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들 혹은 본인의 시나리오로 데뷔를 준비 중인 감독 지망생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자신의 시나리오가 작품으로 탄생하기 전에 도용될까 봐 우려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다. 그들이 자신의 유일한 기반인 이야기의 도용에 대해 우려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실제로 시나리오의 도용은 빈번히 일어날까?
간혹 이런 저작권에 대한 강탈 행위가 일어나서 소송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대개는 일어나지 않는 일로 봐야 한다. 이는 다음과 같은 합리적인 이유에서이다.
먼저 저작권 등록 절차가 매우 간소하다. 작가들은 집에서 인터넷으로 작품에 대한 저작권을 등록할 수 있고 매우 소액을 납부하면 이야기는 법적 효력을 인정받는다. 또한 각본료가 영화 제작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해 봐야 한다. 신인 작가의 이야기에 영화사가 지급하는 금액은 영화 제작비 전체의 매우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시나리오를 정식으로 계약하고 구매해도 큰 비용이 소요되지 않는데 법적 소송은 물론 윤리성에 타격을 받을 수 있는 저작권 도용을 회사가 감수해야 할 이유가 없다.
도용할 것으로 의심되는 기획자나 회사의 담당자 역시 마찬가지다. 일반적으로 그들은 '위험 회피 성향'을 가지고 있다. 제작되는 영화의 완성도보다는 영화가 제시간에 계획된 비용으로 기획되고 제작되는 것에 훨씬 신경을 쓰고 있고 이 때문에 영화의 질을 추구하는 현장 작업자들과의 마찰도 빈번하다. 그런데 이들이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소송이나 논란의 대상이 되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평판에 흠집을 낼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작가들의 시나리오 도용에 대한 우려는 그 위험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기우에 가깝다. 이를 '할리우드에서 성공한 시나리오작가들의 101가지 습관'이라는 책을 집필한 칼 이글레시아스는 명쾌하게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한 사람이 어떤 아이디어를 떠올리자마자 최소한 이 세상에 있는 다른 네 명의 사람들도 그와 똑같은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할리우드에서만 한 해 5만 편의 시나리오가 집필되고 우리나라에서도 1년에 5천 편에 가까운 시나리오가 쏟아져 나온다. 같은 시대와 공간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작가들에게는 아이디어를 창작하는 것은 물론 이를 시대의 트렌드에 맞게 속도 있는 결과물로 창작해 내는 능력 역시 요구되는 것이다.
영산대 영화영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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