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5일 오전 10시 30분. 눈보라를 동반한 50년 만의 강추위가 전국을 강타하자 일과 시작과 동시에 난방과 조명 수요가 치솟았다. 직장 사무실에서 직원들이 온풍기와 히터 등 전기제품을 개별로 사용하면서 정오를 넘어서자 예비전력은 300만㎾ 아래로 떨어졌다. 1차 방어선이 무너졌다. 오후에도 난방기 사용은 줄어들지 않았다.
결국 예비전력이 200만㎾ 아래로 내려가더니 급기야 100만㎾까지 떨어져 서울 삼성동 전력거래소 수급상황실은 초비상 상황에 돌입했다. 곧바로 지식경제부, 한국전력은 협의를 거쳐 '순환정전'에 돌입했다.
전력거래소에서 순환정전 순서를 확인하고 있을 무렵, 갑작스럽게 50만㎾급의 인천 영흥화력발전소가 고장 났다. 전력 공급량이 순식간에 떨어지면서 결국 수요가 공급을 넘어섰다. 인천부터 전력 시스템이 차례로 차단됐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날 오후 5시 전국의 모든 전기 공급 시스템이 정지됐다. 대한민국 전역이 '블랙아웃'(대규모 정전)에 빠져들었다.
◆곳곳에서 돌발사고 발생
블랙아웃과 동시에 대한민국 전역은 암흑으로 바뀌었다. 교통이 마비되고 은행과 병원 등의 서비스가 모두 중단됐다. 달구벌대로는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교통신호등이 모두 작동을 멈춰 교차로 곳곳에서 사고가 발생했다. 버스와 차량이 뒤엉켜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 됐다. 반월당네거리 주변 현대백화점과 동아백화점 등 대형 매장의 화려한 조명과 가로등도 사라졌다. 빛이라고는 차량에서 나오는 것뿐이었다.
일반 병원에서는 생명유지장치가 작동을 멈춰 환자들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수술실에서는 환자의 수술을 중단하지 못해 위험한 상황이 계속됐다. 119 관제센터와 경찰서 등에는 전화가 빗발쳤다. 달서구와 수성구 등 대단위 아파트 단지에서는 수백, 수천 명의 사람들이 엘리베이터에 갇혔다. 모든 경찰이 도로 교통정리에 투입된 상황에서 구조 손길을 보내기 어려웠다. 119 구조대 역시 연이은 대형사고 현장에 출동한 상황이었다.
국내 대표 공항인 인천공항도 혼란에 빠졌다. 관제탑과 레이더, 공항 활주로 등 비행 관련 공항 핵심시설은 자체비상발전기를 통해 전력이 공급되면서 비행기의 이착륙에 영향을 받지 않았지만 여객터미널과 탑승동을 비롯한 수화물시설 전체의 가동이 중단됐다. 인천공항의 갑작스러운 단전 상태에서 가동하는 열병합발전소가 예열을 거쳐 1차 전력 공급이 되기까지는 120분이 소요되고 인천공항을 완전 정상화시킬 만한 전력이 공급되기까지는 200분가량이 걸린다. 칠흑 같은 공항에서 이용객들은 3시간을 꼼짝없이 기다려야 했다.
◆업계도 올 '스톱'
대구성서산업단지 내 업체들은 정전 당시 대부분 당일 작업을 마무리하던 중이었다. 하지만 자동차부품과 섬유업체 등 24시간 공장을 가동하는 기업들은 갑작스러운 정전으로 기계 오작동과 불량 생산, 원재료 손해 등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사출 회사들은 생산 라인의 원재료가 정전으로 그대로 굳으면서 하나도 쓸 수 없게 됐다. 직원들은 퇴근하려던 발걸음을 돌려 생산라인을 수리하기 시작했다. 섬유업체는 납기일 걱정보다 당장 기계 고장으로 인한 회사 위기 상황이 더욱 급박해졌다.
한 자동차부품 업체 대표는 "지난해 30분간의 순환정전으로 1천만원의 피해를 입었는데 이번에는 1억원은 훌쩍 넘을 것 같다"고 한숨을 쉬었다. 포항철강공단의 포스코 등 대기업은 자가 발전기를 가동해 블랙아웃 피해를 막았지만 다른 중소기업들은 조업에 차질을 빚었다.
한편 블랙아웃과 동시에 전력거래소는 전국 7곳의 양수발전소에 전화를 걸었다. 화력발전소를 돌릴 전력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다. 설비용량 100만㎾로 국내에서 가장 큰 양수발전소인 강원 양양군 서면의 양양 양수발전소는 곧바로 발전소를 가동했다. 나머지 6개 양수발전소도 동시에 가동됐다. 양양 양수발전소가 1시간가량 운행되자 저장된 물이 바닥을 드러냈고 영월 복합화력발전소가 양양 양수발전소의 전기를 받아 가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완전 복구까지 일주일 이상이 걸렸다.
◆블랙아웃 닥칠 수 있다
이 상황은 가상의 시나리오지만 블랙아웃이 닥치게 되면 이보다 더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이미 지난해 9월 15일 우리는 전국적인 정전사태를 경험한 바 있다. 늦더위 폭염에 따른 전력 수요 급증으로 운행 중인 엘리베이터가 멈춰 서고, 은행과 증권사, 식당 등 생활 필수 시설의 영업이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를 빚었다.
정작 고비는 이번 겨울이다. 올겨울 한파가 일찍 찾아올 것으로 예상돼 그만큼 전력 소비가 늘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기 때문. 올겨울 대부분의 전력예비력은 안정적 예비전력 수준인 400만㎾를 크게 밑돌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1월 3, 4주째에는 전력예비력이 127만㎾까지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자칫 예기치 못하게 전력 공급에 차질이 생기면 지난해 9'15 정전사태처럼 순환단전(전력예비력 100만㎾ 이하)을 해야 하는 상황까지 발생한다. 9'15정전사태 때는 전력예비력이 24만㎾에 불과했다.
고장 난 원전의 단기간 내 재가동을 장담할 수 없는 것도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영광원전 3호기가 제어봉 내부 균열로 연내 정상화가 어려운데다 7천여 개의 위조부품 사용으로 가동이 정지된 영광 5호기와 6호기도 연말까지 부품을 교체, 정상화한다는 게 정부의 방침이지만 수천 개의 부품을 올해 안에 교체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특히 나머지 원전 중에서 하나라도 발전이 정지될 경우 블랙아웃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는 것. 한국수력원자력에 따르면 우리나라 원전 23기에서 올해 사고로 발전이 정지된 사례는 9건에 이른다.
블랙아웃이 발생하면 최소한의 비상전력이 돌아오기까지 3시간 이상이 걸린다. 완전한 복구까지는 일주일이 지나야 가능하다. 우리나라 전력 생산의 30%를 차지하고 있는 원자력발전소가 블랙아웃에 의한 전력 공급 중단으로 자동 냉각에 들어가면서 이를 다시 채우는 데 일주일가량이 필요하기 때문. 일주일가량 복구 작업을 거치는 동안 생산활동 중단으로 입는 직접적인 피해액만 단순 계산해도 11조6천4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창훈'노경석'김봄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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