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의 경영컨설팅 회사인 액센츄어가 몇 해 전 '망하는 기업 10대 전조'를 발표한 적이 있다. '능력에 넘치는 일을 지나치게 벌인다''변화를 꺼린다''싸움질에 바람 잘 날 없다''조직 내에 말이 통하지 않는다''나 아니면 안 된다는 고집을 부린다' 등이 대표적인 증상으로 꼽혔다. 권위주의와 불통이 조직의 혈관을 막고, 변화를 두려워하고 혁신에 둔감한 체질로 고착됐다면 그 기업은 망할 수밖에 없다는 소리다. 이는 기업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조직, 집단에도 해당되는 경고다. 이런 징조가 나타나면 누구든 위기에 직면하고 재앙을 부를 수밖에 없는 게 이치다.
지금 대한민국 검찰에 '망하는 조직'의 전조가 엿보인다. 9억 원대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된 김광준 검사 비리사건으로 검찰이 '도덕절벽'(moral cliff), '신뢰절벽'의 상태에 놓인 것도 그렇다. 검찰총장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검찰 내부에서는 자성의 목소리가 일고 있다. 어느 일선 검사는 내부통신망에 "검찰의 끝없는 추락에 현기증이 날 정도"라며 탄식했고 "김 검사가 선배라는 게 미치도록 부끄럽다"고 했다. "부장검사 이상 모든 간부와 지휘부가 용퇴하자"와 같은 댓글도 나왔다. 하지만 검찰의 이런 자성론은 새로울 게 없다. 일 터지면 어김없이 자성론이 쏟아져 나왔고 제도도 바꿨다. 하지만 타성에 젖은 검찰 조직에서 일어난 변화는 없었다. 이러니 "우리나라에서 제일 먼저 바뀌어야 할 조직이 검찰"이라는 소리가 검찰 내부에서조차 서슴없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검찰총장이 되기 전인 지난해 2월 한상대 서울중앙지검장은 취임사에서 "검찰이 무능하면 국민은 불안하고, 검찰이 깨끗하지 못하면 국민은 분노한다"며 "지금 검찰은 위기에 처해 있다"고 말했다. 뭔가 잘못돼 가고 있다는 것은 아는데 그가 총수 자리에 올랐어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스폰서 검사 사건에다 그랜저 검사'벤츠 여검사 사건에 이르기까지 검찰은 도덕성에 치명상을 입고 계속 비틀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번에 김 검사 비리사건까지 터졌다.
대한민국 검찰은 국민 누구나 인정하는 인재 집단이다. 사회정의를 구현하고 국가 기강을 바로잡는 파수꾼들이 모인 엘리트 집단이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많은 일들을 해냈고 지금도 불철주야 애쓰는 검사들도 많다. 그런 검찰 조직에 왜 망조가 들었을까. 원인을 알아야 처방이 나오고 죽든 치료하든 방법이 나올 것이다. 김 검사 비리사건 수사를 맡은 특임검사의 발언에서 단초를 찾을 수 있다. 경찰과 검찰의 이중 수사 논란에 '의사가 간호사보다 낫다.'고 한 발언이다. 지나친 엘리트 의식에서 은연중 권위 의식이 표출된 것이다. 최악의 말실수라는 내부 반응도 있지만 헛말이 아니라 현실이다.
인간 심리의 기원을 탐구하는 진화심리학에 '원시인 심리' 이론이 있다. 원시인은 어떤 대상을 평가할 때 감정이 먼저 반응해 판단하고 이성적 사고가 이를 뒤따르는 경향이 있는데 '맞다 틀리다' '옳다 그르다'보다는 감정적으로 '좋다 나쁘다' '불쾌하다 유쾌하다'를 기준으로 판단한다는 것이다. 학자들은 이를 오로지 생존에 적합하도록 진화된 원시인의 뇌 상태와 심리 구조 탓이라고 설명한다. 검찰이 이런 원시인 심리 상태에 놓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잘못된 의식, 상대를 무시하는 편견이 검사 집단에 깊게 뿌리박혀 있는 것이다. 검찰이 지금 벼랑 끝에 서게 된 이유는 판사에 굽히지 않고 경찰에 허세 부리면서 겸손하지 못했던 탓이다. 따라서 일부 검사의 부패는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검찰의 의식문제에서 그 이유를 찾아야 한다. 일을 그르친 주요 요인은 여기에 있다. 시진핑 중국 총서기는 최근 지도부 교체 후 "음식은 반드시 썩은 다음에 벌레가 생기는 법"이라며 "사익을 위해 권력을 남용하고 특권을 주장하는 행위는 절대로 허용하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지금 우리 검찰에게 대신 해주고 싶은 말이다. 기업으로 치면 현재 검찰은 가격에만 매달리는 삼류 기업과 같다. 이류는 품질, 일류는 감성에 최우선 가치를 둔다. 검찰이 계속 감성(신뢰)이 아닌 품질(능력)과 가격(권위)에 사활을 건다면 희망은 없다. 노엄 촘스키는 "재앙을 맞기 전에 위기를 다뤄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 검찰이 무엇을 해야 할지 답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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