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응용 감독은 2003년 시즌이 끝나자 '애제자' 선동열을 수석코치로 불러들였다. 삼성이 다시 포효하려면 정현욱, 권혁과 미완의 대기 이정호 등 젊은 투수선수들의 조련이 절실했다. 김현욱과 전병호, 노장진은 30대에 접어들었고, 안지만, 권혁, 윤성환 등은 이제 막 프로에 데뷔했거나 저년차여서 믿고 맡기기엔 경험이 부족했다. 배영수, 김진웅, 권오준 등이 주축을 이룬 마운드에 힘을 보탤 영건 발굴이 요구되고 있었다.
엔트리에서 이름을 빼버린 타자들의 공백은 전력에 커다란 구멍을 만들었다. 2004년 시즌을 앞둔 김응용 감독의 머리는 복잡할 수밖에 없었다.
기대 이하의 성적으로 마감한 것도 부담스러웠지만, 시즌 뒤 마해영이 KIA로 가버렸고 이승엽도 일본프로야구 지바 롯데로 진출하며 삼성은 2003년 시즌 94홈런, 267타점을 합작한 두 거포를 한꺼번에 잃어버렸다. 여기에다 유격수 브리또마저 SK로 이적하면서 김응용 감독은 2002년 한국시리즈 우승의 주역들이 빠진 공백을 어느 해보다 크게 느끼며 시즌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
우려는 현실로 다가왔다. 마무리서 선발로 전환한 노장진이 4월 7일 원정지 광주에서 숙소를 이탈, 음주 파동을 일으키며 시즌을 열자마자 악재에 부닥쳤다. 노장진은 곧 팀에 복귀했지만 2군으로 강등됐고, 삼성은 선발 로테이션의 한 축이 무너진 채 시즌에 돌입해야 했다.
5월 5일 어린이날 참사는 삼성을 벼랑 끝으로 몰아갔다. 그날 삼성은 현대를 대구로 불러 8회까지 8대3으로 여유 있게 앞서갔다. 그러나 9회 임창용이 정성훈에게 만루 홈런을 내줘 동점을 허용했고, 연장 11회에 10대14로 역전패당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삼성은 이날 패배로 19일 KIA전서 승리할 때까지 11경기서 1무10패를 당했다. 팀 창단 이후 최다 연패인 10연패의 대재앙을 경험하며 꼴찌로 추락한 성적표를 받아든 삼성엔 반전이 필요했다.
그때 중간계투까지 떨어졌던 배영수가 팀의 연패를 끊어내더니 6월 6일 문학 SK전에선 데뷔 후 첫 완봉승을 거두며 에이스다운 모습을 찾았고, 중고신인 권오준도 선발과 중간을 오가며 위력적 투구를 뽐냈다.
마운드는 위력을 더해갔고 '대포군단'은 '투수왕국'으로 팀 컬러를 바꿔갔다.
9월초 '병풍' 사건에 포수 현재윤과 왼손 셋업맨 지승민, 홀드왕을 노렸던 신인 윤성환, 제5선발 정현욱 등 주전 선수의 증발을 잘 견딘 삼성은 현대와 막판까지 정규시즌 우승을 다퉜고, 한국시리즈서는 9차전까지 가는 끈질긴 승부를 펼친 끝에 아쉽게 준우승으로 2004년 시즌을 마감했다.
삼성과 현대의 재계 라이벌 시리즈는 9차전, 시간 제한(4시간), 이닝 제한(연장 12회)이 어우러진 3무승부에다 연장 10회 노히트노런(비공인) 등의 각종 진기록을 쏟아낸 명승부(삼성 2승3무4패로 준우승)로 팬들을 열광케 했지만, 삼성은 2004년 시즌과 한국시리즈를 치러내며 '세대교체'라는 요구에 응답해야 했다.
삼성은 한국시리즈가 끝나자마자 대대적 정비에 나섰다. 김응용 감독을 프로야구 최초의 전문경영인이라는 명예를 안기며 사장자리에 앉혔고, 감독엔 수석코치 선동열을 승진시켰다. 특히 선 감독에게 임기 5년을 보장하면서 소신 있게 팀을 이끌어갈 수 있도록 신뢰를 보냈다.
FA로 홈런왕 심정수와 박진만을 불러들인 삼성은 신인 보강에도 힘을 쏟았다. 국가대표 3인방 단국대 투수 오승환과 인하대 포수 손승현, 건국대 외야수 조영훈을 영입한 선 감독은 분업화를 도입한 마운드 운영시스템을 본격적으로 가동하며 삼성을 마운드 왕국으로 건설하는 데 주력했다.
최종문 야구해설가는 "한국시리즈 우승에 목말랐던 삼성은 여러 차례 세대교체를 단행했다. 1996년 삼성이 6위에 그치자 백인천 감독은 대구 출신 고참 선수들에게 칼을 빼내 들며 강력한 세대교체에 나섰다. 시즌 후 고참 김성래'이종두'강기웅 등을 정리한 백 감독은 이듬해 혹독한 훈련으로 1997년을 준비했다. 그해 신동주, 최익성, 김태균, 정경배, 이승엽 등 세대교체의 주역들은 대활약을 펼쳤고, 부정배트 시비를 불러올 만큼 무시무시한 공격력을 선보이며 세대교체의 성공을 알리는 듯했지만 결국 한국시리즈 우승에 다가가지 못하며 절반의 성과를 거두는 데 그쳤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후 2002년 한국시리즈 이후 조금씩 진행된 세대교체는 선동열 감독이 부임하며 본격화됐고, 지금의 삼성 전력을 구축하는 기반이 됐다"고 했다.
전통적으로 화끈한 방망이를 트레이드마크로 했던 삼성은 선동열 감독 부임 이후 '지키는 야구'로 색깔을 바꾸면서 타선에서 마운드로 한동안 무게중심이 옮겨졌다. 2005년과 2006년, 막강 투수력을 앞세워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을 일궈냈지만, 삼성은 2005년 이후로는 외부 FA의 영입을 멈추며 젊은 피 수혈에 집중했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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