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거머쥔 삼성 라이온즈는 이듬해 2년 연속 정상등극을 향해 무서운 기세로 2003시즌 초반을 장악했다. 삼성은 4월 5일 대구서 열린 두산과의 개막전 승리 후 17일 수원구장에서 현대에 1대5로 패할 때까지 무려 10연승을 내달리며 2연패 욕망을 불태웠다. 그러나 쉼 없이 달리는 사이 체력은 바닥까지 떨어졌고, 4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기세가 꺾인 삼성은 SK와의 준플레이오프에서 2패로 탈락하면서 한국시리즈 2연패의 꿈을 접었다.
그러나 그해 삼성은 어느 해보다 많은 취재진을 불러 모았고, 시즌 막바지에는 연일 스포츠 뉴스의 톱을 장식했다. 이승엽 때문이었다.
2003년 10월 2일 대구시민야구장. 외야 관중석은 잠자리채 물결을 이뤘고, TV를 지켜보던 팬들은 간절히 두 손을 모아 기도를 올렸다. 일주일 전. 이승엽은 55호 홈런을 때려내며 일본 프로야구의 오 사다하루(1964년), 터피 로즈(2001년), 알렉스 카브레라(2002년)가 각각 보유한 아시아 홈런 신기록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그러나 이후 이승엽의 방망이는 침묵을 지켰다. 기록 경신에 주어진 시간은 단 한 경기. 그날은 삼성의 시즌 마지막 경기였고, 초조하게 기다려왔던 야구계와 팬들은 이승엽이 2002년 한국시리즈서 극적인 동점 홈런을 터뜨리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던 그런 순간이 재현되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1999년 이미 한 차례 이승엽은 대기록 달성을 앞두고 고개를 숙인 적이 있었다. 54개의 홈런을 때려내며 국내 선수로는 최초로 50홈런 고지를 밟았으나 홈런 생산은 대기록에 한 개 모자란 채 멈춰버렸다. 그리고 4년 만에 다시 잡은 기회. 이승엽도 단단히 별렀지만 의지만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었다.
이승엽은 그해 6월 22일 세계 최연소 300홈런을 달성하고서 나흘 뒤인 26일 '한 시즌 최소 경기 40홈런' 세계신기록까지 수립한 터여서 아시아 최초의 56호 홈런을 쏘게 될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시즌 78경기 만에 40호 홈런을 쏘아 올린 이승엽은 미국 메이저리그의 배리 본즈(샌프란시스코)가 2001년 82경기 만에 이룬 기록보다 4경기나 빨랐다.
이승엽의 홈런 수가 50개를 넘어서자, 관중석엔 잠자리채가 등장했다. 홈런 페이스가 좋았기에 56호 홈런의 가능성은 컸고 팬들은 그 공이 가져다줄 엄청난 행운을 거머쥐려 서둘러 잠자리채를 들고 야구장으로 향했다.
이런 분위기 탓에 이승엽을 상대하는 투수는 곤욕을 치러야 했다. 조금만 피해간다 싶으면 팬들의 야유가 쏟아졌다. 우려했던 일은 9월 27일 사직구장(롯데전)에서 터졌다. 시즌 최다 홈런 아시아신기록에 홈런 1개를 남겨둔 이승엽이 4대2로 앞선 8회 1사 주자를 2루에 두고 타석에 들어섰다. 그때 롯데 벤치는 가득염-최기문 배터리에 고의 4구를 지시했다. 순간 1만여 명의 팬들이 쓰레기와 오물을 그라운드에 던지기 시작했고 부상자가 속출하는 불상사가 생겼다. 롯데 김용철 감독대행은 급기야 구단 고위층의 지시로 그라운드에 나와 마이크를 잡고 고의 4구의 불가피성을 해명하는 사태까지 이르렀다. 1시간 34분 만에 가까스로 경기가 재개됐지만 출범 이후 최장시간 경기중단이란 불명예 기록을 남기고 말았다.
9월 25일 55호 홈런을 친 뒤 이승엽은 5경기째 홈런 소식을 전하지 못했다. 그리고 마지막 경기까지 몰렸다. 신기록에 대한 심리적 부담감이 홈런 생산을 멈추게 했다는 분석이 들끓었다. 남은 6경기서 기록 경신을 장담했던 분위기는 결국 터지지 않을 수 있다는 불길한 우려로 넘어가고 있었다.
10월 2일. 롯데와의 경기에서 1루수 겸 4번 타자로 선발 출전한 이승엽은 팀이 0대2로 뒤진 2회 말 무사, 주자 없는 상태서 타석에 들어섰다. 볼 카운트 원-원에서 롯데 투수 이정민이 던진 세 번째 공이 가운데로 몰렸다. 137㎞ 직구는 방망이에 맞자 포물선을 그리며 가운데 쪽 펜스를 향했다. 홈런이었다.
대기록이 달성되는 순간. 모든 시선이 그 공으로 모였다. 행운을 가져다줄 그 공은 대기록 달성 순간을 준비하던 이벤트 회사 직원의 손에 쥐어졌다.
삼성구단 관계자는 "가짜 논란을 막고자 한국야구위원회가 경기 공인구에 표시하는 등 56호 홈런은 한국 프로야구에 대단한 가치와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홈런이 터진 순간, 공이 떨어진 곳으로 급히 달려가야 했다. 당시 홈런 펜스는 지금보다 조금 앞당겨져 있었는데, 일반관중이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다. 그곳에 도착하니 이벤트 회사 직원 2명이 공을 함께 움켜쥐고 있었다. 최초의 56호 홈런공을 넘겨받고 나중에 구단에서 그들에게 560돈의 금 덩어리를 하나씩 선물했다. 당시 금 시세가 1돈에 5만원 남짓 했으니 2천만원이 넘는 금액이었다. 이후 금값이 크게 올랐으니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다면 어마어마한 가치를 지니게 됐을 것이다. 수소문해보니 한 명은 10만원 전후 때 처분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이승엽은 이 홈런을 발판으로 다음해 일본 프로야구로 진출했다. 데뷔 후 2003년까지 324개의 홈런을 때려낸 이승엽은 2004년부터 2011년까지 일본 무대에서 159개의 홈런을 날렸고, 2012시즌 돌아와 한일통산 500홈런을 채웠다. 올 시즌 21개의 홈런을 보탠 이승엽은 선배 양준혁(은퇴)이 세운 국내 프로야구 개인 최다 홈런 기록인 351개에 6개만을 남겨 두고 있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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