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뮤직토크] 롤링스톤즈(하)

동네 밴드로 시작…음악계에 큰 족적 남겨

미국의 음악전문채널 VHI에서 조사한 20세기 최고의 록음악 1위에 오르기도 한 '(I Can't Get No) Satisfaction'의 대히트로 롤링스톤즈는 비틀스에 견줄 만한 영국 밴드 반열에 오른다. 호사가들이야 비틀스가 구축한 강역 안에 편입된 영국 밴드로 수다를 떨었겠지만 당사자들이야 기분 좋을 리 없었을 텐데 사실 1960년대까지 롤링스톤즈는 비틀스를 의식한 활동을 한다. 예를 들어 존 레논과 폴 메카트니가 공동 작곡 시스템을 갖추자 믹 재거와 키스 리처드도 이를 흉내내게 된다.

이 과정에서 밴드는 첫 번째 시련을 겪게 되는데 그 전까지 밴드의 중심이었던 브라이언 존스(Brain Jones)과의 갈등이 시작된다. 브라이언 존스는 거의 모든 악기를 다룰 수 있을 만큼의 천재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는데 술과 약물에 찌든 일상이 반복되었고 이기적인 성향 탓에 멤버들과 불화가 잦았다. 결국 밴드가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던 1960년대 후반에는 탈퇴나 다름없는 존재였고 공식적으로 밴드를 떠난 지 한 달이 지난 1969년 7월 3일, 자택 수영장에서 익사체로 발견된다.

브라이언 존스의 사망은 팬들에게는 충격적인 일이었지만 이미 최고 반열에 오른 밴드에게는 타격이 크지 않았다. 오히려 믹 재거와 키스 리처드가 중심이 된 밴드 진용은 탄탄한 팀워크를 보였고 브라이언 존스의 후임으로 영입한 믹 테일러(Mick Taylor)는 블루스 브레이커스에서 에릭 클랩톤의 빈자리를 메울 만큼 탁월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진짜 충격은 1969년 12월에 일어난다. 비록 그 해 최고의 음악축제였던 우드스톡에 초대받지는 못했지만 전미 투어를 연일 매진으로 장식하던 롤링스톤즈는 대미를 무료 콘서트로 장식한다. 1969년 12월 6일, 캘리포니아주 앨터몬트 고속도로에서 가진 무료 공연에는 30만 명의 인파가 몰려 아수라장이 되었고 흥분한 관중 가운데 흑인 청년이 경호팀 헬스엔젤스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후에 흑인청년이 총기를 사용하려 했다는 증거가 나오기는 했지만 이 사건으로 미국에서 추방을 당하는 등의 시련을 겪게 된다.

'앨터몬트의 비극'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미국 보수층에게 록음악을 공격하는 빌미를 제공한다. 존 레논의 정치적인 발언 등으로 록음악에 대해 신경질적이던 보수 집단은 항상 사고를 몰고 다니는 롤링스톤즈를 정치적으로 이용했지만 인기는 수그러들지 않았다. 특히 1970년대 들어 쏟아지는 걸작은 롤링스톤즈를 흑인음악을 잘하는 밴드에서 하드록적인 면모까지 갖춘 밴드로 탈바꿈시키는데 'Sticky Fingers', 'Exile On Main Street' 같은 앨범은 지금까지 록의 고전으로 여겨지고 있다.

비틀스와 마찬가지로 동네 밴드에서 시작한 롤링스톤즈는 50년의 세월 동안 누구도 이루지 못한 업적을 음악계에 남겼다. 타협하지 않고 자신들의 방식만을 고민해 온 흔적은 50주년 기념앨범 'GRRR!'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로큰롤이 뭔지 알고 싶나? 50년을 쫓아가려면 시간이 좀 필요하겠지만 'GRRR!' 만으로도 충분하다.

권오성(대중음악평론가 museero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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