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는 항구에 있으면 안전하지만 그것이 배를 만든 이유는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우리의 꿈도 배와 같습니다. 우리의 상상력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람과 싸우고 파도와 부딪쳐야 합니다. 어둠을 헤치고 폭풍우를 견뎌내야 합니다. 안전한 항구를 버리고 거친 바다로 나가는 당신의 푸른 꿈을 사랑합니다.(임헌우의 '상상력에 엔진을 달아라' 중에서)
'상급학교 진학을 위해 친구를 경쟁자로 생각하는 학생 문화, 친구의 아픔을 방관하고 나만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경쟁 문화' 등에 대한 전반적인 반성을 담고 싶었다. 하지만 학생들이 제출한 원고의 대부분이 학교폭력과 따돌림 문제 등 이른바 현재 부정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내용으로 이뤄져 있었다. 부정적인 현실에 대한 비판보다는 긍정적인 문화를 보여줌으로써 변화의 길을 모색해보고 싶었던 내 프레임이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며칠 동안 고민한 끝에 결정을 내렸다. '학생들이 문제로 생각하고 있다면 그대로 존중하자. 문제는 현상 자체보다 그 현상을 어떻게 표현하고 전망을 제시하느냐다'라고 판단했다. 인성교육이 제대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학생들의 자발성에 근거한 자율적인 풍경을 통해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친구(2012년도 사랑과 행복이 있는 학생 주도 토크 콘서트)'를 주제로 삼았다. 여기다 대담, 코미디, 개그, 만담, 뮤지컬, 판소리, 모의법정 등 시교육청 대강당에서 발표 가능한 다양한 형식의 공연을 자유롭게 선택해 자신들의 메시지를 청중에게 호소력 있게 전달할 수 있도록 전체를 재구성했다.
10월 20일, 1차 리허설이 진행됐다. 곳곳에서 문제가 드러나고 공연은 대부분 초등학교 학예회 수준이었다. 토크 콘서트는 아직 준비 단계였다. 일주일을 남기고 행사 전반에 대한 회의가 더욱 짙게 남았다. '내가 너무 황당한 꿈을 꾸었나? 입시에 시달리는 아이들에게 무리한 요구였나?'
리허설이 끝나고 불면의 밤을 보낸 다음 날 아침,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선생님, 실망하셨지요? 하지만 우리 정말 열심히 준비하고 있어요. 정규수업에, 보충수업에, 자율학습에 시간을 내기가 정말 어렵지만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왜 그렇게 하는지 아세요? 인성교육은 학생 자신만의 몫이 아니라 학생과 교사, 학부모, 교육청이 함께 서로의 생각을 허심탄회하게 주고받을 수 있을 때 부쩍 자라는 것이라고 믿어요. 이러한 관점에서 대구 학생들과 교사, 학부모, 교육청이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는 살아있는 인성교육의 장이 열렸잖아요. 그게 토크 콘서트라고 믿어요. 그러니까 반드시 우리들은 잘 해낼 거예요. 정말 어렵게 만든 우리들을 위한 시간이잖아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뭘 원한 거지? 아이들에게 프로와 같은 수준을 원한 건가? 본질보다는 행사 자체에 마음을 둔 것은 아닌가?' 아이들이 직접 느낄 정도였던 내 옹졸함에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내가 할 일을 다시 생각했다. 아이들을 위한 음향시설, 홍보 리플릿, 전반적인 진행 보조 등에 대해 실질적인 점검에 들어갔다.
이제 거침이 없었다. 아이들 몫은 아이들에게 맡기고 어른들이 도와줄 일들만 떠올렸다. 10월 26일 저녁에 2차 리허설이 열렸다. 만족스러웠다. 리허설 시작 전, 한 학생에게 물었다. 자신 있느냐고. 그 학생이 대답했다. "아마 깜짝 놀라실 거예요. 일주일 전의 우리들이 아니랍니다. 지켜봐 주세요."
드디어 10월 27일, 토크 콘서트가 열렸다. 일주일 만에 아이들은 전문가 같은 멋진 공연으로 화답했고, 토크 콘서트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상처를 축제로 승화시키는 놀라운 힘을 보여주었다. 아이들의 잠재능력은 무한하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깨닫는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끝나고 한 학생이 던진 말, "이런 거 또 언제 하죠?"
한준희 대구시교육청 장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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