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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에서 깨어나는 21세기 실크로드]<제2부> 20. 신비의 이식쿨 호수

경상북도 크기의 뜨거운 호수 "저기에서 괴물이 나온대"

푸른 벨트처럼 펼쳐진 물빛이 아름다운 이식쿨 호수. 많은 사람들이 물가에서 수영을 즐기고 있다. 호수 바닥에 잠겨 있는 고대 왕국의 이야기는 신비감을 더해준다.
푸른 벨트처럼 펼쳐진 물빛이 아름다운 이식쿨 호수. 많은 사람들이 물가에서 수영을 즐기고 있다. 호수 바닥에 잠겨 있는 고대 왕국의 이야기는 신비감을 더해준다.
천산산맥의 연봉에 둘러싸인 호수 주변의 날씨는 변화가 심해 자주 무지개가 나타나 눈을 즐겁게 한다.
천산산맥의 연봉에 둘러싸인 호수 주변의 날씨는 변화가 심해 자주 무지개가 나타나 눈을 즐겁게 한다.
유람선을 타고 호수 가운데로 나가면, 영혼이 맑아지는 것 같은 평안함을 느낀다.
유람선을 타고 호수 가운데로 나가면, 영혼이 맑아지는 것 같은 평안함을 느낀다.
세계각지에서 연간 100만 명이 넘는 관광객들이 찾는 이식쿨 호수 주위에는 많은 리조트 시설이 갖춰져 있다.
세계각지에서 연간 100만 명이 넘는 관광객들이 찾는 이식쿨 호수 주위에는 많은 리조트 시설이 갖춰져 있다.

아름답고 신비스런 이식쿨 호수는 만년설을 하얗게 머리에 두른 천산산맥의 지맥들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었다. 키르기스스탄의 수도 비쉬켁 시 동쪽 인근에 있으면서도 소련 치하에 있을 때는 오랫동안 외국인 출입금지 구역으로 숨겨져 있었다. '중앙아시아의 진주'로 불리는 이식쿨 호는 해발 1,600m에 위치하고 있으나 특이하게 겨울에도 얼지 않는 호수이다. 따라서 키르기스어로 '이식'은 '뜨거운', '쿨'은 '호수'라는 뜻으로 '뜨거운 호수'라는 말이 된다. 동서 길이 180㎞, 남북 폭이 30~70㎞, 전체 둘레 길이가 700㎞가 넘어 경상북도의 면적과 비슷하다고 한다. '키르기스의 바다'로도 불리는 거대한 이 호수는 이 나라 관광의 주 수입원이다.

호수의 투명도는 시베리아 바이칼 호수에 이어 세계 두 번째. 배를 타고 위에서 물속을 들여다보면 고대도시의 흔적이 보인다고 한다. 호수 바닥으로 가라앉은 고대 왕국의 이야기는 많은 상상을 불러와 더욱 신비감을 더해준다. 가끔 호반을 따라 청동기시대의 유물들이 흘러나오기도 한다는데 스키타이의 일족인 '사카족' 또는 오손(烏孫)족의 것으로 보고 있다. 그 후에는 기마민족인 서돌궐의 중심지였다. 이식쿨 호수 주변은 토지가 비옥하여 일찍부터 많은 왕국들이 각축전을 벌여왔던 지역이었다. 소련과학아카데미 고고학연구소는 이미 1958년부터 수중탐사를 시작했었다. 그 결과 성벽의 흔적 등 거대한 취락 구조를 발견하고 많은 유물들을 인양했었고 지금도 탐사를 계속하고 있다. 일본 NHK-TV도 수중촬영에 성공하여 '호수바닥으로 사라진 길-비밀의 호수'라는 프로를 방영해 관심을 끌었다. 그러면 고대왕국의 도시가 어째서 호수 바닥으로 가라앉은 것인가. 아직 확실하게 밝혀지진 않았으나 몇 차례의 거대한 지진으로 인한 지반침하가 있었거나 갑작스런 기후변화로 주변에 방대하게 분포된 빙하가 일제히 녹아 호수로 흘러들면서 서서히 수면이 수십m 이상 상승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어찌 됐건 수중도시의 실체가 드러난다면 스키타이 문명이나 유목 기마민족과 연관이 있는 신라 천년의 문명에 새로운 연결고리도 나타날지 모른다는 상상을 해본다. 역사적으로 비슷한 시기에 그려졌던 신라사신의 벽화가 출토된 사마르칸트와 크게 멀지 않은 길목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식쿨 호 옆으로 통하는 실크로드는 역사적으로 많은 의미를 가진 루트이다. 우선 중국 실크로드의 개척자로 불리는 한나라의 장건이 흉노 작전을 위해 이곳을 지났다. 인도로 향하던 현장법사도 남쪽 호반을 따라 통과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 길은 그 당시 이미 정비된 실크로드 오아시스 북도로 고구려 유민 고선지 장군이 서역원정을 단행할 때 행군했던 길이기도 하다. 당나라 시인 이백의 출생지도 호수 남쪽 눈 덮인 천산산맥 연봉 아래였는데 상인이었던 부친을 따라 그곳에서 성장했다고 한다. 현장은 '대당서역기'에서 '맑은 큰못'이라는 뜻으로 대청지(大淸池)라고 표현했다. 그는 호수를 보고 '물은 검푸른 빛을 띠고 맛은 짜고 씁쓰레하다. 물고기와 용이 뒤섞여 살며 가끔 괴물이 출몰하기도 한다'고 기록했다. 지금도 관광객을 모으기 위한 이식쿨 호수의 괴물 출현 소문이 흘러나오기도 한다.

비쉬켁에서 출발하여 3시간 정도 달리자 이식쿨 호수의 서쪽 끝자락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약 1시간 동안 계속해서 푸른색의 호수를 옆으로 보며 나란히 달려간다. 태양의 위치에 따라 약한 녹색에서 푸른색까지 수면의 색상이 하루에도 여러 번 다양하게 보여진다. 폭넓은 푸른 벨트처럼 끝없이 이어지는 물빛이 변화무쌍하고 신비하게 보여서 잠시 푸른색의 이름들을 생각해 본다. 에메랄드그린, 스카이 블루, 코발트블루, 감청색 등으로 표현이 가능할까. 사진을 예술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물의 형태에서 느껴지는 다양한 조형성을 이곳 이식쿨에서는 발견할 수가 있다. 멀리 잔잔한 파도 위에 빛의 입자들이 내려앉으면 수많은 반딧불처럼 반사되어 파동으로 퍼져 나간다.

이처럼 아름다운 이식쿨 호수도 옛날에는 천산산맥과 알타이산맥 가운데에 아늑하게 자리 잡고 있었으므로 당시 실크로드를 오가는 상인들에게 좋은 휴식처가 되었을 것이다. 지금은 세계각지에서 연간 100만 명이 넘는 관광객들이 찾는다고 한다. 호수 주위에는 여러 개의 마을과 도시가 있어 여행자들을 위한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배낭여행자들도 대중교통과 싼 숙박시설을 이용하면서 호수의 동서남북을 모두 여행할 수 있다. 유람선을 타고 호수 가운데로 나아가 건너편 만년설의 연봉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영혼까지 맑아지는 것 같은 평안함이 밀려온다. 이식쿨 호수는 신이 키르기스스탄에 준 가장 아름다운 선물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물보라를 일으키며 바나나보트의 속도감을 즐기는 젊은이들은 이식쿨 호수의 물속에 잠겨 있는 신비의 왕국을 알기나 할까.

글·사진: 박순국(전 매일신문 편집위원) sijen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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