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남산. 우리나라 여느 지역 어디에서든 가장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산 이름 중 하나가 아마 '남산'이 아닐까 싶다.
곳곳에서는 견학을 나온 사람들을 인솔하는 문화해설사의 목소리가 울린다. "해발 468m 금오봉, 495m 고위봉 두 봉우리를 중심으로 골짜기와 능선 등 산 전체가 보물로 가득 차 있고, 산비탈 구석구석이 자연산 소나무 분재 밭입니다. 여기 남산이 문화재로서 진정한 가치가 무엇일까요?"
열정 어린 문화해설사의 설명은 촬영작업에 몰두하고 있던 나를 멈추게 했다. 그리고 그 자리를 피해 나오면서 반사적으로 되뇐 답은 '사진으로 보면 가장 멋있게 볼 수 있을 텐데…'였다. 그러면서 그날은 보통 때보다 더 많은 생각 속에서 셔터를 눌렀던 것 같다.
뿌옇게 내려앉은 새벽 안개 너머로 가려진 소나무가 희미하게 한쪽 눈으로 들어오고, 이내 감추어진 삼릉이 자태를 드러내는 순간 카메라 셔터 소리가 정적을 깨뜨린다. 그런데 마음에 드는 사진 한 장 얻는 일이 쉽지는 않아 그 천 년의 사랑을 채우기는커녕 아직도 주위만 맴돌고 있으니 그 속앓이는 언제 풀어지게 될지 기약이 없어 아쉬울 뿐이다.
특히 남산 배리 삼릉에는 천 년의 장대한 위엄을 받들기라도 하듯 세월 묻힌 남산 소나무 숲과 어울려 수많은 사진인들의 야외 스튜디오 역할을 한다. 그야말로 야외 박물관의 명장면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이곳으로 촬영실습을 올 때마다 한마디씩 내뱉는 소리는 "저 난간만 없으면 참 좋을 텐데…"라는 푸념이다. 문화재를 보호한답시고 어른 키 높이만 한 철제 난간이 떡 하니 가로막혀 있는 것이다. 이럴 때마다 은근히 화가 치밀어 오른다. 우리의 문화 수준은 이런 철제 난간이 아니면 출입을 막는 방법은 없을까?' 하는 의문을 지울 수 없다.
삼릉 반대편을 돌아 경주시 배반동 작은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남산의 또 하나 보물인 거대 자연석 바위 '탑곡마애 조상군'이 자리하고 있고, 그 옆에는 3층 석탑이 마치 이 부처바위를 지키기 위한 듯 빼어난 자태로 서 있다. 이 거대 바위 보물을 어떻게 나의 카메라로 되살아나게 할 수 있을까? 틈만 나면 오르내린 지 어언 10여 년. 하지만 이 역시 아직 나의 렌즈 속으로 들어오지 않고 있다. 역시 문화재 보호를 명목으로 만들어놓은 각종 흉물 탓이다.
문화재를 보호한답시고, 천 년의 신라 혼을 철제 난간으로 막고, 그 안에는 스테인리스 불전함까지 놓아두는 이 우매한 문화재 관리는 언제 잠에서 깨어날까? 10년이 넘도록 이 탑곡 멋진 보물을 온전히 담아낼 마음에 드는 사진 한 장 건져내질 못하고 있으니 그저 한숨만 내쉴 뿐이다.
홍상탁(대구예술대학교 교수'디지털사진문화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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