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는 밤이 더 아름답다. 능과 조명이 어우러진 대릉원의 능선은 신비함 그 자체다. 마치 어머니의 젖무덤처럼 부드럽고 평온한 모습이다. 은은한 조명을 받은 첨성대는 밤의 여신이다. 마치 도공이 정성 들여 빚은 고려청자 같은 신비함이 담겨있다. 아름다운 여인의 우아한 자태와도 닮았다.
사람들은 "경주는 즐길거리가 너무 적다"는 말을 쉽게 한다. 하지만 경주를 제대로 둘러보지 않고 겉모습만 슬쩍 훑어 본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경주의 참 모습을 보려면 적어도 일주일 이상은 머물러야 한다. 여유롭게 경주의 곳곳을 둘러보면 역사 공부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경주에서 밤은 화려하고 고고하다.
경주의 아름다움은 보문호에서 시작한다. 오리배가 유유히 떠다니던 보문호에 어둠이 내리면 주변의 건물에서 하나둘씩 화려한 불빛을 밝힌다. 고즈넉한 호수에 오색빛깔이 물속에 잠겨 한 폭의 수채화가 펼쳐진다. 낮에 경주 남산과 보문호수, 역사박물관을 둘러본 후 밤에는 조금 여유롭게 달빛 산책을 즐겨보자. 대부분 낯선 여행지를 방문하면 해가 지기 전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 돌아다니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경주는 낮에는 낮대로, 밤에는 밤만의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경주의 야경에는 대도시의 휘황찬란한 상업용 네온사인은 없다. 대신 신라촌의 은근한 분위기가 있다. 저녁을 먹은 후 느긋하게 대왕릉과 첨성대, 안압지에 가보면 지금껏 느껴보지 못했던 경주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야경 즐기기
경주의 밤 풍경 취재를 위해 지난주 수요일 경주를 찾았다. 관광객들은 밤 풍경을 더욱 좋아하는 듯하다. 차가운 날씨도 아랑곳 않고 서울 강서구 송정초교와 상일초교 학생 수백 명이 경주의 야경을 둘러보며 탄성을 지르고 있었다. 경주의 야경은 반월성에 조명이 들어올 때 시작된다.
야경의 절정은 안압지다. 안압지에 들어서는 순간, 그 화려한 자태에 넋을 잃을 정도다. 은은한 불빛과 연못 속에 비친 누각이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마치 도화지 반쪽에 그림을 반대 편에도 찍어내는 '데칼코마니'같다.
안압지는 경복궁 경회루 연못과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궁궐 연못이다. 원래 이름은 월지(月池)였으나, 조선시대에 이르러 폐허가 되고 기러기와 오리들이 많이 날아들어 안압지(雁鴨池)로 불리게 되었다. 연못 서쪽의 건축물들은 1975년 발굴조사 때 26동의 건물 흔적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현재의 건물은 1980년 연못 서쪽의 5개 건물 중 일부인 3개 동을 복원한 것이다. 안압지는 연못 자체로도 빼어난 풍광을 만들고 있다. 하지만 의도적으로 한 곳에서 연못 전체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경주시는 안압지의 복원사업을 계속하고 있다. 그 완성된 모습이 궁금해진다. 물갈이를 위해 물을 뺐던 안압지는 요즘 물채우기를 계속 하고 있다.
들판에 홀로 서 있는 첨성대는 밤이 되면 또 다른 모습을 드러낸다. 화사한 조명을 받은 모습은 마치 여인의 가녀린 허리의 곡선을 떠올리게 한다. 낮엔 느낄 수 없었던 오묘한 모습이다. 보는 사람마다 모두 탄성을 지른다.
첨성대는 천체의 움직임을 관찰하던 신라시대의 천문관측대다. 받침대 역할을 하는 기단부 위에 술병 모양의 원통부를 올리고 맨 위에 정(井)자 형의 정상부를 얹은 모습이다. 높이는 9.17m이다. 천문학은 하늘의 움직임에 따라 농사 시기를 결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농업과 깊은 관계가 있다. 저 멀리 불빛에 비친 대왕릉의 자태가 정겹게 펼쳐져 있다. 그곳으로 발길을 옮긴다. 경주의 야경을 보러 서울에서 온 김인철(38)'최희수(36) 씨 부부는 "외국으로 멀리 여행을 갈 필요가 없다. 경주의 밤 풍경은 세계 최고의 풍광"이라고 찬사를 한다.
사진'박노익 선임기자 noi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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