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혼란하면 스스로를 미륵(彌勒)이라 부르며 세상을 구하겠다고 호언장담하는 위인(?)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우리 역사상 미륵을 자칭한 가장 대표적인 인물로 궁예(弓裔)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통일신라 말기 도탄에 빠진 중생 구제를 외치며 후고구려를 건국했던 궁예는 살아있는 미륵으로 자처했으며, 사람의 마음을 읽는다는 소위 관심법(觀心法)을 통해 신하와 백성들을 휘어잡았다.
그러나 포악하고 비현실적인 언행과 통치 스타일로 인심을 잃고 부하인 왕건에게 내몰리며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그는 난세의 영웅이기도 했지만, 악한 군주의 표상으로 남았을 뿐이다.
아편전쟁으로 내우외환에 시달리던 청나라 말기 개신교 이념에 바탕을 둔 메시아를 자칭하며 신분 차별 없는 세상 즉 '태평천국'(太平天國)을 내세웠던 홍수전(洪秀全)도 결국은 국정 능력이 없는 지도부의 내분과 부패로 몰락의 길을 걸었다.
미륵 신앙은 이처럼 난세에 출현하기 때문에 미래에 대한 유토피아적 메시지를 담고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미륵은 불평등하고 고단한 현실에서 벗어나 더 나은 내일의 희망을 꿈꾸는 민중의 구원 신앙으로 발전하곤 했다.
이 때문에 미륵 신앙의 대상은 당연히 지배 계층보다는 피지배 계층, 가진 자보다는 못 가진 자들이었다. 중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미륵 신앙은 면면히 이어져 오면서 혼란기의 역사적 물줄기를 바꿔놓곤 했던 것이다.
통일신라를 멸망으로 이끈 궁예의 미륵 신앙이 그랬듯이, 청 왕조를 10여 년이나 휩쓸었던 홍수전의 태평천국운동 역시 지배 계층의 수탈로 민중의 고통이 극에 달했던 시기에 등장했다.
정치적 혼란과 왜구의 침략으로 민중 봉기가 빈발하던 고려 말에도 미륵 신앙이 활발했으며, 나라를 잃고 표류하던 암울한 일제강점기에도 미륵 세계의 새 세상을 표방한 신흥종교가 나타났음은 물론이다.
민중의 입장에서 보면 서양의 메시아 사상 또한 미륵 사상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적잖다. 그러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미륵이나 메시아가 현세에 출현해 유토피아적인 이상 세계를 실현한 예는 아직 없다.
정치, 사회적인 개혁을 통한 멋진 신세계를 약속했던 '안철수 신드롬' 또한 미륵과 메시아 신앙의 현대적 변주가 아닐지.
댓글 많은 뉴스
12년 간 가능했던 언어치료사 시험 불가 대법 판결…사이버대 학생들 어떡하나
한동훈 "이재명 혐의 잡스럽지만, 영향 크다…생중계해야"
[속보] 윤 대통령 "모든 게 제 불찰, 진심 어린 사과"
홍준표 "TK 행정통합 주민투표 요구…방해에 불과"
안동시민들 절박한 외침 "지역이 사라진다! 역사속으로 없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