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겨울, 전수신 사장의 뒤를 이어 한행수 사장이 부임했다. 하지만, 그는 경리통이라 야구에는 문외한이어서 뒤를 받쳐줄 전문직 단장이 필요했다. 현직에서 떠나있던 김재하 씨가 단장으로 발탁됐다.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였다.
대구상고를 졸업하고 제일모직에서 근무했던 그는 프로야구 초창기 삼성 라이온즈의 경리 업무를 맡으면서 야구와 인연을 맺었다.
업무의 핵심을 정확히 파악해 맵시 있게 일을 처리하는 소질이 뛰어났고 야구를 워낙 좋아해 야구단 운영에도 남다른 식견을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었지만, 기회가 닿지 않았던 것이다.
업무가 경리이다 보니 처음부터 프런트 업무에 깊숙이 관여하지 않았고, 성적을 내고 싶은 구단 사장과 이사들의 간섭, 외압이 심했던 분위기서 소견을 드러내지 않은 채 오랜 기간 내실만 키워온 때문이었다.
같은 경리통이었던 한행수 사장과의 동행은 김재하 단장에게는 큰 부담이면서도 행운이었다. 한 사장이 야구에는 문외한이었기에 현장 업무의 전권을 위임받은 행운과 함께 실제 야구단 운영을 책임져야 하는 부담도 따랐던 것이었다.
그 역시 초보 단장이었기에 산적한 난제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고심하던 그는 삼성의 현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판단했다. 야구단을 따라 전국을 돌면서 야구 원로와 언론 및 구단 관계자들로부터 조언을 받았다. 그러나 관계자는 관계자일 뿐, 당사자가 아니어서 정곡을 찌르는 조언은 없었다.
뜻이 통했던 것일까? 광주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은 다름 아닌 정동진 경기감독관이었다.
그는 전임 수석코치와 감독을 역임하면서 삼성의 내부 사정을 훤히 아는 유일한 외부 사람이었다. 더군다나 미국 유학에 태평양 감독을 지내면서 한국시리즈에도 진출한 감독 출신이어서 누구보다도 우승을 원했던 사람이었다.
확실한 보따리의 주인을 만나긴 했지만 정 감독은 '크레믈린'이란 별명답게 함구했다.
대구상고 후배로 절친했던 김재하 단장은 진심으로 간곡하게 도움을 청했고, 마침내 마음을 움직인 그날 밤 그들은 깊은 대화를 나눴다.
대화의 핵심은 첫째 적을 만들지 말 것, 둘째 김응용 감독을 영입할 것, 셋째 김 감독에게 전권을 위임할 것이었다.
얼핏 단순해 보이지만 모두 깊은 뜻이 있었다. 원칙을 무시하고 돈으로 해결하려는 구단의 자세에 거부감이 있고, 주변을 소홀히 상대해 친구가 없으며 떠나간 선수나 직원들조차도 다시 찾지 않는 구단이니 누가 삼성이 잘되길 바라겠느냐는 질타였다.
야구가 잘되려면 우선 주변의 응원과 힘이 필요한데 그 기반부터가 약하는 뜻이었다.
김응용 감독은 코치와 선수의 장악은 물론 구설수 없이 야구에만 전념할 환경을 만들 수 있는 유일한 감독이니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전권 위임은 간섭이 일절 없는 프런트가 되어야 비로소 팀워크가 형성된다는 뜻이었다.
밤사이 미래의 청사진은 김 단장의 머릿속으로 그려지고 있었고, 가닥을 잡은 김 단장의 빠른 행보도 다음 날부터 시작됐다.
최종문 야구해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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