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학가 선거는 미리보는 대선…대학 선거 현장 가봤더니

이념 빠진 자리 실생활 밀착 공약 경쟁…학교 담장 밖 더 큰 세상 향한

선거철을 맞이한 경산의 대구가톨릭대 캠퍼스에 총학생회, 단대학생회 등 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의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황희진기자
선거철을 맞이한 경산의 대구가톨릭대 캠퍼스에 총학생회, 단대학생회 등 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의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황희진기자
20일 오후 대구 북구 경북대 캠퍼스에서 총학생회장 선거 정책 토론회가 열려 후보와 패널이 질의응답을 주고받으며 토론을 벌였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20일 오후 대구 북구 경북대 캠퍼스에서 총학생회장 선거 정책 토론회가 열려 후보와 패널이 질의응답을 주고받으며 토론을 벌였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21일 경산 영남대 캠퍼스에서 총학생회, 단대학생회 등 선거의 투표가 일제히 진행됐다. 황희진기자 hhj@msnet.co.kr
21일 경산 영남대 캠퍼스에서 총학생회, 단대학생회 등 선거의 투표가 일제히 진행됐다. 황희진기자 hhj@msnet.co.kr

대선을 코앞에 둔 2012년 11월. 지역 대학가에 먼저 선거 바람이 불었다. 총학생회, 단대학생회, 학과학생회, 총동아리연합회 등 대학생들의 1년 임기 대표 혹은 일꾼을 뽑는 시즌이 요즘이다.

매년 대학교 학생자치기구 선거에는 20대 청년들의 현실을 생생하게 드러내는 '공약'이 쏟아져 나온다. 그러면서 학교 담장 밖 사회를 향해 이런저런 목소리도 내어 본다.

이번 대선에서 20대는 전체 유권자의 5분의 1가량을 차지하고 있고, 최근 들어 선거 결과를 좌우하는 '변수 표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들의 '작은 대선'을 들여다봤다.

◆대학 선거 현장 가봤더니

이달 20일 정오 대구 북구 경북대 캠퍼스에서는 총학생회 후보 정책 토론회가 열렸다. 후보들은 물론 학내 신문사'방송국 등에서 온 패널들이 테이블 앞에 앉아 수십여 명의 청중들을 앞에 두고 1시간여 동안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질의응답 내용은 실제 대선이나 총선의 정책 토론회에서 후보와 패널들이 주고받는 것과 비슷했다. 최근 경북대는 상주대와 통합했고, 올해 두 곳 캠퍼스의 첫 통합 총학생회를 뽑는다. 이에 "두 곳 캠퍼스 학생들이 느끼는 갈등을 봉합해 '동반자 의식'을 공유해야 한다"는 내용은 요즘 대선 후보들이 화두로 내놓는 '사회통합' 공약을 떠올리게 했다.

기성 선거에서 늘 화두가 되는 '공약 실현 가능성'에 대한 질의도 이어졌다. 그러자 한 후보는 "단대 학생회장 시절, 후보 때 제시한 공약을 모두 이행했다"며 과거 이력을 꼼꼼하게 증명해 보이기도 했다.

이 외에도 현재 대선과 닮은 공약이 적잖아 눈길을 끌었다. 후보들 모두 "묻지마 폭행, 취객 난동 등 캠퍼스도 더 이상 안전지대일 수 없다"며 '캠퍼스 방범 강화' 공약을 언급했다. 요즘 사회 화두인 '민생 치안 강화'와 닮았다. 한 후보는 '외국인 유학생'을 위한 공약도 언급했다. 외국인 유학생과 한국인 학생이 함께하는 페스티벌, 가요제 등 행사 마련 등이었다. 국내 전체적으로도 거주 외국인 수가 늘면서 대선 후보들은 '다문화가정 지원' 등 관련 공약을 내놓고 있다.

대학생들만의 생활 고충을 담은 이색 공약도 확인할 수 있었다. 캠퍼스 내 약국 설립, 여자 화장실 메이크업 공간 확충 등이었다.

선거 기간 중인 다른 대학 후보들의 공약도 마찬가지였다. 공통된 화두는 '등록금 인하'와 '취업 지원', 그리고 '복지 및 문화 공간 확충'이었다. 후보들은 유세 활동과 정책 자료집 배포 등을 통해 "학생 서명을 모으는 등의 방법으로 등록금 인하를 이뤄내겠다", "취업 스펙 쌓기를 위한 행사와 전문가 특강을 늘리겠다", "교내 매점과 식당 물가를 내리겠다", "시험 기간에 간식과 학용품을 지급하겠다"는 등의 공약을 제시했다. 민생 경제와 일자리와 복지가 늘 화두가 되는 대선 공약과 닮은 셈이다.

◆요즘 대학 선거 흐름은?

유권자인 대학생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각 후보들의 유세 활동을 지켜보고, 정책 자료집을 꼼꼼히 살펴봤다는 심지영(20'여'경북대 신문방송학과) 씨는 "현실에 와 닿는 공약, 구체적인 공약만 눈에 띄고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심 씨는 "등록금 모니터링 제도와 캠퍼스 방범 강화 공약은 대학생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 등록금이 교육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데 제대로 투입되고 있는 지 알 수 있다면 학업 만족도를 높여 학교와 학생 모두 긍정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또 "'묻지마 범죄'가 급증한 요즘 캠퍼스 방범 강화는 단순히 표를 얻기 위한 '포퓰리즘'이 아닌 꽤 실용적인 공약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대학 사회의 선거는 조금 어설퍼 보여도 '피부에 와 닿는' 공약이 특징이다. 취지는 거창하지만 두루뭉술한 공약을 내놓고 임기 후 딱히 이뤄낸 성과를 거론하기 힘든 대선과 다르다"고 평가했다.

사실 최근 몇 년간 대학 선거의 공약 트렌드가 이랬다. 학업과 취업 등 청년 현실을 돕는 내용의 공약이 대세다. 등록금은 물론 학내 식비, 교재비나 학교 주변 방값 등 '대학가 물가'를 내리겠다는 공약도 나오고 있다.

그러면서 일명 '운동권' 학생회가 대세를 이뤘던 과거와 달리 "특정 정치색을 지향하기보다는 대학생 현실 개선에 집중하겠다"며 '비운동권' 학생회가 표를 얻는 모습이다. 최근 화두가 된 '반값 등록금' 문제는 운동권 학생회가 먼저 공약으로 제시한 것이지만 비운동권 학생회는 정치색 없이 대학생 현실 개선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물론 학생 복지나 지원 등에 치중하며 선거 경쟁을 하다 보니 비현실적이지만 웃지 못 할 공약이 등장하기도 한다. 지난해 국내 한 사립대의 총학생회 선거에 출마한 한 후보가 "외모 지상주의가 팽배한 현실에 취업에도 외모가 스펙으로 작용한다"며 '학생 성형 수술비 지원' 공약을 발표해 논란이 일었다. 이에 "총학생회 공약으로는 적절하지 못하다"는 반응과 "취업이 얼마나 어려우면 그런 공약까지 나오겠느냐"는 반응이 함께 나오기도 했다.

대학생들은 "외부에서는 대학생들이 정치나 선거에 무관심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대학 선거에서 공약을 꼼꼼하게 따진다"고 했다. 경북대 교육방송국 신혜안(22'여) 편성국장은 "최근 방송국에서 재학생들로부터 총학생회 선거 후보들에 대한 질문을 접수했는데 반응이 좋았다"며 "한 후보의 단과대 학생회장 시절 등 과거 이력을 낱낱이 분석해 자질을 의심하는 의견을 보내는 등 선거에 철두철미한 관심을 보이는 학생들도 있었다"고 말했다.

최태양(24'경북대) 씨는 "학교 시험과 투표는 통하는 구석이 있다.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답안을 선택해 정성껏 적어서 제출하는 시험지와 투표지가 닮았다. 또 성적표가 나올 때까지 지속적으로 신경 써야하는 점도 같다. 투표를 한 이후에도 지속적인 관심과 견제를 나타내야 선거를 '제대로' 치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대학 선거나 곧 치르는 대선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기성 정치권 '구태'는 우리와 상관없는 일

이달 21일 경산의 영남대 캠퍼스에서는 학내 방송을 통해 '시간대별 투표율'을 계속 공지했다. 그러면서 투표 일정을 안내하는 코멘트가 이어졌다. 이날 총학생회 및 단대 학생회 투표가 일제히 치러진 것. 단과대 건물마다 투표소를 설치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감독과 안내 아래 재학생들이 투표를 하는 모습은 여느 기성 선거와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조금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긴 투표 시간이다. 영남대의 경우 등교 시간인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10시 15분까지 투표가 이어졌다. 하루 종일 수업을 듣고 아르바이트도 해야 하는 학생이라도 수업이 모두 끝나는 오후 6시 이후에 여유있게 투표할 수 있도록 하고, 야간대학에 다니는 소수의 학생들도 배려하기 위해 밤 늦게까지 투표소를 운영한단다.

이달 27일 투표를 치르는 경북대도 오후 7시까지, 같은 날 투표를 치르는 대구가톨릭대도 오후 8시 20분까지 투표소를 운영하는 등 지역 대학 대부분이 비슷한 모습이다.

이에 대해 김현미(23'여'영남대) 씨는 "이번 대선에서 투표 시간 연장이 논의에 올랐지만 결국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대학생들은 당연스레 자원봉사를 통해 투표소를 늦은 시간까지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대학생들은 기성 정치권의 '구태'와는 상관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선 후보들이 '모두 모이는' 제대로 된 정책 토론회가 성사되지 못하고 있지만 지역 각 대학은 후보 토론회를 당연스레 선거 일정에 넣고 있다.

◆점점 부각되는 20대의 선택

이쯤 되니 대선에서도 20대의 표심에 주목하고 있다. 각 대선 후보들은 청년들이 많이 모이는 번화가, 미래 고민들로 가득한 취업 학원가 등을 자주 찾고 있고, 청년층을 모아 '토크 콘서트'도 열고 있다. 이에 대해 정치 전문가들은 "3자 대결로 관심이 고조돼 투표율이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역대 선거에서 투표율이 높았던 경우 20대 투표율도 덩달아 뛰어 올랐다. 당연히 20대 표심을 잡는데 관심을 쏟을 수밖에 없다"고 분석한다. 또 "예년 선거에 비해 부동층이 적다는 판단에서 이미 표심이 굳은 30대 이상 세대에 비해 유동적인 20대의 표심을 잡으려 한다"는 분석도 있다.

사실 20대는 만만찮은 표심이다. 이번 대선에서 전체 유권자의 18.5%가 20대다. 투표율은 다른 세대에 비해 낮은 편이지만 최근 지방선거 투표율만 봐도 점점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2010년 지방선거 투표율 분석' 자료집에 따르면 2010년 지방선거에서 20대의 투표율은 4년 전의 지방선거에 비해 8% 정도 증가했다. 자료집에서 선관위 측은 "20대의 경우 타 연령층에 비해 남녀 모두 투표율 증가가 두드러져 젊은층의 선거에 대한 관심이 높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20대만을 위한 공약도 대거 등장했다"고 분석했다.

황희진기자 hh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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