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인터뷰通] 대구 칠성시장 '옛날 손 찐빵' 마순자 대표

졸지에 남편 잃고 만두집 종업원으로…이젠 내가 만든 찐빵으로 이웃 돕지요

역시 손맛이 최고. 옛날 손찐빵 제조 과정.
"찐빵을 대구 대표음식으로 만들겠습니다." 옛날 손찐빵 대표 마순자 씨가 자신이 만든 찐빵을 들어보이고 있다.
역시 손맛이 최고. 옛날 손찐빵 제조 과정.

경기 침체의 그늘로 유난히 춥게만 느껴지는 요즘. 모락모락 김을 피우는 찐빵은 작은 위안거리다. 따뜻한 찐빵 하나를 손에 집어들면 세파에 찌든 시름을 잠시나마 잊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옛날 손찐빵' 대표 마순자(55) 씨는 불황에도 불구하고 찐빵으로 소외계층에게 희망과 위안을 주고 있다. 가진 것은 진빵 뿐이지만 진빵처럼 따뜻한 정을 이웃에게 나눠주고 있다. 지난달 27일 오후. 대구 칠성시장 내 마 씨의 찐빵집을 찾아갔다. 가게 안은 달콤한 찐빵 냄새로 가득했다. 바쁘게 찐빵을 쪄내느라 가게 안에 가득한 수증기 틈으로 가득한 미소를 가진 얼굴이 취재진을 맞는다. 마순자 씨다. 그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찜통에서 갓 익힌 찐빵을 꺼내 채반으로 옮기고 있었다. 늦지 않은 시간임에도 벌써 마지막으로 만든 찐빵이란다. 담는 도중 뜨끈할 때 맛을 보라며 찐빵 하나를 건넨다. 한 입 베어먹으니 부드러우면서 쫀득함으로 입안에서 살살 녹는다. 때이른 추위에 얼어붙은 마음까지 녹아내린다.

◆갑자기 찾아온 시련

마 씨는 영천중학교 재학 시절 3년 내내 전교 1등을 놓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고교 진학을 포기해야만 했다. "친구들이 예쁜 교복을 입고 다니는 모습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어요.(자존심이 상해) 등교 시간이 되면 문틈으로 훔쳐 보곤 했지요."

중학교 졸업 후 당시 '선경'이라는 회사에 취직했다. 첫 월급을 쥐자 바로 고교 교복을 사서 입었다. 그렇게라도 배우지 못한 한을 풀고 싶어서였다.

3년간 직장 생활을 했지만 공부에 대한 열정은 쉽게 식지 않았다. 사표를 내고 그동안 모은 돈으로 못했던 학업을 시작했다. 학원에 다니며 검정고시 준비에 들어갔다. 이번에는 사랑이 찾아왔다. 첫눈에 반한 남자와 23살의 나이에 결혼했다. 학업에 대한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후 15년간 한 남자의 아내로서 아이들의 엄마로서 평범한 삶을 살았다. 소박한 행복은 계속되지 않았다. 어느날 날벼락이 떨어졌다. 남편이 한치를 먹다 갑자기 숨을 거둔 것이었다.

하루아침에 두 아이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 됐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이를 남겨둔 채 떠나버린 남편이 야속했지만 넋 놓고 앉아 있을 여유조차 없었다. 어린 자식들을 돌봐야 하는 가장이 돼야 했기에 생활전선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만두집 종업원을 시작으로 안해본 일이 없을 정도였다. "새벽 5시부터 밤늦도록 일하는 생활의 연속이었어요. 지금이야 그나마 형편도 폈고 사장님(현재 직원을 7명 두고 있고 겨울철 하루 매출 180만원) 소리라도 듣고 살지만 남편을 잃고 막막했던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나요."

육체적인 피곤은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혼자 산다고 무시하고 색안경을 끼고 볼 때면 살기가 싫을 정도였어요. 오랜만에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가게문을 나서면 뒤에서 수근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두문불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생각보다 따뜻했다. 힘든 마 씨에게 도움의 손길이 이어졌다.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마음으로는 물론, 경제적으로도요. 남편이 남긴 빚을 갚느라 생활 보조금을 받아야 할 정도로 어려웠던 날들이 있었지만 그분들의 도움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었어요."

◆찐빵을 대구 대표 브랜드로 키워

오전 3시면 전국 각지의 상인들이 대구로 모여든다. 가깝게는 청도'영천에서부터 멀리는 부산과 서울에까지 '마순자표 엄마 손찐빵'이 팔려나간다. 상인들이 찐빵을 사 가고 나면 오전 6시부터 찐빵 만들기를 시작한다. "요즘처럼 날씨가 추우면 찐빵이 제철을 맞아 날개돋힌 듯 팔려 나가지요. 덕분에 하루가 어떻게 가는 지 모릅니다."

이곳 찐빵은 유명세를 타 주문이 밀려들고 있다. 진빵을 맛본 사람들이 그 맛을 잊지 못하고 알음알음으로 주문을 하기 때문이다. 취재 중에도 주문 전화가 끊이지 않아 마 씨는 물론 취재진도 정신이 없었다. 일손이 모자랄 경우에는 마 씨도 직접 찐빵을 만든다. 이곳 찐빵이 칠성시장 명물이 되면서 시장에 찐빵가게가 하나둘씩 늘기 시작했다. 마 씨의 가게에서 찐빵 만드는 법을 배운 사람들이 차린 가게들이다. 자연스럽게 칠성시장 찐빵가게들이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됐다.

마 씨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차별화된 찐빵을 만들기 위해 밤샘 연구도 마다 않고 있다. 최근에는 옥수수나 보리 등 몸에 좋은 재료를 이용한 찐빵 만들기에 몰두하고 있다. 찐빵을 대구 대표음식 브랜드로 키우고 싶은 마음에서다.

"원래 제과 분야의 일을 하려고 했지만 IMF 외환 위기 이후 찐빵의 인기가 올라가는 것을 보고 이 길을 선택했는데 후회는 없습니다. 이제는 새하얀 찐빵을 보면 천사같다는 생각을 자주해요. 겉과 속이 모두 부드러운 것이 마음까지 정화되는 느낌이 들지요."

마 씨는 가게를 차린 뒤 하루도 편히 쉬어본 적이 없다. 남들이 다 쉰다는 명절에도 나와서 일했다. 단골의 상당수가 도매상이나 고속도로 휴게소, 전통(5일)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상인들이기 때문이다. "직원들한테도 휴일을 주지 못해서 미안하지요. 이제 제법 돈도 벌고 해서 쉬고 싶은 맘이 굴뚝같지만 우리가 쉬면 우리 찐빵을 가져다 판매하는 상인들이 장사를 할 수 없잖아요. 게다가 찐빵은 오래 두고 팔 수 있는 음식도 아니고 바로 가져다가 팔아야 제맛이니 어쩔 수 없어요."

◆사랑이 있는 찐빵

옛날 손찐빵의 찜통에서 갓 쪄낸 찐빵은 매달 한 차례 대구 중구의 '요셉의 집'으로 배달된다. 많을 때는 1천여 개가 넘는다. 무료 급식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사람들을 위한 간식이다. 인근 무료 급식소나 노인정, 복지관 등에도 전해진다.

10여 년 전 '찐빵 봉사'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직접 배달을 했다. 그러나 가게를 비울 수 없어 봉사단체에 배달을 부탁했다. "자주는 아니고 많이는 아니어도 그래도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돕고 싶었습니다. 찐빵 하나는 군것질거리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한끼의 식사가 될 수 있거든요."

마 씨네 찐빵은 다른 집 찐빵보다 크다. 보통 80g 정도인데 이곳 찐빵은 100g이 넘는다. 그래도 가격(도매가 개당 300원)은 다른 집과 비슷하다. 많이 사든 적게 사든 같은 가격에 팔고 있다. 큰 이익을 남기고 부자가 되는 게 목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모두가 잘 사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속이 꽉 찬 찐빵처럼,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퍼지는 찐빵처럼 모두가 달콤한 인생을 살면 좋겠어요."

최창희기자 cchee@msnet.co.kr

사진'정운철 기자 wo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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