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숲·문화재·골목투어 '걸어다니는 교과서'…해설사 전성시대

연륜·지혜 묻어난 해설, 학생·관광객에 인기 '짱'

바야흐로 '해설사 전성시대'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만 15세 이상 국민 중 국내 여행 참가자 수가 3천500만 명에 이르고 문화관광체육부에 따르면 21일에는 외국인 관광객이 1천만 명을 넘어섰다. 관광 수요가 증가하면서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해설사가 각광받고 있다. 대구시 관광문화재과에 따르면 대구시에서 활동 중인 문화관광해설사는 97명, 자연환경해설사는 13명. 여기에 각 지자체 문화해설사업단이나 보건복지부 지정 노인일자리 전담기관 등 각 기관에 있는 이들을 더하면 대구에서 활동하는 해설사는 모두 500여 명에 이른다. 연령과 전직(前職) 등 해설 분야만큼이나 다양한 이들은 '대구 알리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골목길 시간 여행'

"골목길에서 제2의 인생이 시작됐어요." 왁자지껄 떠드는 아이들 사이로 중년 여성의 다부진 목소리가 들렸다. 교과서 밖 역사 이야기가 시작되자 주머니 깊숙이 손을 찔러넣고 추위에 발을 동동 구르던 아이들이 한곳으로 시선을 모으기 시작했다. 시선이 모인 곳에는 해설용 마이크를 쓴 여성이 있었다. 문화관광해설사 겸 골목투어해설사 김경화(52'여) 씨였다.

기온이 뚝 떨어진 20일 오전 김 해설사의 안내로 골목길을 거닐며 100년 전으로 돌아간 이들은 제일고 3학년 학생들. 개항기 프랑스 신부와 미국 선교사들의 방문기를 들려주자 아이들은 수업 내용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현진건'이중섭'이인성 등 대구 출신 유명인과 얽힌 뒷이야기를 듣고 맞장구치기도 했다. 맛깔스런 해설에 푹 빠진 아이들은 3'1운동길에서 그칠 줄 모르고 '만세'를 외친 다음에야 발걸음을 옮겼다. 계산성당에서 열린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결혼식 일화를 들은 아이들은 "아는 사람이 나왔다"며 반가워했다. 골목투어를 마친 뒤 류현정(18) 양은 "역사'문화'인물 등 각 분야를 망라한 해설을 들으며 골목길을 누비다 보니 교과서가 따로 필요없다"며 "친절하게 설명해주신 해설사 선생님의 연륜과 지혜가 묻어나와 더 보람된 시간이었다"고 했다.

김 해설사는 외국 유학 후 시립합창단, 오페라단 등에서 활동한 성악가였다. 활발한 활동을 하던 그가 해설사의 길을 택한 것은 우연히 참여한 관광아카데미 프로그램 때문이다. 유학생 시절 외국 문화를 접하면서 대구를 알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던 그는 영남대에서 문화관광해설사 교육과정을 거쳐 2003년부터 문화관광해설사의 길을 걷고 있다. 해설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2005년 성대수술을 하면서부터다. 성악을 할 수 없게 됐을 때의 두려움도 문화유산 해설을 하면서 극복했다. 이제는 하루 종일 해설을 해도 목이 아픈 것을 못 느낄 만큼 해설이 즐겁다. 그는 "해설을 하면서 대구 홍보대사가 된 것 같다"며 "곳곳에서 만나는 관광객에게 지역 관광자원을 알려 지역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임무다"고 말했다.

◆다양한 이력 가진 해설사들

해설사는 정부'지자체 및 각 기관별로 목적에 따라 일정 시간 교육과 실습 과정을 거쳐 각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숲 해설사 송영란(53'여) 씨는 대구수목원에서 자연해설사 자격을 취득한 경우다. 그는 중'고교 가정교사로 재직하던 중 산을 다니다 나무와 풀 등 숲 생태에 관심을 가져 대구수목원 자연해설사 과정에 등록하면서 숲 해설사로 거듭났다. 현재 팔공산공원관리소에서 오전 오후 한 차례씩 숲 해설을 하고 있다. 그는 "사전 지식 보유 여부, 연령, 계절에 따라 해설 내용이 달라진다"며 "산을 오르며 지나치기 쉬운 작은 생명체를 소개하고 서로 연결된 자연을 소개할 수 있어 뿌듯하다"고 했다.

만 65세 이상의 어르신이라면 서구와 북구를 제외한 각 구의 시니어클럽을 통해 문화유산 해설사가 되는 길도 열려 있다. 20~30시간 정도의 소양교육을 받고 수시로 현장실습 투어를 통해 지역 내 문화재를 공부한 뒤 해설사로 활동하게 된다. 수성시니어클럽 문화재해설사업단 고영탁(77) 단장은 2008년 3월 고교 교사 퇴직 후 문화해설사업단 모집 공고를 보고 부리나케 신청한 것이 문화재해설사 활동의 신호탄이 됐다. 수성구 내 문화재를 해설하는 책을 발간할 정도로 문화재에 대한 지식과 열정이 대단하다. 그는 "보수는 적지만 퇴직 후에도 꾸준히 자기계발을 할 수 있는 일자리가 있어 즐겁다"며 "방치된 문화재가 청소'관리를 거쳐 관광지가 되는 것을 보면서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대학생 우효정(23'여) 씨는 중구청이 인정한 외국어 골목투어 해설사다. 대학에서 호텔관광학을 전공하는 그는 올 초 봉사 활동으로 시작한 관광 해설에 흥미를 느끼고 외국어 해설사가 됐다. 경험은 아직 6회에 불과하지만 초등학생을 상대로 골목투어 해설을 할 때면 그의 인기는 아이돌 스타에 버금갈 정도다. 교과서에서 중요한 부분을 미리 발췌해 아이들과 수수께끼 풀 듯 골목 문화를 해설하기 때문. 그는 "내년에는 완벽한 해설을 위해 학원을 다니는 등 글로벌 문화관광전도사로 거듭나겠다"며 포부를 밝혔다.

골목투어해설사 이인숙(50'여) 씨는 전업주부 생활 20년을 청산하고 골목투어해설사가 됐다. 문화 해설을 하면서 우울하고 권태로운 일상에서 벗어나 일하는 즐거움을 갖게 됐다. 그는 "해설에 임할 때마다 '봉 잡았다'는 생각을 하지만 추억을 공유하는 중'장년층과 골목투어를 할 때 가장 즐겁다"며 "알면 알수록 끝이 없는 골목 문화를 알리기 위해 역사'인물'미술'음악'건축 등 모든 분야에 전문가가 될 각오다"고 말했다.

대구시 관광문화재과 관계자는 "개정된 관광진흥법에 따라 전문적인 해설사를 양성하기 위해 꾸준히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며 "지난달 모집한 23명의 외국어 가능 문화관광해설사가 활동하는 내년에는 해설사가 더 활발한 활동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지현기자 everyda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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