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 재생불량성 악성 빈혈 고명봉 씨

수혈 받은 17년 세월, 새 삶 다시 찾고 싶지만…

고명봉 씨가 대구가톨릭대병원 주사실에서 수혈을 하고 있다. 고 씨는 수혈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한데다 수혈을 할 수 있는 마땅한 병원이 없어 한 달에 한 번 울진에서 대구로 와 수혈을 하고 한 달을 버티고 있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고명봉 씨가 대구가톨릭대병원 주사실에서 수혈을 하고 있다. 고 씨는 수혈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한데다 수혈을 할 수 있는 마땅한 병원이 없어 한 달에 한 번 울진에서 대구로 와 수혈을 하고 한 달을 버티고 있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지난달 26일 대구가톨릭대병원 사회사업팀 앞으로 한 통의 편지가 날아들었다. 편지의 주인공은 고명봉(43'경북 울진군 온정면) 씨. 편지의 내용은 이러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울진의 작은 마을에 살고 있는 43세 고명봉 입니다. 17년 전 젊은 나이에 재생 불량성 악성빈혈이란 병을 얻게 되었습니다. (중략) 저에게 드디어 골수가 맞는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수술만 하면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숨 쉬고 똑같은 생각을 하며 살 수 있다는 생각에 너무나 기뻤습니다. 하지만 저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수술비가 문제였습니다. 17년 만에 찾아온 기회입니다. 어머니께서는 이제야 아들 병 고칠 수 있다고 그저 눈물만 흘리십니다. 어머니께 남은 세월 건강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고, 맘고생 그만하시고 조금이나마 즐겁게 해드리고 싶습니다.(이하 생략)"

◆살기 위해 오는 곳, 대구

14일은 고 씨가 재생불량성 빈혈 치료를 받기 위해 울진에서 대구로 오는 날이었다. 고 씨는 오전 11시 30분 진료를 위해 울진에서 3시간을 달려왔다. 울진이나 울진 근처 시'군의 병원에는 고 씨와 같은 환자에게 혈액을 수혈해 줄 만한 장비가 없어 먼 길을 달려 대구에 올 수밖에 없다. 담당의사에게 진료를 받고 나면 주사실로 가서 수혈을 한다. 400mL 혈액 2팩을 수혈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4시간. 다음 내원 일은 한 달 뒤. 원래는 1주일에 한 번씩 수혈해야 하지만 병원 오는 일이 너무 힘들어 한 달에 한 번으로 조정했다.

"수혈을 받고 나면 첫 일주일은 그나마 평범한 삶이 가능해요. 그러나 점점 힘이 떨어져요. 한 달이 지나도 수혈을 못 하는 경우가 생기면 온몸에 힘이 다 빠지고 머리가 핑 돌아요. 옆으로 돌아눕는데도 숨이 차고 어지럽죠. '죽을 것 같다'는 게 어떤 것인지 알겠더라구요."

사실 고 씨 형편에 한 달에 한 번 대구로 오는 것도 큰 부담이다. 고 씨가 기초생활수급대상자이기 때문에 급여 항목은 건강보험을 통해 무료로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진료비만 부담하면 되지만 문제는 교통비다. 울진에서 대구로 오는 왕복 교통비만 6만원인데다 점심 식사비와 진료비 등을 모두 합치면 7만원을 훌쩍 넘어간다. 한 달에 기초생활수급대상자 지원금은 26만원. 대구행 한 번에 고 씨 삶의 30%를 걸고 있는 것이다.

◆행복한 삶을 깨트린 병, 빈혈

고 씨는 울진 온정면에서 7남매 중 넷째이자 장남으로 태어났다. 집은 고 씨가 어릴 때부터 찢어지게 가난했다. 매일 이웃집에서 쌀 한 되를 빌려 끼니를 해결해야 할 정도였다. 고 씨의 아버지는 산에서 나뭇짐도 겨우 들고 올 정도로 병약했다. 결국 아버지는 고 씨가 4살 때 돌아가셨고 집안은 가난의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가난한 집안 사정 때문에 고 씨는 고교 3학년 때 중퇴하고 일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전기기사 보조로 일하다가 대구와 경북 칠곡군의 섬유공장에서도 근무했다. 그렇게 9년 동안 일하면서 행복한 삶을 꿈꾸던 1996년 어느 날, 김 씨는 청천벽력같은 말을 들었다. 회사에서 시행한 건강검진에서 '재생불량성 빈혈'이라는 판정을 받은 것이다.

"예전부터 일하면서 조금 어지러운 경우는 많이 있었어요. 그때만 해도 '잘 못먹어 영양이 부족한 탓'이라고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죠. '재생불량성 빈혈'이란 말을 듣자마자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고 씨는 결혼 및 동생들 학자금 등을 위해 아끼고 아껴 모아둔 수천만원을 모두 치료비로 사용했다. 그리고 그 후에도 2주마다 180만원이 넘는 약값을 지출해야 했다. 치료를 위한 무균병동 입원비까지 합치면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고, 결국 몇 달 만에 치료를 포기해야 했다. 그러나 고 씨는 1년 뒤 다시 쓰러져 치료를 받아야 했다.

재생불량성 빈혈로 인한 어지럼증과 무기력 때문에 더는 섬유공장 일은 할 수 없었다. 결국 일용직 중에서도 신호수 같이 힘이 덜 드는 일로 생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고, 고 씨의 사정을 아는 주변 사람들은 고 씨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고 씨를 불러 일을 맡겼다.

고 씨는 홀로 당뇨를 앓고 있는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병을 앓기 전엔 결혼하려 했지만 '몸이 아픈 자신에게 누가 오겠나'는 생각과 가난한 자신의 형편 때문에 결혼에 대한 생각을 접었다. 고 씨는 "어머니가 절 볼 때마다 '어쩌다 집안의 큰아들이 이렇게 됐나'며 '내가 박복한 탓'이라고 자기 탓을 하신다"고 안타까워했다.

◆골수기증자 나타났지만…

지난달 고 씨에게 희소식이 전해졌다. 고 씨에게 맞는 골수 기증자가 나타났다는 소식이었다. 그러나 고 씨는 이내 낙담했다. 수술비가 무려 1천300만원이 넘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대구가톨릭대병원에 간절히 도움을 요청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고 씨의 골수이식 수술은 내년 1월로 잡혀 있다. 1월 1일에 입원하지만 입원 후 40일 내에 입원비를 마련하지 못하면 수술을 받지 못한다. 일단 기증자와 본인 검사비용 200만원과 수술 착수비용 700만원이 발등에 불이다. 설령 수술에 들어간다 해도 2년간 추가 치료가 이어지기 때문에 치료 비용 마련이 막막할 뿐이다.

고 씨의 형제들도 고 씨를 도와줄 만한 형편이 안 된다. 다 생계가 어려운데 파산 선고를 받은 경우도 있다. 그나마 한 누나가 "치료비를 도저히 마련할 수 없으면 내가 대출이라도 받아서 대주겠다"고 말하긴 했지만 이 누나 역시 사업 때문에 이곳저곳에서 받은 대출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 손을 벌릴 수가 없다.

"치료만 잘 되면 결혼도 해보고 싶다"는 게 고 씨의 소박한 바람이다. 골수이식만 받으면 한 달에 한 번씩 고생하면서 대구로 오지 않아도 되고 결혼해서 부인과 함께 열심히 일하면서 어머니 모시며 행복하게 살 자신이 있다. 그러나 당장 고 씨의 눈앞에 닥친 벽이 너무 높다. 수술 날짜는 하루하루 다가오는데, 골수이식만 하면 살 수 있는데 벽 넘어 '새 삶'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다.

이화섭기자 lhsskf@msnet.co.kr

※이웃사랑 계좌는 '069-05-024143-008(대구은행), 700039-02-532604(우체국) ㈜매일신문사'입니다.

※매일신문·대한적십자사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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