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우리 가족 이야기] 농촌 할아버지댁 일손돕기 2박3일

우리는 매주 금요일 저녁때가 되면 할아버지가 계신 경남 합천으로 간다.

금요일 오후가 되면 주말을 함께 하자는 친구들의 '카톡'소리가 요란하지만, 나는 숙제 할 것과 수학 문제집을 챙기고 밑반찬 준비 하시는 엄마를 도와야 한다.

계속 투덜대는 오빠를 향해 "내년에 고등학교 입학하면 가고 싶어도 시간 없어서 못 가니까 암말 말고 가자. 넌 우리 집 장손이잖아"하며 달래는 엄마도 주말마다 가는 것이 피곤할 것이다.

나와 오빠는 주말이면 친구들과 놀고 싶고, 방에서 뒹굴면서 게으름도 피우고 싶지만 온 가족이 움직이는 일에 동참해야 하니 시골에 도착할 때까지 늘 볼이 부어 있다.

그러나 막상 할아버지 댁에 도착하면 둘 다 언제 그랬냐는 듯 시골 풍경에 반해버린다.

지난주 덜 익은 옥수수를 한 소쿠리 쪄 먹고 왔는데, 어느덧 가을이 깊어 곡식들이 탱글탱글하게 다 익었다.

할아버지께서는 손수 옥수수를 엮어 말려 두셨고, 겨우내 먹일 소여물을 준비하고 계셨다.

영화 '워낭소리'에 출연한 소와 쏙 빼 닮은 소는 내가 휴대폰을 꺼내 들자 고개 들어 포즈를 취해 주었고, 마당과 골목이 구분 없이 펼쳐진 할아버지 댁에는 소와 개, 염소와 닭이 한데 어우러져 놀기도 한다. 이들도 모두 소중한 우리 가족이다.

일손이 모자라는 농촌에서는 짐승들을 놀리지 않는다고 하는데도 오빠에겐 특혜를 주었다.

수학 문제지를 끌어안고 끙끙대던 오빠가 "차라리 일 하는 게 훨씬 낫다"면서 벼를 베러 나왔다. 이렇게 2박 3일을 보내고 돌아오면 처마 아래 매단 옥수수 알맹이처럼 몸도 마음도 단단해지는 것 같다.

양선미(대구 달서구 용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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