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지상 백일장] 김장하는 날/멀쩡한 그대와 다르게/은행가는 길/물수제비를 뜨며

♥수필-김장하는 날

대관령에 눈이 내린다는 일기예보가 주부들의 마음을 바쁘게 한다. 대구 날씨로는 좀 이른 시기지만 주말을 김장하는 날로 정했다.

시골 어머니께서 장만해 주신 고춧가루와 충청도 큰언니가 소작해 보내준 마늘과 이웃 언니 친정에서 가져와 준 젓갈과 생새우에 곱게 쑨 찹쌀 풀과 육수가 어우러져 반짝반짝 윤나는 맛깔스런 김치 양념이 만들어졌다. 보기만 해도 침이 고인다.

딸아이를 앉혀 놓고 김치 담그는 법을 교육했다. 포기 사이사이에 양념을 바르는 조그마한 손을 보며 김치는 꼭 담가 먹어야 하는 우리 전통 식단이라고 강조했다.

내가 어릴 적 김장할 때는 짚으로 움막을 만들고 단지를 묻고 김치를 보관했다. 자연 숙성으로 봄이 되면 새콤하게 시어진 김치를 물에 씻어 쌈을 사먹기도 했지만 지금은 멋진 디자인의 김치냉장고가 계절에 관계없이 언제나 싱싱하고 맛깔스런 김치를 꺼내 먹게 한다.

저녁이면 고슬고슬 지은 햅쌀밥에 얹어 먹는 김치 맛으로 허리 아프다고 징징대던 모습은 사라지고 맛있는 웃음이 가득할 것이다. 다음 주에는 내가 만든 김치단지를 들고 어머니 댁에 가 맛보여 드려야겠다.

강정숙(대구 중구 대봉1동)

♥시1-멀쩡한 그대와 다르게

이별의 냄새가 진한 오기와 함께

바람을 가지고 왔다

추억은 칼로 베인 듯 상처를 입고

떠나버린 그대는

이 두려운 느낌을 이해할 수 없는 일

살아가다 보면 다시 살아갈 의미로

이렇게 쉬웠던 이별 기억할지라도

이별보다

혼자라는 고통이 더 아프다

멀쩡한 그대와 다르게

이별 뒤에 만나는 사랑의 잔영에 놀라하고

보상할 수 없는 지난 시간의 아픔에 겨워하며

손상되어 가는 기억 추슬러 詩를 쓰고 있는

나는

매일이 아프다

이지희(대구 수성구 범어3동)

♥시2-은행가는 길

유달리 고운 단풍

은행잎이 우수수 떨어진다.

황금 같은 거리를 바삐 걷다 보니

내 바짓자락에 돌아눕는 은행잎

세상이 온통 은행이다

은행까지 가는 동안

부자가 된 기분에 걸음이 가벼웠다.

열매가 터져 구린내 나는 신발바닥

현관 앞에서 닦아내곤 했는데

세상이 온통 축복이다.

오늘따라 은행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

양일용(대구 달서구 용산동)

♥시3-물수제비를 뜨며

물 위를 걷는 법 배운다

뻣뻣하게 서서도

나를 다 내려놓아서도 안 된다

응어리져 돌이 되어도

결코 모가 나서는 안 된다

동그랗고 납작하게 나를 누르고

최소한의 각도를 지켜야만

통통 튀는 애교로

그의 사랑 받을 수 있다

붉게 타는 노을이 되어

터질 듯한 가슴 안고

살짝살짝 그의 곁에 다가서도

결코 푹 빠져서는 안 되는

빠질 듯 말 듯 아슬아슬한 사랑

지금은 열애 중이다

장정인(김천시 남산동)

♥시4-다시 여기에 서서

가을비 후드득대는 저녁답

우산속에 혼자입니다

젖은 낙엽 사이로

코끝을 스치는

그 흔적을 놓지 못하는

걸음이 굼뜹니다.

어두워지는 거리는 젖어드는데

마음은,

아직도 담아둔 불씨에

시린 두 손을 녹이고 섰습니다

살아서 참 행복했던 여기!

멀리

저무는 산사의 저녁 종소리 울려퍼지면

아득히 밀려오는

멈출 수 없는 그리움이 있습니다.

조정향(대구 중구 대봉동)

※지난주 선정되신 분은 정은덕(대구 수성구 수성1가) 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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