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삼력의 시네마 이야기] 영화와의 '허니문'이 끝나고 나면

인생에는 때때로 '허니문'이라 불리는 말 그대로 달콤한 기간이 있다. 원하는 대학에 막 입학했을 때, 자신이 좋아하던 사람과 연애를 시작했을 때, 그리고 갖기를 원하던 물건을 샀을 때 등등 행복을 느끼는 시간들이 있다. 하지만 이름처럼 그 시간이 영원히 계속되지는 않는다.

인류가 창조한 역동적인 예술분야 중 하나인 영화와의 허니문 역시 마찬가지다. 영화에 도전하는 많은 이들이 이 행복했던 시간이 끝나고 난 뒤 적지 않게 당황하는 모습을 보인다. 영화 현장에 나가게 되면 2, 3년간이 정말 재밌다. 스태프들의 열정과 배우들의 헌신으로 촬영장은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시간이 흐르면 그 노력의 결과물을 스크린에서 볼 수 있다. 학교에서 영화를 배우는 것 또한 그와 다르지 않다. 학생들은 처음 만져보는 카메라, 영상 문법과 역사를 파고들수록 우주처럼 깊이를 알 수 없는 영화의 세계에 흠뻑 빠지게 된다.

하지만 꿈과 환상에서 빠져나와 현실을 바라보게 될 때쯤이면 혼란이 시작된다. 춥고 잠이 오고 배가 고파도 늘 즐겁기만 하던 촬영장이 이 시점에서는 고된 노동의 현장이 되고 일반 직장인보다 많지 않은 급여는 삶의 족쇄가 된다. 그리고 어느 순간 자신이 꿈을 창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숙련된 현장 노동자가 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면서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학생들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공부를 시작하기 전 극장에서 저 정도라면 내가 더 잘 만들 수 있겠다고 호언장담하던 영화의 감독들이 막상 학업을 시작해 보니 신처럼 보이고 통계상 같이 공부하는 이들 중에 매우 소수만이 장래에 한 분야의 메인 스태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공포로 다가온다. 그리고 갑자기 학업을 마칠 때쯤이 되면서 나에게 이 길이 옳은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전공과 다른 직장을 알아보기도 한다.

필자는 종교상 윤회를 믿지 않지만, 만약 다음 세상에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그래서 그때도 영화를 할 수 있다면 너무 행복할 것이다. 하지만 필자 역시 영화를 만들고 영화를 가르치는 것이 마냥 즐거우냐고 물으면 고개를 젓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은 일상과 의무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친구들과 후배들과 제자들에게 꿈을 끝까지 포기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당신이 어떤 일을 하더라도 언젠가 허니문은 끝이 날 것이고 그다음 단계가 찾아오는 것이라면 인생의 선택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이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에서이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하지만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일이 아니라면 인생은 조금 덜 행복할 것이다.

김삼력<영산대 영화영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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