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인터뷰通] '무술 한류' 이끄는 합기도·거합도 정기관…임현수 관장

'메이드 인 대구' 무술 배우러…전세계 제자들이 십수년째 대구 찾아와

한 자루의 검으로 지구촌을 호령하는 사람. 미국, 유럽 등에 진출해 19개 지부를 두고 있고 1천여 명이 넘는 제자를 거느린 거대 '무림문파'의 지존(至尊)이 대구에 있다. 그는 '청석 거합도'라는 '메이드 인 대구' 무술을 세계적인 브랜드로 키우며 무술계의 한류 열풍을 이끌고 있다. 청석(靑石)은 그의 호. 청석 거합도(居合道)의 창시자인 임현수(67) 정기관 관장을 대구 중구 대봉동에 있는 그의 도장에서 만났다.

◆무술계의 한류 고수

부리부리한 눈에서 안광이 번쩍인다. 악수하려고 손을 잡는 순간 '사람이 아니므니다'(개그 프로그램 유행어)란 대사가 떠올랐다. 오랜 시간 정직하게 검술을 익힌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강한 포스다. 도장을 찾은 취재진에게 직접 진검 시연을 펼친다.

'스르렁' 칼집을 빠져나온 검에서 검광이 번쩍한다. 잠시 멈췄던 검은 춤을 추기 시작한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시원하다. 칼날 길이만 85㎝, 무게는 1.5㎏에 이르는 장검을 몸의 일부처럼 자유자재로 다룬다. 그럴 때마다 휭휭 하는 소리가 정적을 깬다. 발검에서 착검까지 한치의 빈틈도 없다. 게다가 사람을 살리는 활인검(活人劍). 검을 휘두르기 전 몇 번이고 칼끝이 멈칫한다. 상대에게 물러설 기회를 주는 것이란다.

'원더풀~.' 시연이 끝나자 도장에서 수련 중인 미국인 제자들의 감탄사가 이곳저곳에서 터졌다. 마침 기자가 찾은 날. 미국 동부 지역에서 온 수련생 10여 명이 땀을 흘리고 있었다. 전 세계 19개 지부에서 수련생들이 매년 한 번씩 대구를 찾는단다.

각종 무술의 전시장인 미국에서 왜 하필 대구를 찾았을까. 17년째 이곳을 찾아 청석 거합도를 배우고 있는 미국인 브라이언(50) 씨는 "미국에는 많은 무술이 있지만 대부분 아름답고 보기 좋은 '쇼'에 불과합니다. 진짜 무술을 배우려고 매년 대구를 찾습니다." 미국 뉴 햄프셔에서 왔다는 스튜어트(41) 씨는 "학창시절 일본 검에 매료돼 검도에 입문했지만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느낌이었다. 그러나 청석 거합도를 접하고 나서 '세계 최고'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가 대구를 찾은 지도 14년째다.

청석 거합도라니 조금은 투박하고 생소하다. "거합의 '거'(居)는 모든 상황을 의미합니다. 앉아 있거나 걸어갈 때, 혹은 누워 있을 때 적의 갑작스런 공격에 대처하는 검법이지요. 원래 일본 검술을 한국형으로 재해석해 개발한 것이지요."임 관장의 설명이다.

◆합기도와 검도계의 산 역사

임 관장은 합기도와 검도계의 살아 있는 역사라고 할 만하다. 경남 거창에서 태어난 그는 학창시절부터 당수도, 복싱 등 여러 무술을 섭렵했다. "무술을 할 운명을 타고난 것 같아요. 공직에 계시던 부친 역시 무술에 능하셨지요. 그 덕분에 강골 체격을 물려받았고 자연스레 어릴 때부터 무술과 인연을 맺게 되었지요."

1965년 영남대 재학시절 합기도의 도주인 고 최용술 선생과의 만남은 그가 무인의 길로 들어선 계기가 됐다. 최 선생은 일본에서 유술(柔術)을 배워와 한국에 전파한 한국 합기도계의 원조다. 최 선생에게 직접 합기도를 배웠고 9단증도 받았다. 특히 최 선생을 말년까지 모신 최후의 제자로 잘 알려져 있다. "1984년 선생이 중풍에 걸리셨는데 2년간 투병 생활을 할 때는 직접 병수발을 했습니다. 당시 스승님은 정기관에 나와 바둑도 두고 사람들을 만나 직접 지도하기도 했습니다. 그때는 종일 함께했기 때문에 소중함을 느끼지 못했어요. 사진도 많이 찍어두고 기록도 많이 할 걸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래도 스승님이 입으시던 도복과 각종 소장품은 아직까지 소중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합기도에 푹 빠져 살던 그에게 또 다른 운명이 찾아왔다. "스승님에게 혹독한 훈련을 받던 어느 날. 대구 중구에 있는 헌 책방에서 한 권의 무술책을 발견하게 됐지요. 일본어로 된 낡은 검도 책이었는데 표지에 합기(合氣)라는 말이 적혀 있었습니다." '합기도는 엄연히 맨손 무술인데 검도와 무슨 상관일까?' 임 관장은 약전골목까지 가서 한학과 무술에 능하다는 노인을 찾아 뜻을 물었고 '합기란 칼과 칼이 마주쳐 상반되게 견주고 있는 힘의 상태'라는 해석을 들었다.

바로 검도에 입문했다. 그러나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있었다. "당시만 해도 검을 수련하면 합기도에 도움이 될 것 같아 검도에 입문했습니다. 그런데 검도 도장에서는 검도 4단을 넘으면 진검을 가르쳐 준다고 했는데 검도를 아무리 배워도 진검을 접할 수 없었고 배우려고 해도 가르쳐줄 사람이 없었지요."

그는 일본에서 스승을 찾았다. 1982년 한 일본 무도잡지에서 일본 고전무도연맹 거합도 회장을 소개한 글을 본 것이다. "일본 거합도의 대부격인 세키구치 다카아키(關口高明) 선생에 관련된 인터뷰였습니다. '진검을 배우고 싶다'며 무작정 일본으로 편지를 보냈더니 답장이 왔습니다." 세키구치 선생이 맺어준 거합도와의 진검 인연은 이후 20여 년간 이어졌다.

◆일본을 넘어서다

1985년에는 임 관장과 세키구치 선생의 노력으로 한일 친선 거합도대회가 처음으로 성사됐다. "난리가 났지요. 합기도계에서는 거합도에 전념한다고 섭섭해했고 검도계에서는 일본도를 가지고 일본 무술을 한다며 온갖 오해와 질시를 받기도 했습니다. '일본의 앞잡이냐' 하는 욕도 먹었지요. 한국 무술계에서는 매국노가 된 셈입니다."

그러나 이때부터 한국형 거합도가 싹을 틔우고 있었다. "거합도에는 규정된 도복을 입어야 합니다. 그러나 직접 만든 도복을 입고 시연을 했고 거합도 원로들의 반대에도 고집을 꺾지 않았습니다. 이때부터 한국에서 거합도를 배우는 사람들은 일본 옷이 아닌 우리가 만든 도복을 입고 수선하고 일본 시연 때도 우리 옷을 입기 시작했습니다."

힘든 시기가 찾아왔다. 다른 무술단체와의 마찰이 끊이지 않았고 '일본풍'으로 오해받아 정기관 간판이 훼손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급기야 대한검도회에서 제명됐다.

엎친 데 덮친 격이다. 그는 녹내장으로 실명의 위기에 놓이게 됐다. 하지만 그는 새벽까지 검을 쥐고 휘두르며 '반드시 일본을 넘어 모두가 인정하는 제대로 된 검술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드디어 1996년 10월 20일. 청석 거합도가 모습을 드러낸다. 일본의 재단법인 무도관 검도장에서 열린 제8회 한일 친선 거합도대회에서 임 관장은 자신이 창안한 한국본부형 거합도 25본을 시연했다. 청석 거합도가 세상에 알려지는 순간이었다. 장대하고 박력 있는 거합형에 일본 무도인들이 찬사를 보냈다.

"거합도는 일본 검도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형식을 중시하는 바람에 수련자에게 환영받지 못했지요. 기존 거합도는 무릎을 꿇은 상태에서 발검을 시작하는데 이를 과감히 고쳐서 서서 발검하는 형태로 바꾼 거지요."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한국형 거합도를 만든 것이다.

◆청석 거합도 세계화 앞장

임 관장은 자신이 만든 청석 거합도의 세계화에 앞장서고 있다. 오전 6시면 도장에 나와 오후 늦게까지 기본자세에서부터 기술을 갈고 다듬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해외 지부에 들러 외국인 제자들에게 진검의 묘미를 가르치고 있다. 무술은 전 인류가 공통으로 공유해야 할 덕목이라는 생각에서다.

용어와 도복뿐만 아니라 기본 자세와 모든 기술을 세계화하는 데도 열심이다. "피부색깔과 언어 등이 달라도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이 청석 거합도를 익히고 있습니다. 무술만큼 인간과 인간을 이어주는 분야는 없지요."

특히 청석 거합도의 정신을 널리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진검을 다루기 때문에 위험한 무술입니다. 자칫 실수하면 자신을 벨 수 있기 때문이지요. 더구나 베는 상대는 가상의 적인 만큼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마음을 다스려야 하기 때문에 수련에 몰입하게 되고 그 상태가 바로 참선이지요. 자신을 다스리는 것이 바로 청석 거합도의 정신이기도 합니다."

시퍼런 칼날이 선 진검을 사용하다 보니 받는 오해도 해결해야 할 숙제다. "목검나 죽도로 하는 검도가 아니라, 칼날이 살아있는 진짜 검을 사용하기 때문에 위험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살상을 위한 무술이 아닙니다. 모든 운동이 다 그렇듯이 거합도도 심신 수양과 신체적 건강을 위한 운동입니다. 그래서 거합도를 하게 되면 담력이 커지게 되고 집중력이 높아져 위기 대처능력을 길러줍니다."

'百連手磨技入神'(백련수마기입신'수많은 연습을 해야 입신의 경지에 든다). 도장 한가운데 걸려 있는 현판의 뜻처럼 그는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꼭 잡은 검을 놓지 않고 있다.

최창희기자 cchee@msnet.co.kr

사진'성일권 기자 sungig@msnet.co.kr

◆임현수는=경남 거창에서 태어나 초'중'고교를 다녔다. 영남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1965년 합기도의 도주인 고 최용술 선생을 만나 무도인의 길을 걷게 된다. 1974년 대구 중구에 합기도와 검도를 모두 배울 수 있는 정기관을 개관했다. 1982년 일본 거합도에 입문했고 3년 뒤 최초로 거합도 한일 대회를 유치한다. 1996년 청석 거합도를 만들어 전 세계에 전파하고 있다. 합기도 9단, 거합도 8단, 궁도 4단, 당수도 5단, 검도 4단으로 무술이 총 32단이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