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끌벅적한 연말이다. 송년회가 시끌벅적하게 열리고 한 해를 마무리하는 행사들이 이어진다. 그러나 마음은 번잡한 일상을 조금은 비켜서고 싶다. 달랑 한 장 남은 달력을 바라보면 가는 세월이 무정하고 아쉬움과 허전함이 밀려오기도 한다. 이럴 땐 아스라한 나만의 추억을 쌓을 수 있는 겨울여행이 제격이다.
◆아스라한 아라가야
경남 함안은 아스라함을 간직하고 있다. 여섯 가야 중 하나인 아라가야의 고도였던 함안은 금관가야(김해), 대가야(고령) 등에 밀려 오랜 기간 숨죽여 왔던 곳이다. 그러기에 더욱 아스라함이 짙은 곳이다.
함안에 아라가야의 역사가 숨 쉬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는 곳이 바로 박물관과 고분군이다. 흔히 박물관 하면 '지루하다'는 느낌이 들지만 함안박물관은 첫 인상부터 남다르다.
아라가야의 대표적인 유물인 불꽃무늬 토기를 형상화한 독특한 모습은 '박물관은 딱딱할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깬다. 앞뜰 등에 자리 잡은 야외전시장은 시간을 거스른 모습이다. 1천500년 전 아라가야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놓았다. 고인돌과 수레바퀴 토기, 덧널무덤 등이 모형으로 재현돼 있다.
박물관 내에도 다양한 형태의 불꽃무늬 토기와 수레바퀴 토기, 등잔 토기 등 150여 점의 유물이 전시돼 있다. 1층에 있는 어린이 탁본 체험관에서는 탁본을 뜨고 아라가야 토기를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다. 2층 전시실에 올라가면 아라가야가 존재했던 연대와 고분군에서 출토된 말 갑옷, 수레바퀴 모양 토기, 불꽃무늬 토기, 문양이 새겨진 뚜껑, 미늘쇠 등 수많은 유적을 볼 수 있다. 특히 제5전시실에서는 사진 자료와 영상물, 모형, 실물자료 등을 통해 제방 축조 과정, 길쌈 등을 눈으로 즐길 수 있다. 제3전시실에서는 삼한, 삼국시대에 함안지역을 주무대로 활동한 아라가야 사람들이 활용한 토기 가마 유적과 마갑총 등을 둘러볼 수 있어 흥미진진하다.
고분 하면 경주가 퍼뜩 떠오르지만 함안도 만만치 않다. 함안박물관 주변으로 즐비한 38기에 달하는 거대한 도항'말산리 고분군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박물관 뒤로 난 오솔길을 따라 걸으면 아라고분군이 눈앞에 펼쳐진다. 조촐하면서도 풍요로운 느낌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 아라고분군은 아라가야 지배층의 무덤으로 현재 남아 있는 가야시대 고분군으로는 꽤 규모가 크다. 줄지어 늘어선 고분군이 능선을 이루고 있다.
최근에는 고분군 북쪽 끝자락에 있는 마갑총에서 고구려의 고분벽화에 그려진 것과 같은 말 갑옷이 출토됐고, 8호 고분에서는 사람의 순장 인골이 확인돼 사료로서의 가치도 높다고 한다. 이곳은 높이가 적당해 함안시내를 둘러보기에 좋은 위치다.
◆낙동강 강바람에~
'낙동강 강바람이 치마폭을 스치면/ 군인 간 오라버니 소식이 오네/ 큰애기 사공이면 누가 뭐라나/ 늙으신 부모님은 내가 모시고/ 에헤야 데헤야/ 노를 저어라 삿대를 저어라.'
함안에서는 1970년대 중반 한 시대를 풍미하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처녀 뱃사공' 노래의 흔적을 찾을 수도 있다. 노래의 발상지가 함안군 법수면 악양루 앞의 나루터다.
노래는 실화에 기초한다. 남강이 흐르는 법수면과 대산면을 잇는 악양나루터에는 처녀 뱃사공이 있었다. 한국전쟁이 막 끝난 시절. 당시 23세였던 박말순과 18세 박정숙 두 아가씨가 교대로 군에 갔다 소식이 끊긴 오빠를 대신해 노를 젓게 된 것이다. 그 애절한 사연을 가사로 쓰고 곡을 붙여 1959년 이 노래가 탄생했다.
함안박물관에서 함안천을 따라 북쪽에 위치한 악양루로 향하다 보면 악양루 입구에 '처녀 뱃사공' 노래비가 서 있다. 막상 마주하면 조금 실망스럽다. 작은 비석에 여인이 감싸고 있는 듯한 노랫말이 표지석에 새겨져 있을 뿐이다. 그러나 대형 스피커에서 쉬지 않고 흘러나오는 처녀 뱃사공 노래는 중독성이 있다. 10여 분이 채 되지 않아 자꾸 흥얼거리게 된다.
처녀 뱃사공 노래비에서 북쪽으로 30m쯤 가면 악양루 이정표가 나온다. 이정표 안쪽으로 내려가면 주차공간이 나타난다. 바위 샛길로 비탈길을 오르면 악양루가 있다. 조선 철종 8년(1857)에 세웠단다. 좁은 비탈길을 오르니 갑자기 살찐 꿩이 푸드덕 날아오른다. 꿩도 악양루를 구경하러 온 모양이다. 5분 정도 오르자 드디어 악양루가 좁은 비탈길 위에 위태위태한 모습으로 서 있다. 방 하나 정도의 크기가 실망스럽다. 그러나 악양루에 오르면 생각이 달라진다. 정자 아래로는 남강이 흐르고, 앞으로는 넓은 들판과 법수면의 뚝방이 한눈에 들어온다.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의 건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팔자(八) 모양이다. 중국의 명승지인 '악양'에서 이름을 따왔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노을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자연의 경이로움은 살을 에는 바람이 불어도 놓칠 수 없다.
##가는 길=서대구IC에서 중부고속도로를 타고 50여 분을 달리다 칠원분기점을 지나 함안IC에서 내린다. 바로 나타나는 교차로에서 진주'함안 방면으로 간다. 신음천을 지나 계속 직진하다 함안군청을 지나면 함안박물관이 나온다. 여기서 함주공원을 품고 함안천을 따라 북쪽으로 30여 분을 따라가면 악양루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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