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오전 대구 수성구 가천동. '소담' 봉사단원 55명은 작업복과 비옷을 입고 이른 아침부터 담장에 다닥다닥 붙어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지난달에는 마을 경로당과 입구에 십장생과 장승 등을, 이달에는 주민들 집 담장에 꽃과 동물, 어린이를 그렸다.
'소담'은 '소중한 사람을 위한 담장을 만드는 대구 대학생 모임'이다. 소담은 올 9월 KT&G에서 마련한 '상상 volunteer'를 통해 모인 14명의 대학생으로 꾸려졌다. '상상 volunteer'는 대학생들이 봉사활동을 기획하고 실행할 수 있도록 돕는 봉사 프로그램이다.
모임이 만들어졌을 무렵 소담 중에서 미술을 전공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경영, 사회복지, 행정, 건축 등 각양각색의 전공자들이 선뜻 벽화를 그려보겠다며 나섰다. 윤현지(21'여'대구 수성구 신매동) 씨는 "훌륭한 솜씨는 아니지만 작은 힘이 모여 아무것도 없던 벽에 그림을 그려 마을에 생기를 불어넣고 싶었다"며 "무엇보다 봉사 흔적이 오래오래 남을 수 있어 벽화 그리기를 기획했다"고 했다.
벽화 그리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마을을 고르고 벽화 그리기를 준비하는 데만 꼬박 한 달이 걸렸다. 발품을 팔아 대구 근교 마을 8군데를 다녔다. 그중 높이가 낮고 그림 그리기 좋은 담장이 많은 가천동을 택했다. 가천동 통장 현기훈(56) 씨는 "금호강변을 따라 난 자전거길로 들어가려고 마을을 찾아오는 외부인의 발길이 부쩍 늘었다"며 "마을을 예쁘게 단장하고 싶었는데 마침 학생들이 도와준다고 해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했다.
처음 해보는 붓질이 어색해 지난달 벽화를 그릴 때는 실수도 했다. 벽면 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무작정 꽃을 그려 결국엔 물방울 무늬로 덧칠을 했다. 동네 아이들이 그림을 못 그린다며 놀리기도 했다. 시행착오 끝에 14명으로는 엄두가 나지 않을 것 같아 이달에는 봉사자 37명을 더 모았다. 미술학도 5명도 힘을 보탰다.
산뜻하게 변신한 마을 골목길은 주민들은 물론 외부인에게도 볼거리가 됐다. 지나가던 주민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그림 구경에 빠졌다.
봉사단원들에게 따뜻한 음료를 건넨 주민 강도숙(84'여) 씨는 "빗물에 벗겨져 우중충했던 담장에 그림을 그려놓으니 새 집 같다"며 "날도 추운데 언 손이라도 녹이며 일하라고 음료를 준비했다"고 했다.
주민들의 뜨거운 응원 덕분에 추운 겨울도 이들 봉사단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언 손발을 녹이기 위해 봉사단원들은 저마다 옷과 바지를 두세 개씩 겹쳐 입었지만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소담 봉사단 단장 이효인(25'대구 북구 산격동) 씨는 "주민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힘든 것도 잊게 된다"며 "우리들이 그린 담장이 주민은 물론 마을을 다녀가는 사람들의 마음까지 따뜻하게 만들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신선화기자 freshgir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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