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박현수의 시와 함께] 강-박소유

어머니를 따라 강에 간 적이 있었지요

열 몇 살 때 피난 가서 빨래했다는 한탄강은 친정 없는 어머니의 평생 피난처였어요

아무리 멀어도 못 갈게 없는 기억은 그래서 순식간입니다

죽은 병사의 손도 발도 꽃잎처럼 떠내려 오는데

그걸 휘휘 내저으며 빨래했다는 꽃다운 나이는 그 자리 그대로 있었던가요

너무나 오래 들었던 이야기를 처음 듣는 사람처럼

보고

또 보고

흘러가는 강물이 끊임없이 나를 지켜보고 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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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역사서에서 읽을 수 없는 역사의 한 장면을 시에서 읽는 경우가 있습니다. 김종삼 시인의 '민간인'이라는 작품처럼 말입니다. 시는 단지 한 장면을 보여주지만, 그것은 한 개인의 구체적이고도 생생한 삶에서 나온 것이라 영원한 장면이 됩니다.

이 시의 배경에 깔린 비극적인 역사도 그런 영원한 장면입니다. 역사서에서 전쟁으로 강물이 핏빛으로 바뀌었다는 표현이 있지만, 그다지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어머니의 삶과 섞여 있는 구체적인 역사야말로 진정한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시인·경북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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