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차별과 역차별
고3 딸, 금지옥엽 막내아들, 그 중간에 공부에 취미 없고 꾸미기 좋아하는 딸이 있다.
자기 방을 꾸미는 것은 물론이고 얼굴과 몸매를 가꾸기를 일 순위로 꼽는 둘째 딸은 키가 언니보다 머리 하나만큼 더 크고 성격은 바지 입으면 남자고, 어쩌다 치마 입는 날은 여자다. 이런 둘째는 온 식구와 옥신각신하며 독특해서 그 누가 이겨낼 재간이 없다. 그러나 경우에 벗어난 행동은 하지 않으나 워낙 개성이 강해서 함께 묻어갈 줄 모른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언니가 고3이라 그 뒷바라지 하는 엄마가 힘든다며 공부는 뒷전이고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 성실한 아이로 변했다. 퇴근하고 오면 어느새 시장 다녀와서 청소해놓고 저녁 준비하는 딸에게 고마움보다는 중간고사를 앞두고 시험 준비를 하지 않는다며 되레 화를 내기도 했다. 그런데도 너털웃음을 지으며 "공부는 학교서 다 했다"며 식탁을 닦고 있기에 "너는 배알도 없나?"했더니 그래도 애타게 여기지 않는다.
그날 이후 어느 정도 체념을 할 수 있었고 공부하기 싫으면 일이라도 해야지라는 생각에 둘이서 마트에 쇼핑하는 일이 잦아졌다. 그러다 보니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며 소소한 얘기를 주고받으며 대화를 많이 하게 되었는데, 고3 딸이 "엄마는 동생만 좋아한다"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작은딸이 시원하게 한 방 날렸다. "이제 수능 시험 끝났으니 언니가 밥하고 빨래하고 해라. 나도 공부 좀 해야겠다. 이제 언니가 내 뒷바라지 좀 해도"
말을 해도 시원시원하게 하고 때로는 말 안 들어 밉기도 했다마는 그래도 엄마 심정 잘 알아주고, 헛말이라도 성공해서 이 엄마에게 용돈 많이 주겠다는 말을 자주 해준다.
공부 안 하고 어떻게 성공할 수 있을는지 궁금했는데, "공부 말고도 할 일이 천지다"라고 하던 아이가 이제 공부 좀 해야겠다고 하니 얼마나 기특한지. 예선아, 엄마는 네가 있으므로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단다. 내 딸로 태어나 줘서 정말 고마워.
류승찬(대구 수성구 범어3동)
♥시1-박하분(薄荷粉)
어머니는 안방에 밥상 차려 놓고
새초롬한 표정으로 부뚜막에 오도카니 앉아있었다
어젯밤 늦게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들어오는 아버지를 향해
-이래 살 바엔 차라리 날 주기뿟소오
패악스럽게 달겨들자 아버지는 갈꽃 빗자루로
어머니의 등짝을 사정없이 후려갈겼다
그리곤 빗자루를 방바닥에 내던지며
-무슨 놈의 고집이 쇠심줄보다 더 질긴 기라
갈꽃 부스러기가 먼지처럼 흩어졌다
몇 밤이 지났을까
보름달이 불그스레 농익을 무렵
늑대가 뒷산 언덕배기에 와 울면
큰언니와 작은언니, 남동생 쫄래미
솜이불 머리끝까지 당겨 덮고 발 장난치며 키득거렸다
뜨개질하던 어머니는
-얼른 자! 빨리 안자면 늑대가 물어 간다아!
실눈을 뜨고 자는 척하자 그제야 어머니는
뜨개질 멈추고 살며시 아버지 방으로 건너갔다
장닭이 살구나무 가지 위에서
목청 끊어질 듯 우렁차게 울던 다음날 아침
거울 앞에 앉아 해실해실 웃는
어머니 몸에선 박하분 냄새가 났다
정은덕(대구 수성구 수성1가)
♥시2-가을의 끝자락에서
일요일 날 산행을 갔다
지리산 성삼재 가는 길목에는
곱디고운 단풍이 물들어 가고 있었다
온산이 오색병풍을 보듯이 아름답고 고왔다
성삼재에서 노고단을 올라가 보니 겨울이었다
칼바람이 얼마나 세든지 날아갈 것만
같았고 귀안이 멍 했다
우리의 삶도 한치 앞을 볼 수 없듯이…
나에게 주어진 순간순간의 행복을
누리고 창조하며 지혜로운 삶을 살면서
행복한 이기주의자로 살아야겠다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우리 집 정원에는 빨갛게 익은 석류가
터질 것만 같다
남천열매도 가을햇살에 빨갛게 익어간다
혼자 보기가 아깝다
조롱박과 줄꽈리 덩굴도 걷어야겠지
오늘은 노랑나비까지 날아와서
국화꽃 등등 아름다운 꽃 위에 살포시 앉는다
행복하고 고운 가을의 끝자락을 느껴본다
고말순(대구 달서구 송현동)
♥고향 집
집 앞 은행잎들이
모두 떨어지고
앙상한 나뭇가지만 남았다
차다…
공기도 세상도
굴뚝으로 뿜어 나오던 냄새
그리워라
아버지 저녁 답
베러 가신 소 풀로 끓이신
소죽 냄새에
무겁던 솥뚜껑도 이내 열린다
구수하기도 하여라
저, 나뭇가지 찬바람에라도 매달려
에미 계신 고향에 가
굴뚝 연기 매워도
마음만은 다시
구수해지고 싶구나.
양후경(안동시 운안동)
※지난주 선정되신 분은 정창섭(밀양시 삼문동)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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