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8년쯤 전 처가 쪽 상가에서 꽤 긴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 오랜만에 만난 친인척들이 서로 안부와 근황을 묻는 것이 밤새 일이었다. 새로 도착한 문상객들은 기자를 두고 어김없이 '이 사람이 누구 남편이가?'로 시작해서 그렇고 그런 근황을 물었고, 뒤에 도착한 문상객 역시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같은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하기 싫어 자주 바깥엘 들락거리며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렸다. 그날 만났던 사람 중에 나처럼 처가 집안의 사위 한 사람이 인상적이었다.
대기업에 다닌다는 그는 자신의 장인을 향해 "장인어른, 저 이번에 부장으로 진급했습니다"라는 말을 시작으로 자신이 새로 맡게 된 업무에 대해, 그 업무의 중요성에 대해, 그리고 그 자리를 거쳐 간 선배들의 성공 가도에 대해 자랑을 섞어 이야기했다. 현재 직위와 업무뿐만 아니라 향후에 기대되는 장밋빛 미래까지 장황하게 덧붙였던 것이다. 그 장인 되는 어른은 기뻐하며 사위의 술잔을 채워주고, 칭찬과 덕담을 덧붙였다. 그 사위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도착하는 문상객들에게 일일이 자신의 승진과 장밋빛 미래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를 보면서 '세상에 참 못난 놈도 다 있다'고 생각했다. 오죽 못났으면 자기 자랑을 입에 달고 사나 싶었다. 그 뒤로 그를 다시 만난 적은 없다. 하지만 그날 이후 나는 그가 나보다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사람들은 좋은 소식을 숨기고 나쁜 소식만 전하려는 경향이 있다. 장사 잘 되느냐고 물으면 십중팔구 죽을 지경이라고 답한다. 불경기라는 말은 귀가 따갑도록 듣지만 장사 잘돼 살맛 난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없다.
장사 잘된다고 하면 사돈의 팔촌까지 손을 벌릴까 봐 두렵고, 좋은 일이 생겼다고 떠벌리면 악마가 눈치 챌까 봐 두려운 것이다. 그래서 좋은 일은 꽁꽁 숨기고, 나쁜 일은 온 세상이 알도록 굿을 한다. 그 탓에 세상은 늘 불경기고, 늘 아프고, 늘 굶주리고, 늘 죽을 맛이고, 늘 병치레 중이다.
자중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사람살이에는 좋은 일과 나쁜 일이 섞여 있다. 늘 울상만 지으면 진짜 울 일만 생긴다. 일이 잘 풀린다며 웃는 사람 주변에는 사람이 끓고, 하는 일도 잘 풀린다. '죽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 옆에는 사람도 없고, 일도 안 풀린다. 성격이 습관이고 습관이 미래라고들 한다.
조두진 문화부 차장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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