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행복을 요리하는 의사] 죽음의 공포 극복할 수 있을까?

환자가 스스로 병에 걸려 있음을 깨닫는 것을 병식(病識) 또는 통찰력이 생겼다고 한다. 이때부터는 아는 것이 힘이다. 슬금슬금 찾아 온 병에 대한 의학적 지식을 알기 위해서 인터넷 정보나 책자, 의료진의 도움이 필요하기도 하고 치료도 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질병 치료의 출발은 병식이 있느냐 없느냐부터이다. 삶이 아니라 죽음과 맞닥뜨려져 있는 호스피스병동은 어떨까? 치료 할 수 없는 불치의 병과 죽음을 인지(認知)한다는 것이 과연 죽음에 대한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을까?

당장은 서글퍼도 나쁜 소식을 정확하게 아는 것만이 죽음을 편안히 수용할 수 있는 방법이다. 병식이 질병 치료의 출발점이라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그래서 나는 환자의 수준에 맞춰 알고 싶어 하는 만큼 병에 대해 알려준다.

그러나 11살 난 말기 뇌종양 환자 민경이에게는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선생님이 꼭 치료해 줄게"라고 비현실적인 희망을 속삭여준다. 영원히 걸을 수 없을 지도 모르고, 그리운 집에 되돌아 갈 수도 없을 가능성이 99%이다. 그녀가 엄마만큼 믿고 의지하는 내가 죽음의 의사이고, 11년 인생의 마지막이 왔다는 잔인한 진실을 알면 어떻게 될까?

"아프기 전에는 체르니 30번까지 쳤는데 이제는 손이 안 움직여요. 휠체어 타고 피아노 앞에 앉는 것이 싫어요. 방사선 치료를 하면서 머리카락이 몽땅 빠졌어요. 다 나으면 허리까지 꼭 머리를 기르고 싶어요. 전 원래는 태권도 검정띠였거든요. 수영도 배영까지 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못해요." 민경이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두 눈까지 빨게 졌다. 그리고 한참 울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녀 수준에 맞는 병식이 생긴 것이다.

뇌 과학자들은 공포는 두뇌의 중앙부인 편도체와 시상하부를 활성시키고, 스트레스 회로를 작동시킨다고 한다. 교감신경과 부신피질이 온몸에 반응한다. 죽음, 공포 그리고 스트레스는 연관돼 있고, 죽음은 본능적으로 살고자 발버둥치는 우리에게 최악의 사건이다. 신경생물학적으로는 생존을 위한 몸부림은 결국 죽음을 힘들게 인지시키고 스트레스를 더해 준다.

악순환이다. 그들은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주위 사람을 도와 주고 봉사하는 일을 하라고 조언한다. 혼자만의 성공을 지향해서는 오히려 죽음에게만 다가선다. 대부분의 성공한 사람이 건강을 해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때때로 그들은 허탈감과 허무감, 우울증으로 고생하기도 한다. 결국 뇌도 '함께 하는 삶'을 원한다는 것이다.

민경이도 사랑하는 오빠나 아픈 아이들에게 줄 희망의 쿠키를 굽는 요리교실을 하면서 한결 편안해지는 걸보면 그 이론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섞일 수 없는 삶과 죽음이 뒤엉켜져 있다. 안타깝지만, 이 또한 인생인 것이다.

김여환 대구의료원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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