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죽으면 썩을 손, 부지런히 쓰는게 삶이자 예술"…김기철의 흙장난

김기철의 흙장난/ 김기철 지음/ 김규호 사진/ 도솔출판사 펴냄.

여러 가지 토종 꽃과 식물을 가꾸고, 쌀부터 나물까지 밥상에 오르는 대부분의 식재료를 직접 길러 먹는 사람, 대학교수의 길을 마다하고 산골로 내려가 도예를 시작한 사람, 스스로 공부에는 소질이 없다고 말하면서도 고려대학교 영문과와 대학원까지 마친 사람, 도예를 시작한 지 일 년도 안 돼 공간대상을 받고, 대영박물관, 교황청, 국립현대미술관, 청와대 등에 작품이 소장된 사람. 이 책을 쓴 김기철 선생이다.

'김기철의 흙장난'은 지은이가 40대 중반부터 35년 동안 농사와 도예, 흙 마당을 가꾸면서 만들고, 쌓고, 기르고, 빚어온 것들을 글과 사진으로 담아낸 책이다. 김기철 선생은 예술과 생활을 분리하지 않았다. 예술이 생활이고, 생활이 곧 예술이었다. 그의 도자기 주제는 자연이다. 거대하고 신비한 우주적 자연이 아니라 주변에 있는 식물의 잎사귀나 꽃이나 열매가 주제다. 마찬가지로 꽃 가꾸기, 나무 기르기, 돌담 쌓기는 생활이되 예술이 되었다.

'나는 손을 움직여 일하는 것을 좋아한다. 흙을 파서 나무를 심는다든지 돌담, 돌탑을 쌓는 것을 비롯해서 흙으로 빚는 것은 무엇이든지 좋아한다. 나의 생활철학이랄까, 주의주장은 죽으면 썩어질 손인데 무엇 때문에 아껴서 쓰지 않는냐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풀기가 있는 한은 부지런히 써야지 그냥 놓아두라고 태어날 때 달고 나온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34쪽-

삶에 대한 김기철 선생의 태도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선생이 꿈꾸는 고향은 시골 출신들이 흔히 기억하는 고향의 모습이다. 봄이면 복사꽃, 살구꽃 피고, 마을 앞에는 오래된 느티나무가 있어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지고, 적당히 미신도 있어서 마을 굿을 볼 수 있는 고장이다. 사람들이 조금은 어리석어서 나무귀신, 대청귀신 심지어 똥간귀신까지 있다고 믿는 곳이다. 그래서 수백 년 묵은 나무나 조상 대대로 살아온 집을 함부로 두들겨 부수지 못하는 곳이다. 거기에 도랑물이 맑아 그 물에 세수하고 직접 기른 푸성귀를 헹구어 먹을 수 있는 곳이다.

선생은 "옛날에는 노동력만 있으면 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 농기구라야 호미, 괭이, 삽, 지게 정도만 있으면 땀 흘려 일해 추수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비록 열 명의 오빠가 여름 내내 땀 흘려 일하고도 누이 한 사람이 가을에 수확할 정도밖에 거두지 못하지만 평화로운 곳이 우리가 기억하는 고향의 모습이다. 누이 한 사람이 거둬도 될 만큼 부족한 양식이었지만, 그것으로 열 식구가 먹고 살았으니 견딜만했다.

김기철 선생은 40대 중반, 몸담고 있던 교직을 떠나 도예가의 길로 들어섰다. 경기도 광주 곤지암에 작업장과 거처를 마련한 그는 30년 넘게 전통 방식의 용가마를 고집하고 있다. 가마 불 때는 날에는 잔치를 열어 전통 가마의 운치를 이웃들과 나눈다. 옛날 동네 사람들이 함께 못자리를 내고, 한자리에 둘러앉아 밥을 먹던 모습과 닮았다. 혼자만의 작업을 위해 주변을 멀리하는 예술가들의 흔한 일상과 다른 모습인 것이다.

선생이 직접 지은 농사로 차린 소박한 밥상과 토종 냄새나는 마당은 많은 사람들을 끌어 모았다. 혜곡 최순우 선생, 법정 스님, 일창 유치웅 선생을 비롯해 전국의 이웃들이 그의 곤지암 보원요를 찾았다. 그렇게 어우러져 한세월을 살았다.

훌훌 벗어던지고, 조잡한 느낌이 들지만 푸근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갖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누구나 현재의 일상을 벗어 던지고 흙냄새 나는 그곳으로 귀향할 수는 없다. 그곳에 가자면 지금 갖고 있는 것을 내려놓아야 하는데,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욕심 때문만은 아니다. 거기에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여기에서 해야 할 일도 있으니 말이다. 어쨌거나 지은이는 쉽지 않은 그 일을 해냈고, 생활이되 예술인 삶, 예술이되 생활인 삶을 가꾸고 있다. 256쪽, 1만3천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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