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정웅의 노거수와 사람들] 화엄종조 의상 대사와 영주 부석사 선비화

의상이 꽂은 지팡이에 돋은 싹이 자란 나무

천년고찰 부석사는 해동화엄종찰(海東華嚴宗刹)이다. 그러나 일반인들에게는 배흘림기둥으로 잘 알려진 무량수전(無量壽殿, 국보 제18호)이 있는 곳으로 더 잘 알려진 절이다. 언제 어느 때 찾아도 좋지만 절 입구의 은행나무 가로수가 황금색으로 물드는 가을이 가장 좋다.

그러나 은행나무는 절과 어울리지 않는 나무라는 아쉬움이 있다. 공자(孔子)가 제자를 가르친 곳을 행단(杏壇)이라 하여 향교에 많이 심기 때문이다.

오히려 사천왕문을 지나 초입에서 만나는 보리수를 심는 것이 바람직하다. 부처님이 득도한 나무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보리수는 아열대지방인 인도에서 자라는 보리수(菩提樹)가 아니다. 잎 모양이 비슷한 피나무과의 '찰피나무'를 그렇게 부르고 있다.

불교에는 3대 성수(聖樹)가 있다. 보리수와 더불어, 부처님이 태어날 때 어머니 마야부인이 잡았다는 사찐나무(無憂樹), 고행 중에 얻은 병으로 그 아래에서 돌아갔다는 사라수를 일컫는다.

부석사에는 국보급 문화재가 많아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식물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수령 1천300여 년의 선비화(禪扉花)다. 의상 대사가 꽂은 지팡이에 돋은 싹이 자란 나무라고 한다. 그러나 이 선비화의 바른 이름은 '골담초'(骨擔草)이다. 언제부터 왜, 선비화로 불렀는지에 대해서는 특별한 내용이 전해오지 않는 것 같다.

가을에 뿌리를 채취하여 햇볕에 말려 달여 먹으면 풍(風)을 없애고 관절염, 신경통, 고혈압에 좋다. 그런데 잎을 달여 먹으면 아들을 낳는다고 잘못 알려지면서 가지를 꺾어 가는 사람이 많아 철책으로 보호하고 있다.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광해군 시절 간신 이이첨의 심복 정조(鄭造)가 경상도관찰사가 되어 부석사를 방문하게 되었다. 그는 오만하게도 선비화가 의상 대사의 지팡이였다는 사실을 알고 '나도 지팡이를 만들면 좋겠다'고 하며 톱으로 잘라 갔다. 그 후 인조가 왕위에 오르면서 그는 역적으로 몰려 죽임을 당했다." 방자한 그의 행동에 부처님이 내린 벌인지도 모른다.

나무와 풀을 구분하는 방법 중에 가장 일반적인 기준은 줄기가 해마다 굵어지느냐 그렇지 않으냐에 있다. 그런데 선비화는 엄연한 나무임에도 1천 년도 더 지난 지금 지름이 2~3㎝에 불과하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이런 현상이 생기는 것일까? 더구나 처마 안쪽에서 자라고 있어 필요한 햇볕과 수분을 충분히 공급받지 못하고 있다. 이런 궁금증은 조선의 최고 성리학자인 퇴계 이황(1501~1570)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그는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탁옥삼삼의사문(擢玉森森倚寺門): 빽빽하게 빼어난 옥 같은 줄기 절문에 기대니

승언탁석화령근(僧言卓錫化靈根): 지팡이가 신비하게 뿌리를 내린 것이라 중이 말하네.

장두자유조계수(杖頭自有曹溪水): 지팡이 머리에 저절로 조계의 물이 있어서

불차건곤우로은(不借乾坤雨露恩): 건곤의 비와 이슬 은혜를 빌리지 아니했네.

조계의 물이 있다고 한 것은 부처님의 가피가 있음을, 비와 이슬의 은혜를 빌리지 않았다는 것은 자연적으로 공급되는 수분을 받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 의문은 최근 홍성천(경북대 명예교수) 박사에 의해 밝혀졌다. 조사에 의하면 줄기가 계속해서 굵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자라면 죽고 옆에서 다시 가지가 나와 다음 세대를 이어가며, 비를 맞지 않기는 하나 처마 밖으로 길게 뿌리를 뻗어 먼 곳에 있는 수분을 빨아들이며, 나무의 특성상 본디부터 건조(乾燥)한 곳에 강한 나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런 과학적인 규명에도 불구하고 경이로운 현상임은 틀림없다. 의상 대사(625~702)는 원효와 쌍벽을 이루는 고승으로 중국에서 불법을 공부하고 돌아와 우리나라에 화엄종(華嚴宗)을 널리 보급한 스님이다. 신라에 의해 패망한 고구려나 백제 사람들을 위로하고, 전쟁으로 지친 중생들의 심신을 어루만져주기 위해 전국에 걸쳐 10여 곳에 절을 지으니 이른바 '화엄십찰'(華嚴十刹)이다.

스님은 이 땅에 화엄사상을 널리 펼치고자 했다. 천 년도 더 지난 지금도 스님의 발원은 유효할 것이다. '천 년 화엄의 뿌리'인 이 선비화를 부석사 한 곳에서만 철책에 가둬두고 보호할 것이 아니라, 많이 번식시켜 스님이 창건한 모든 절에 보내 화엄의 오묘한 진리가 꽃피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산문(山門)을 나섰다.

대구생명의 숲 운영위원(ljw167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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