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최종문의 펀펀야구] 삼성 우승의 원천(상)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관광 명소의 하나인 파리의 에펠탑은 1889년 건립 당시 쓸모없고 흉물스러운 강철 기둥이란 얘기를 들었다. 조롱거리가 된 에펠탑은 이후 철거키로 계획되었으나 그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는 이유로 살아남았고 세월이 흐른 지금은 파리를 대표하는 건축물이 되었다. 위대한 산물의 진정한 가치는 시간이 지나 드러나면서 역사적인 평가를 받는 것이다.

2000년 10월 김응용 감독이 취임한 이후로 삼성 라이온즈는 지금까지 5번이나 우승했다.

호화 멤버로도 원년부터 20년 동안 늘 한국시리즈의 벽을 넘지 못했던 삼성이 2002년 첫 한국시리즈 우승 이후 10년 동안 다섯 번이나 정상에 선 것이다.

누가, 어떻게 삼성 라이온즈를 변화시킨 것일까?

1996년 12월 전수신 사장(7대)이 부임하면서 변화의 서막은 소리 없이 열리고 있었다. 그는 부산 출신으로 서울대 상대에 진학해 총학생회장을 지낸 자존심이 강한 입지적 인물이었다. 졸업 후 10년 동안 중앙일보 기자로 견문을 넓힌 그는 삼성전자로 옮겨 과장에서부터 시작해 이사로 진급했고, 삼성생명과 삼성건설 및 삼성물산의 임원으로 근무하면서 두터운 신임을 얻었다. 우승을 원하는 이건희 구단주의 특명을 받고 왔다는 얘기도 들렸다.

1997년 플레이오프에서 패해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하자 전 사장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변화를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그의 지론은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맛을 알듯 우승도 해본 사람이 방법을 안다는 지극히 단순한 이론이었지만 실제로 실천에 옮길 것으로는 당시엔 아무도 믿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목표는 오직 우승에 있었고 그는 해태 출신의 선수와 코치를 전방위로 스카우트했다.

백인천 감독의 후임 감독으로 내정됐던 권영호 코치를 포기하고 하루 만에 전격적으로 서정환 감독을 발탁한 것도 해태 출신과 친한 서 감독을 통해 이들을 영입하려는 방편의 일부였다.

불편했던 노장 이만수 선수를 비정상적인 수순으로 정리하고, 조계현'이순철을 영입하자 민심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는 우승에 공헌한 바가 없다는 이유로 단호하게 연고지에 대한 정체성을 배척했으며 이듬해 양준혁과 임창용을 트레이드하자 마침내 팬들은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해태 라이온즈니 삼성 타이거즈니 하면서 비난이 쇄도했다.

그러나 전 사장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박차를 가해 김응용 감독까지 이적하는데 동의를 받아냈다. 2000년 늦가을의 일이었다.

그러나 마지막 인사차 들른 박건배 해태 구단주와의 면담에서 자신의 길을 열어주었던 의리를 지켜 김응용 감독은 삼성으로 오지 못했고 기자회견까지 준비했던 전수신 사장은 이로 인해 책임을 지고 후에 사장직에서 물러나고 말았다.

전 사장의 퇴진으로 공든 탑이 무너진 듯 보였다. 그러나 기우였다.

전 사장이 계획한 일은 마무리한 사람은 다름 아닌 김재하 단장이었다.

야구해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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