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라이온즈 김현욱(42) 트레이닝 코치는 1년 중 유일한 휴식기인 12월을 분주하게 보내고 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야구선수의 꿈을 이어가는 어린 후배들에게 전할 후원금 마련 때문이다. 김 코치는 4년째 프로야구 선수들에게서 받은 애장품을 자신이 개설한 인터넷 카페 '김현욱의 맛있는 야구'를 통해 경매하고 그 수익금을 환경이 어려운 야구선수 지원에 쓰고 있다. 이런 따뜻한 손길 덕분에 처음 후원금을 받았던 학생은 선수생활을 이어왔고 이제는 고교 졸업을 앞둔 유망주로 성장했다. 김 코치는 "저 역시 가난 때문에 어렵게 야구를 해왔기에 누구보다 그들의 마음을 잘 안다"며 "작은 보탬이 어두운 터널 속에서 힘을 낼 수 있는 빛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선수 애장품 경매로 장학금
김 코치가 인터넷 카페를 개설한 건 2008년 2월이다. 지금의 카페 매니저인 곽정훈 씨의 제안이 계기가 됐다. 현역 코치가 전해주는 상식과 전문적 기술 등 야구와 관련된 내용은 신뢰를 쌓았고, 카페는 개설 1년 만에 회원 2만 명을 확보했다. 금세 소문을 타며 개설 한 달 만에 네이버 '눈에 띄는 카페'에 선정됐고, 2009년과 2011년에는 '카페 스토리'에 뽑히기도 했다. 이듬해부터 시작한 프로야구 선수들의 애장품 경매는 좋은 반응을 얻었다. 처음과 달리 해가 거듭될수록 자발적으로 자신의 애장품을 내놓는 선수들도 많아졌다.
2010년 일본 요미우리에서 연수할 때는 하라 감독에게 친필 붓글씨를 부탁했고, 아베(포수) 선수에겐 포수 미트를 기증받았다. 이승엽'임창용에게서도 글러브와 유니폼을 받았다. 전 롯데 자이언츠 로이스터 감독, 구대성, 최희섭 등의 유니폼, 추신수의 사인볼 등이 이 카페를 통해 주인을 찾았다. 지난해에는 이승엽의 1루수 미트가 137만원, 임창용의 투수 글러브가 140만원, 아베의 포수 미트가 101만원에 낙찰돼 수익금이 1천만원을 넘었다. 한번 선정하면 고교 졸업 때까지 계속해서 지원하다 보니 많은 선수를 지원하진 못하지만 외형보다는 내실을 기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네 번째 경매 일정을 내년 1월로 잡은 김 코치는 선수들의 애장품을 정리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가난에 울었던 선수 시절
김 코치는 가난으로 힘든 선수 생활을 했다. 마산 양덕초교 4학년 때 야구를 시작한 김 코치는 1997년 다승'승률'평균자책점 등 투수 3관왕으로 최고의 자리에 서기까지 가난에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가세가 기울어 6학년 때 대구로 이사를 왔으나, 회비조차 제때 낼 형편이 되지 못했다. 회비 독촉에 시달려야 했고 야구부 식사당번 땐 돈이 없어 남들이 쇠고깃국을 끓일 때 김 코치의 어머니는 된장국을 내놔야 했다.
야구 명문 경북고로 진학했으나 잘하는 선수가 너무 많아 기가 죽었던 김 코치는 어느 날 야간 연습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곰국을 끓여놓고 아들을 기다리는 어머니를 보고는 야구를 못하는 게 미안해 펑펑 울기도 했다.
한양대 시절엔 구대성과 정민태의 그늘에 묻혔다. 대학 3년 때 언더핸드 투수로 전향한 것도 살아남기 위한 방편이었다. 다행히 졸업과 동시에 삼성에 입단했지만 1994년 호주 전지훈련 때 고질적인 허리부상이 재발해 동생의 결혼자금을 받아 칼을 댔다.
이후 쌍방울로 트레이드되는 불운이 겹쳤는데 이때 재기에 힘을 보태준 이가 막 부임한 김성근 감독이었다. 처음에는 실력 없는 선수라고 눈길조차 주지 않던 김 감독에게 매달렸다. '야구를 잘하게 해 달라'고 호소했고 결국 감독의 눈에 들면서 재기에 성공했다. 1997년 투수 부문 3관왕이라는 최고의 자리에도 섰다. 가정형편도 그때부터 나아졌고 1998년 연말엔 다시 삼성의 부름을 받아 화려하게 복귀했다.
김 코치는 "프로 데뷔 때 삼성에서 받은 계약금 2천500만원 중 2천300여만원을 고스란히 집안 빚 갚는 데 썼고, 연봉도 생활비만 빼고는 모두 집으로 보내야 할 만큼 지독한 가난을 겪었다. 다행히 야구를 그만두지 않고 프로선수로서 은퇴할 수 있었지만, 가난 때문에 겪어야 했던 과정이 너무나 힘들어 한 명의 어린 후배라도 그런 설움을 덜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김 코치는 경매 후원뿐 아니라 지인의 도움을 받아 부상당한 어린 선수들의 무료치료를 주선하고 있다.
"저의 작은 보탬이 가난하지만 성실하게 훈련하는 학생들에게 다소나마 용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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