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비상사태

미국 영화 '비상계엄'(1999년 작)은 재미가 없고, 성공하지도 못했지만, 기억에 남을 만한 작품이다. 연쇄 자살테러로 인해 뉴욕에 비상계엄령이 선포돼 군대가 도심으로 진입하는 설정은 제법 그럴듯했다. 그렇지만 뒷부분으로 갈수록 산만해지고 결론도 짜맞춘 듯해 재미를 반감시킨다.

"나는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너희들 전부를 죽여버릴 수 있어." 윌리엄 데버러 장군(브루스 윌리스 분)은 애국심을 앞세워 국민의 기본권 제한, 인권 탄압을 서슴지 않는 왜곡된 신념의 소유자다. 결국 정의의 수호자인 FBI 수사관에게 체포당하는 것으로 끝을 맺지만, 국가비상사태가 일어나면 공권력에 의해 불탈법이 예사로 자행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 영화는 2년 뒤에 벌어지는 9'11테러를 예고했다는 점에서 뒤늦게 화제가 됐다.

우리도 국가비상사태를 여러 차례 경험한 적이 있다. 1972년 10월 유신 때와 1980년 광주민주화의거 당시에 비상사태가 선포돼 국민은 기본권 박탈의 아픔을 겪었다. 시야를 세계로 넓혀보면 국가비상사태를 상시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나라가 한둘 아니다. 미국은 9'11사태 이후로 테러에 대해서는 영구적으로 비상사태를 유지하고 있고 이스라엘은 1948년부터, 이집트는 1967년, 시리아는 1963년, 알제리는 1992년부터 국가비상사태를 계속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테러'내전'전쟁 등의 요인으로 인해 비상사태의 상설화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불행한 국가들이다.

국가만 비상사태가 있겠는가. 개인이나 기업도 한계상황에 부딪히면 '비상경영'을 할 수밖에 없다. 지출을 줄이고 더 열심히 일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얼마 전 세계적인 기업인 포스코가 비상경영 선포식을 가지려다 취소한 적이 있다. 세계 철강 경기가 어려운 것은 알고 있었지만 비상경영에 들어가야 할 정도일 줄이야 미처 몰랐다는 반응이 많았다. 그러나 포스코 관계자들의 얘기는 달랐다. 관계자는 "회사가 최악의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 미래를 대비해 좀 더 허리띠를 졸라매고 뛰자는 결의의 의미가 훨씬 더 강했다"고 했다. 다행스러운 일이긴 하지만, 포스코가 힘들면 덩달아 포항시민들도 힘들어진다. 포항 경제력의 60, 70%를 차지하는 포스코의 경영성과에 따라 시민들의 삶이 좌우되니 포스코의 무운장구(武運長久)를 빌어야 할 판이다. 포스코가 좀 더 힘을 내 다시는 '비상상황'이란 말을 듣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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