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성병휘의 교열 단상] 내 모습

조선 태조 이성계와 무학 대사에 관한 일화다. 어느 날 둘이 만나 대화가 무르익어 갈 무렵 태조가 입을 열었다. "오늘은 군신(君臣)의 예를 떠나서 모처럼 농담이나 해봅시다. 대사께서는 그간 산중에서만 지낸 때문인지 얼굴이 흡사 산돼지 같구려." 무학 대사가 말을 받았다. "제가 보기에 전하의 얼굴은 흡사 자비하신 부처님을 꼭 닮았습니다." "내가 농담을 청했는데 농담이 아닌 아첨을 하다니요?" "전하, 부처님의 눈에는 부처님만 보이고, 돼지의 눈에는 돼지만 보이는 법이지요."

이 세상 사람들 또한 자신들의 마음속에 담겨진 대로 보며 살아간다. "참사람(眞人) 만이 참지식(眞知)을 가질 수 있다."라는 말이 있듯이 순수한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게 보인다. 하지만 순수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가장 깨끗한 것까지도 더럽게 보일 뿐이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인간은 저마다 행복을 바란다."라고 말했다. 그로부터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행복에 대한 갈망은 아직도 계속돼 우리는 그 행복을 다양한 곳에서 추구하며 찾아가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칸 영화제와 어깨를 겨룰 수 있느냐는 잘못된 질문이다." "막쇠는 자기를 겨누고 있는 화살 앞을 두 손으로 막으며 외쳤다."

'겨루다'와 '겨누다'를 구별해보자. '겨루다'는 서로 버티어 승부를 다투다는 뜻으로 "내가 장기로 그와 승부를 겨루면 승산이 있다." "올림픽에서 세계 각국의 선수들은 기량을 겨루게 된다."로 쓰인다. '겨누다'는 활이나 총 따위를 쏠 때 목표물을 향해 방향과 거리를 잡다, 한 물체의 길이나 넓이 따위를 대중이 될 만한 다른 물체와 견주어 헤아리다라는 뜻을 지닌다. "그때 우리는 그 화살의 끝을 스스로의 가슴에 겨누게 되는 것이다." "백화점에서 산 치마를 집에 있는 치수가 같은 옷과 겨누어 보니 조금 컸다."로 활용한다.

'벌이다'와 '벌리다'에 대해서도 알아보자. '벌이다'는 일을 계획하여 시작하거나 펼쳐 놓다, 여러 가지 물건을 늘어놓다라는 뜻이다. "여섯 달 동안 감옥살이를 하고, 지금은 여기 고향에서 청년 운동을 벌이고 있는 사람이었다." "책상 위에 책을 어지럽게 벌여 두고 공부를 한다."로 쓰인다. '벌리다'는 둘 사이를 넓히거나 멀게 하다, 껍질 따위를 열어젖혀서 속의 것을 드러내다라는 의미로 "다른 때같이 다락문을 열지 못하고 빠끔하게 틈을 벌리고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그는 당황한 나머지 두 팔을 벌려 제지하는 몸짓을 지었다."로 활용한다.

우리 눈에 다른 사람의 단점이 자꾸 보이는 것은 내 안에 사랑이 없고 마음이 메말랐다는 증거이다. 다른 사람이 존경스럽고 귀하게 보인다는 것은 내가 그러한 존재라는 것과 다름 아니다. 이처럼 내 마음에 비추어진 상대방의 모습이 바로 내 모습이다. 지금 나의 모습은 어떤지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성병휘<교정부장 sbh12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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