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콘서트를 만난 강연, 하품을 쫓는 명품 '쇼'가 되다

강연콘서트, 인기몰이 비결은

'콘서트'(concert)란 청중을 대상으로 음악을 들려주는 실시간 공연을 뜻한다. 그런데 음악 이외에 다른 요소가 섞이면 콘서트는 성립하지 않는다. 음악에 춤과 연기를 곁들이면 '뮤지컬'(musical)이 된다. 장르의 틀을 구분하는 엄준한 작명의 법칙인 셈. 이러한 오랜 작명의 법칙을 깬 '강연 콘서트'가 최근 유행하고 있다. 말 그대로 강연을 들려주는 공연이다. 주로 20, 30대 청년들을 대상으로 '음악'보다 더 재미나고 흥겨운 '이야기'의 향연을 펼치며 새로운 '소통의 장'으로 각광받고 있다.

◆흥행하는 작명의 법칙, '콘서트'

콘서트의 오랜 작명의 법칙을 깬 원조는 사실 KBS '개그 콘서트'다. 1999년 첫 방송된 이후 현재 우리나라 대표 개그 프로그램으로 자리 매김했다. 개그 콘서트는 서울 대학로의 소극장에서 과거 유행했던 '스탠드 업' 형식의 개그 공연을 방송 무대에 올린 것이다. '무대'와 '청중'이라는 요소는 일찌감치 콘서트 개념과 일맥상통했던 셈이다.

이후 콘서트라는 단어 앞에 음악 이외의 '장르'를 붙이는 작명은 출판계에서 먼저 유행했다. 시초는 물리학자 정재승 교수가 2001년 펴낸 교양과학서인 '과학 콘서트'다. 물리학으로 사회 현상의 이면을 알기 쉽게 풀이한 내용을 담은 책이다. 제목은 책의 구성이 콘서트 형식인데서 나왔다. 차례를 살펴보면 '비바체 몰토'(vivace molto'아주 빠르고 생기있게)의 1악장으로 시작해 '알레그로'(allegro'빠르고 경쾌하게)의 4악장으로 끝이 난다. '후기'격인 '앙코르'(encore)도 있다. 사실 정 교수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개그 콘서트를 좋아한다"고 밝힌 적이 있다. 이후 '경제학 콘서트' '철학 콘서트' '수학 콘서트' 등 다양한 교양서가 잇따라 출간됐고, 일명 '콘서트 작명'은 베스트셀러의 공식이 됐다.

이러한 트렌드가 책이 아닌 실제 콘서트로 구현되며 지금의 강연 콘서트 붐을 일으킨 시초는 '토크 콘서트'라는 콘셉트를 내세운 '희망공감 청춘 콘서트'다. 지난해 6~9월 27차례 걸쳐 전국 25개 도시에서 진행된 강연회다. 안철수 당시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과 박경철 경제평론가가 공동 주최했고, 조국 서울대 교수, 배우 김여진 씨, 방송인 김제동 씨, 법륜 스님 등이 게스트로 참여했다.

주최 측이 밝힌 청춘 콘서트를 만든 계기는 당시 카이스트 학생들의 잇따른 자살과 사회에 만연했던 비싼 대학 등록금에 대한 성토 분위기 등이었다. 강연자들은 '인생과 사회에 대한 비전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취지로 무대에 올랐다. 그러면서 청춘 콘서트는 단 3개월의 짧은 진행 기간 동안 전국 대학생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후 청춘 콘서트를 벤치마킹한 각종 강연 콘서트가 속속 나타나기 시작했다.

◆강연 콘서트의 인기 비결은?

청춘 콘서트는 강연 콘서트 붐을 일으킨 것뿐만 아니라 형식의 전례도 남겼다.

하나는 강연진이 '재능기부' 형식으로 참여한다는 것이다. 재능기부는 1회성 금전 기부에 비해 각자의 전문성을 살리고, 지식을 바탕으로 지속적인 기부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 단계 진화한 기부 모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면서 청중은 전문지식 강연에 쉽게 접근하고, 강연자는 '기부할 줄 아는 지식인'의 이미지를 남기며 인지도를 높이는 등 서로 '윈윈'(win-win)할 수 있단다. 우리 지역에서 강연 콘서트를 개최하고 있는 청년창업기업 '메이커스'의 우상범 대표는 "강연 콘서트를 기획하던 초기에는 강연자 섭외가 힘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강연자들이 재능기부 형식으로 참여하고 싶다며 먼저 연락을 한다"고 말했다.

또 하나는 주요 청중이 사회 진출 직전 청년들이어서 강연이 '멘토'(강연자)와 '멘티'(청중) 구도에서 일종의 '멘토링'으로 진행된다는 점이다. 멘토링이란 조언자, 상담자, 후원자 역할을 하는 멘토가 멘티를 이끌어주는 활동을 뜻한다. 고대 그리스신화에서 오디세우스가 전쟁에 나가기 전 아들을 보살펴달라며 친구에게 맡겼는데 그 친구의 이름이 바로 멘토였다. 유래에서 보듯이 원래 멘토링은 일대일 구도가 기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교회 등에서 일부 있었던 것이 2000년대 초반부터 기업과 대학에서 멘토링 개념을 도입해 청년들의 인재육성의 하나로 활용하며 유행했다. 그랬던 것이 일대다수의 구도로 강연 콘서트에 녹아들었다는 분석이다.

그러면서 멘토링 강연의 주요 콘텐츠로 선택되고 있는 것이 '힐링'(마음의 치유) 트렌드다. 대학생 곽정민(24'여'대구 수성구 황금동) 씨는 "강연자들이 막연히 '열심히 하면 된다'고 강조하기보다는 '조곤조곤' 대화를 나누듯 청년들의 문제에 공감해 주면서 해법을 제시한다"며 "청중으로 앉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받고,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명품 강연' 전시회

청춘 콘서트 말고도 요즘 강연 콘서트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요소가 있다. 미국에서 먼저 붐을 일으킨 TED(테드) 강연이다. TED란 Technology(기술)'Entertainment(오락)'Design(디자인)의 앞글자를 합친 것으로 관련 분야의 강연회를 개최하는 미국의 비영리재단이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 침팬지 연구가 제인 구달 등 세계적인 저명인사들이 강연을 하며 TED는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런데 아무리 유명한 강연자라도 18분 안에 강연을 모두 마무리해야 한다. 그래서 강연자들은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으면서도 청중의 뇌리에 강렬하게 남을 만한 표현을 선택해 강연을 구성했다. 그러면서 TED 강연은 '18분의 마법'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메이커스가 지역에서 개최하고 있는 강연 콘서트에는 보통 네 팀 정도의 강연자가 무대에 서는데 강연 시간은 각자 30분을 넘기지 않는다. 그리고 네 팀 중 한 팀은 뮤지션을 섭외해 쉬어가는 페이지 겸 음악 콘서트를 펼친다. 그러면서 강연 전체적으로 전혀 지루할 틈 없이 구성된단다.

청중들은 강연을 즐기면서 강연의 '품질'도 벤치마킹 한다. 대학생 이진영(25) 씨는 "프레젠테이션과 스피치 능력이 대학 수업에서는 학점을, 기업 면접에서는 취업 당락을 좌우한다"며 "강연 내용에도 관심을 기울이지만 전문 강연자들의 '짧고 효과적인' 강연 능력을 배우기 위해 강연 콘서트를 찾고 있다"고 했다.

◆사회 곳곳으로 퍼지는 강연 콘서트

기업도 강연 콘서트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내부적으로는 직원 재교육이나 결속 도구로 활용하고, 외부적으로는 사회 기여 프로그램으로 활용하고 있다. 주요 청중이 되는 청년들에 대한 소구 전략도 들어 있다. 한 기업 관계자는 "미래 고객 혹은 기업 인재인 청년들에게 좀 더 친근하게 다가서는 방법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최근 대선 후보들도 청년 유권자들을 만나는 행사 이름마다 '콘서트'를 붙이고 있다. 기존 일방통행 유세와 달리 청중과 교감하는 한국판 '타운홀 미팅'(정책 결정권자 혹은 선거 입후보자와 시민들 간에 자유롭게 의견을 주고받는 미국식 공개토론 방식)으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TV 방송에서는 강연 콘서트 형식을 신설 강연 프로그램에 도입하고 있다. TVN '스타 특강쇼', KBS1 '강연 100℃', MBC '세상에 하나뿐인 강의' 등은 모두 최근 1년 사이에 신설됐다.

이러한 사회 곳곳의 강연 콘서트 붐에 대해 실제로 국내 강연 콘서트에 활발히 참여하고 있는 윤호상 인사PR연구소 소장은 "외국에서 '배움을 즐겁게'라는 구호로 먼저 바람이 불기 시작한 '에듀테인먼트'가 시행착오를 겪으며 국내에 정착한 결과물 중 대표적인 것이 강연 콘서트다"며 "'내용이 뻔하다, 지루하다, 잠온다'라는 단점을 지닌 기존 강연에 비해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동적인 요소를 넣고, 즐거운 스토리텔링이 기본이 되기 때문에 특히 트렌드에 민감한 청년들이 가장 먼저 호응을 보내고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최근 일부 기업이나 단체에서 이미지 개선 등 마케팅의 하나로 치중하는 등 과열 양상도 나타나고 있다"며 우려도 나타냈다.

황희진기자 hh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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