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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흥희 이야기가 있는 음악풍경] 정훈희 <소월에게 묻기를>

정훈희의
정훈희의 '소월에게 묻기를' 노래가 실린 윤상의 4집 앨범 '이사'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말없이 말없이/어쩌라는 말인가요/떨리는 이 두 손을 살짝 놓아주는 일/그것밖엔 내게 남아있지 않다니/알 수 없네, 난 알 수 없네/이제 왜 살아가야 하는지/산산이 부서진 세월들이 어디로 나를 데려 가는지/가르쳐주오, 왜 당신은 저 꽃잎을 밟으려 하는지/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죽어도 죽어도 죽어도/할 수 없네 난 할 수 없네/허튼 눈물을 감출 수 없네/대답해 주오 시인이여/정녕 이것이 마지막인지/가르쳐 주오 왜 당신은 나의 손을 놓으려 하는지/가엾은 사람/바보처럼/결코 나를 잊지 못할 사람"('소월에게 묻기'를 가사 전문)

K-POP의 열풍이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는 소식을 실감하지 못하는 것은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다. 정말 언제부터인가 TV나 라디오에서 나오는 소위 신세대의 노래가 잘 들리지 않는다. 멜로디도 그렇지만 가사는 더더욱 알아듣기 힘들다. 그것은 사실 K-POP의 열풍이 시작된 시점과 일치한다. 사실 가끔 배낭여행에서 외국인들이 한국이란 나라를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모르고 있다는 것에 당황한 적이 많았다. 그들은 올림픽과 월드컵을 치른 나라의 이름보다는 대기업을 더 기억하고 아직까지 우리나라가 내전 중인 국가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K-POP을 필두로 한 한류 열풍은 사실 반갑고 기쁜 일이다. 하지만 우려되는 점도 없지 않은 것은 소위 그것이 바람으로 그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K-POP이 우리 대중음악의 전부라고 말할 수는 없고 우리 대중음악의 역사성을 대변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것은 대중의 정서나 음악성에 기인하기보다는 일시적이고 단말마적인 현상에 가깝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세대차이라고 말한다면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K-POP은 오히려 너무나 한국적이지 않기 때문에 세계무대로 진출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닌가 싶다. 해서 K-POP이 한국적이지 않으면서 한국이라는 이름을 알리고 있기 때문에 오래가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의 K-POP이 자신의 역사성 부재를 극복하려면 우리 대중음악의 뿌리 속에서 자양분을 얻어야 한다. 그럴 때만이 대중의 폭넓고 깊은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찰나의 가수가 아니라 오랫동안 사랑받는 불멸의 가수가 되는 것이 K-POP의 열풍에 바라는 마음이다.

어떤 의미에서 정훈희는 K-POP의 가수들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한편으로 그녀는 이미 지나간 추억의 가수에 불과하지만 젊은 팬들에게도 친숙하다. 그 이유는 그녀가 40년 이상을 쉬지 않고 노래를 해 온 까닭이다. 쉬지 않고 노래를 해 왔다는 것은 자신의 노래에 시대를 반영했다는 의미이다. 젊은 후배들과의 작업을 통해서 그녀는 자신의 노래 인생을 가꾸고 만들어왔다. 해서 2008년 40주년 기념 음반을 세상에 내놓았을 때도 여전히 그녀는 정훈희였다. 그녀가 이토록 오랫동안 대중들의 인기를 누릴 수 있었던 이유는 국제 가요제를 통해 실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이었다. 도쿄가요제, 그리스가요제, 칠레가요제 등에서 그녀는 한국 대중음악의 이름을 알렸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오늘날 K-POP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소월에게 묻기를'이란 노래는 윤상의 4집 앨범 '이사'에 실려 있는 노래다. 얼마 전, 모 방송국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젊은 출연자가 이 노래를 불러 화제가 되었던 이유는 자신의 앨범이 아닌 후배의 앨범에 실린 정훈희의 노래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 노래에서도 비음이 섞인 미성으로 소월의 '진달래'에 나타난 애틋한 연정을 대하는 여인의 아픔을 노래한다. 작곡자나 작사자에게 이 노래를 이토록 가슴 저리게 부를 수 있는 가수는 없었을 것이란 생각을 한다. 그녀는 늘 환한 웃음만을 지닌 밝은 목소리를 지닌 가수로 인식되지만 내면속에 깊이 감추어진 슬픔 같은 것이 이 노래에는 묻어 난다. 대중음악의 생명은 대중과 함께 호흡하는데 있다. 대중과의 호흡이란 것은 기쁨과 슬픔을 함께 느끼는 것이다. 대통령 선거가 눈앞에 다가온 지금 모든 후보들은 국민과의 호흡과 소통을 이야기한다. 그들에게 묻기를 그 국민은 어디에 있는가?

㈜미래티앤시 대표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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