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100만원 연금만 주고…" 연평도 도발 부상자 김진권씨

병원비도 안되는 연금 보험 가입도 거부당해…국가 무관심에 이중고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당시 중상을 입은 김진권 씨가 갑자기 찾아온 돌발성 난청으로 대구 파티마병원에 입원해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당시 중상을 입은 김진권 씨가 갑자기 찾아온 돌발성 난청으로 대구 파티마병원에 입원해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연평도 포격 도발 부상자들을 잊지 말고 기억해 주십시오."

지난 2010년 연평도 포격 도발 당시 해병 연평부대에서 복무하다 부상을 당한 김진권(22'대구 동구 각산동) 씨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병원에 입원했다. 지난해엔 갑작스런 복통으로 응급실에 실려갔고, 올해는 연평도 포격 도발 2주기 전날인 22일 왼쪽 귀가 갑자기 아프면서 들리지 않아 종합병원을 찾았다.

"돌발성 난청이래요. 지금도 왼쪽 귀는 물이 들어간 것마냥 소리가 이상하게 들려요. 병원에서는 스트레스가 많이 쌓여서 생긴 거라고 하더군요. 저는 밝게 지내려고 하는데 그날만 되면 몸이 아픔을 기억하는지 아파옵니다."

김 씨는 연평도 포격 도발 당시 연평부대 정비소대에서 복무하고 있었다. 훈련 도중 적의 포탄이 떨어지면서 김 씨는 포탄 파편을 맞아 오른쪽 발목과 발등이 깊이 패였고 심장과 콩팥을 제외한 대부분의 장기가 손상을 입었다. 오른쪽 발은 골반뼈와 허벅지의 피부를 이식해 복구했고, 위장 기능은 봉합수술을 했지만 정상인의 3분의 1밖에 기능하지 못한다. 김 씨는 지난해 6월 30일 상병으로 의병전역했다.

2년 전 있었던 연평도 포격 도발은 김 씨의 삶을 너무 많이 바꿔놓았다. 입대 전 '신체 건강한 대한남아'였던 김 씨는 이제 계단을 오르기도 힘겨운 상태가 됐다. 운동은커녕 오래 걷는 것조차 너무 고통스럽다. 소화기관은 증세가 더 심하다. 올해 추석 전날에는 갑자기 장이 기능을 멈춰 응급실에 실려가야 했다.

"항상 진통제를 달고 살아요. 오른쪽 발을 다친 부위가 쑤시고 아플 때가 많거든요. 이번에는 귀에 이상이 생겼지만 언제 어디서 어떤 고통이 저를 괴롭힐지 모르는 상태예요."

지금 김 씨는 아픈 몸 때문에 학업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태다. 경일대 경영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인 김 씨는 올해 3월 복학을 했지만 일주일에 두 번 나가기 힘들 정도로 몸 상태가 좋지 않아 학교에 제대로 나간 적이 드물었다.

김 씨는 몸뿐만 아니라 마음에도 상처를 입었다. 당시의 포격 도발로 인한 정신적 충격도 충격이지만 그보다 전역 후 주변에서 받는 시선들이 더 아팠다는 것. 퇴원 이후 김 씨가 받은 주변의 동정 어린 시선들, 복부와 발목에 난 수술자국을 보고 흠칫하는 주변 사람들의 모습, 포격 도발 때만 반짝 집중하고 마는 언론의 시선들은 김 씨에게 마음의 상처를 남겼다. "주변 사람들이 다치기 이전처럼 대해주면 좋겠어요. 사람들이 제게 '배려를 해준다'고 하긴 하는데, 그런 모습들이 오히려 부담되고 저를 '다른 사람'처럼 보는 것 같아 서운해요."

현재 김 씨는 국가유공자 5등급으로 지정돼 매달 약 100만원의 연금을 받고 있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치료를 받아야 하는 김 씨의 입장에서 대학 졸업 후 직업을 갖지 못할 경우 이 돈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지속적인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도 까다로운 지원 절차 때문에 대부분 김 씨 본인 돈으로 병원비를 내고 있다. 실손의료보험이라도 들고 싶지만 '다친 부분이 많아 병원 출입이 잦다'는 이유로 보험 가입도 거부당했다. 김 씨는 "외국은 나라를 위해 싸우다 다친 군인들에게 사회 차원에서 끝까지 책임지는데 우리나라는 치료만 하면 끝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말했다. 김 씨의 아버지 김봉수 씨는 "내 아이가 평생 후유증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데 국가에서는 그저 포격 도발 날짜가 다가오면 반짝 관심만 보이고 만다"며 "나라를 지키다가 다쳤는데 이 아이의 인생에 대해 국가가 책임져야 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김 씨는 졸업 후에 자동차 디자이너나 자동차 개발 연구원으로 일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연평도 포격 도발로 큰 부상을 당한 이후 이 꿈을 계속 꿀 수 있을지 걱정이다. 김 씨와 김 씨 부모가 바라는 것은 단 하나, 포격 도발 이전의 삶을 다시 찾는 것이다.

"날씨가 화창한 날 사람들이 여기저기 놀러 나간다는 말을 들을 때 '나도 다치기 전에는 날씨 좋을 때 친구들과 산에도 가고 운동도 했는데 지금 난 집에 틀어박혀서 뭐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우울해져요. 하고 싶은 것도 많은데 못하는 이 상황이 너무 견디기 힘듭니다."

이화섭기자 lhssk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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