상처가 가실 날이 없습니다. 역시나 아직 어린 둘째는 걸핏하면 오줌을 싸는 아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다 제 탓인 것만 같았습니다. 몸과 마음이 피곤하니 남편과의 다툼도 잦아졌습니다. 이제 더 이상 버틸 수가 없구나 싶었습니다. 일을 쉬어야 하나? 어떤 선택을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러던 중 이런 고민들을 모임에서 만난 인생 선배들에게 털어놓아 봤습니다. 저와 비슷한 과정을 겪은 그들은 제게 삶의 방식을 바꿔보라고 조언했습니다.

대신 지금보다는 생활의 중심을 가정과 애들에게로 살짝 이동하되, 남을 의식하기보다는 스스로가 좀 더 행복한 길을 택하라고 조언해줬습니다. 그리고 그들도 역시 엄마가 행복하면 아이들에게도 그 에너지가 고스란히 간다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우선 제 마음부터 다스려야 했습니다. 책상과 수첩 앞에다가 한 구절을 써서 붙였습니다. '행복한 나'라고 말입니다. '행복한'이라는 수식어에서 비롯된 행복이 저를 지배할 것 같아서입니다. 그리고 휴대폰에 저장된 아이 이름 앞에 '사랑스러운'이라는 수식어를 덧붙였습니다. 학교에서든 어디서든 사랑받는 아이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아이 이름을 부를 때도 항상 '사랑스러운'이라는 수식어를 붙여보았습니다. 둘째 아이에게는 '소중한', 막내에게는 '씩씩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였습니다.

그 후로 큰아이는 제게 쓰는 쪽지 편지에도 '사랑스러운 ○○가 엄마에게'라는 말로 마무리 짓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아이에게 '사랑스러운'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행동하면 좋을지를 이야기해주기도 했습니다. 아직은 눈에 보이는 큰 변화가 있지 않습니다. 의식 언어의 지배를 받기 바라며 '행복한' '사랑스러운' '소중한' 그리고 '씩씩한' 우리 가족의 모습을 매일 상상해볼 생각입니다. 그런 긍정의 에너지가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을 믿으면서 말입니다.

임언미/대구문화 편집장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