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론] 재벌 때리기만으로는 일자리 창출 어렵다

#1. 올해 대선에 나선 후보들의 경제공약의 최대 화두는 경제민주화와 일자리 창출이다. 그리고 경제민주화의 중심에는 어김없이 재벌 때리기가 있다. 글로벌 경기침체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서 재벌 때리는 경제민주화로 과연 일자리가 창출될까? 경제민주화 공약은 강자는 때리고 약자는 도와줘야 한다는 이분법적 틀에 갇혀 있다. 물론 이렇게 하면 아픈 배가 덜 아플지는 몰라도 고픈 배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30대 재벌기업의 해외직접투자가 국내에 유입된 해외직접투자를 상회하고 있는 것을 보면 굳이 지방자치단체들이 해외 기업들의 유치에 동분서주할 필요없이 재벌기업의 국내투자만 유치해도 일자리 문제가 상당 부분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선거철만 되면 재벌기업을 과욕과 탐욕의 집단으로 매도하는 상황에서 어느 재벌기업이 선뜻 투자를 하겠는가? 분명한 사실은 재벌기업이 상당한 현금을 쌓아두고 있으면서도 투자를 미루고 있다는 점이다.

#2. 워런 버핏이 투자한 것으로 유명한 절삭공구 생산업체인 대구텍의 경우 절삭공구제조라는 업종 특성상 500여개의 벤더기업들로부터 납품 혹은 제품을 공급하는 광범위한 기업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들 벤더기업에 고용된 인력은 약 1만2천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뿐만 아니라 '옥색치마'라는 지역 케이터링 업체가 3교대로 근무하는 대구텍 직원들을 위하여 양질의 음식을 납품하고 있으며, 이 케이터링 업체는 지역 농민들로부터 채소류, 쌀 및 기타 육류 등을 구입하고 있다. 이렇듯 지역의 제대로 된 핵심기업(key company) 하나는 1차, 2차, 3차산업에까지 걸친 다양하고도 양호한 기업생태계를 구성하여 고용창출과 성장 및 살기 좋은 지역만들기에 크게 기여한다.

#3. 청년 구직자들은 "중소기업이 괜찮은 일자리도 제공하지 않으면서 임금도 적게 준다. 차라리 실업상태로 머무르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반면 구인 중소기업들은 "제대로 역량도 갖추고 있지 않으면서 눈만 높아 높은 임금만 요구한다. 자동화 등을 통해 최대한 사람을 적게 쓰고 돈 좀 벌면 적당한 시기에 사업을 접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분명한 사실은 청년들은 제대로 된 일자리와 일정 수준 이상의 임금을 주면 일할 의지가 있으며, 중소기업은 제대로 된 역량과 열정만 있으면 충분한 임금을 줄 의지가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지역중소기업의 일자리 미스매치 문제를 해결하고 나아가 제대로 된 핵심기업유치를 통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을까? 해법은 미우나 고우나 재벌기업과 경제민주화를 외치고 있는 정치인들에게 있다.

재벌기업을 매도하고 때리기만 할 것이 아니라 재벌기업의 공(功)은 인정하고 과(過)는 개선토록 하여야 한다. 즉 재벌기업으로 하여금 자체 투자뿐만 아니라 지역에 납품 중소기업을 육성하도록 유도하여야 한다. 또한 중소기업 상생협력기구를 구축하여 고용경영자의 성과 평가 항목에 중소기업 상생지표를 포함함으로써 상생협력 정도를 상시 체크하여 오너의 상생의지와 관계없이 협력 중소기업 불공정하도급 및 납품단가 후려치기 등과 같은 왜곡현상을 방지하여야 한다.

특히 임금 가이드라인을 엄격하게 실시하여 이들 협력 중소기업들의 임금수준이 재벌기업의 최소 80~90%에 이르게 하여야 한다. 청년구직자는 자연스럽게 이들 중소기업에서의 근무를 선호하게 될 것이고, 이것이 다시 전체 중소기업의 임금인상을 견인하여 지역의 청년 구직자들이 지역 중소기업에서 일하게 되는 선순환 구조를 확보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재벌기업의 지역 임금주도형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정치권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치권이 재벌기업을 타깃으로 때리기만 일삼는 무책임한 '재벌 타도'가 아니라 재벌을 설득하여 재벌과 함께 진지하고 생산적인 논의를 통한 '재벌 활용'에 정치력을 발휘하여야 한다. 이제 우리 정치권도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사람들이 고유한 능력과 미덕을 계발하게 만드는 것, 곧 공동선을 고민하고, 판단력을 기르며, 시민 자치에 참여하고, 공동체 전체의 운명을 걱정하게 하는 것이다"라는 정치의 목적에 충실하길 기대한다.

이재훈/영남대 교수·경영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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