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신남희의 즐거운 책 읽기] 강의/신영복/돌베개

신영복 선생의 강의로 듣는 동양고전 읽는 법

# 당대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이 고전 읽기의 생명

노르웨이의 어부들은 바다에서 잡은 정어리를 저장하는 탱크 속에 반드시 천적인 메기를 넣는 관습이 있다. 천적을 만난 불편함이 정어리를 살아 있게 하기 때문이다. 신영복 선생의 '강의'에 나오는 이야기다. '강의'는 선생이 성공회대에서 고전 강독이란 강좌명으로 진행한 강의를 정리한 것이다.

강의는 선생이 고전과 인연을 맺게 된 사연과 고전의 의미로 시작해 중국의 시경, 주역, 논어, 맹자, 노자, 장자, 묵자, 순자, 법가를 망라한 동양고전 독법을 소개한다.

고전을 읽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관점이 중요하다. 역사가 다시 쓰는 현대사이듯이 고전 독법 역시 과거의 재조명이 생명이다. 당대 사회의 당면 과제에 대한 문제의식이 고전 독법의 전 과정에 관철되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선생은 과거를 재조명하고 그것을 통하여 현재와 미래를 모색하는 것을 기본 관점으로 삼는다고 말한다.

'강의'의 고전은 약 3천여 년 전에 채록되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시로, 중국 사상과 문화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시경' 읽기로 시작한다.

"저 강둑길 따라 나뭇가지 꺾는다./ 기다리는 임은 오시지 않고 그립기가 아침을 굶은 듯 간절하구나./ 저 강둑길 따라 나뭇가지 꺾는다./ 저기 기다리는 임 오시는구나. 나를 멀리하여 버리지 않으셨구나./ 방어 꼬리 붉고 정치는 불타는 듯 가혹하다./ 비록 불타는 듯 가혹하더라도 부모가 바로 가까이에 계시는구려."

'강둑에서'라는 제목의 이 시는 주나라 말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전쟁터로 나갔거나, 만리장성 축조 같은 사역에 동원되어 벌써 몇 년째 소식이 없는 낭군을 기다리는 가난한 여인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시경'에는 모두 305편의 시가 실려 있다. 그 절반이 넘는 양이 국풍이다. 국풍은 각국의 채시관이 거리에서 목탁을 두드리며 백성들의 노래를 수집한 것이다. 민간에서 불리는 노래를 채시관들이 수집한 이유는 무엇일까? 민심을 읽고 민심을 다스려 나가기 위한 수단이었을 것이다. 공자도 그 나라의 노래를 들으면 그 나라의 정치를 알 수 있다고 하였다.

유럽 근대사의 구성 원리가 근본에 있어서 '존재론'임에 비하여 동양의 사회 구성 원리는 '관계론'이다. 선생은 이러한 시각에서 '주역'에서 관계론을 읽고, 인간 관계론의 보고로서 '논어'를 해설한다.

'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군자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지배하려고 하지 않으며, 소인은 지배하려고 하며 공존하지 못한다). 자본주의 논리가 바로 존재론의 논리이며 지배, 흡수, 합병이라는 '동의 논리'이다. '동의 논리'는 종교와 언어까지도 동일할 것을 요구한다. 반면 '화의 논리'는 자기와 다른 가치를 존중한다. 타자를 흡수하고 지배함으로써 자기를 강화하려는 존재론적 의지를 갖지 않는다. 차이와 다양성이 존중됨으로써 비로소 공존과 평화가 가능하며 나아가 진정한 문화의 질적 발전이 가능하다. 화동 담론이 우리의 통일론에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이유이다. '화의 원리'는 통일 과정의 출발점이면서 궁극적으로는 종착점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學而不思則罔: 현실적 조건이 비추어진 보편주의적 이론은 현실에 어둡다. 思而不學則殆: 특수한 경험적 지식을 보편화하는 것은 위험하다.' 공부란 관계성에 대한 자각과 성찰이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 것을 탓하는 것이 존재론적 사고라면, 관계론적 사고는 내가 남을 알지 못하는 것을 근심하는 것이다. 한편 공자의 인이 개인적 관점에서 규정한 인간관계의 원리라면 맹자의 의는 사회적 관계로서의 인간관계를 의미한다.

흔히 우리는 외부에서 거대한 변화의 물결이 밀려올 것이기 때문에 대비해야 한다는 말을 들어왔다. 그런데 선생은 변화와 미래가 외부로부터 온다는 의식이 바로 식민지 의식의 전형이라고 본다. 미래는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내부로부터, 과거로부터 오기 때문이다. 그것이 지금 여기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이다.

신남희(새벗도서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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