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양희은의 '한계령'이란 축축하게 젖은 눈물 손수건 같은 노래 때문이기도 하다. "저 산은 내게/ 잊어라 잊어버리라 하고/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한계령(寒溪嶺)은 마음에 상처 입은 사람들이 찾아가 봐야 할 곳이다. 사랑을 하고 있는 이도, 사랑을 끝낸 이도, 이별의 열병을 오랫동안 앓고 있는 이도 이곳 한계령에서 새로운 한계(限界)를 찾아 들메끈을 졸라매야 한다.
한계라는 낱말은 사전에는 있어도 실제로 한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한계 너머에 또 다른 한계가 "나 잡아 봐라"며 버젓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궁극적 한계는 생과 사의 갈림길 정중앙에 있다. 한 발 건너뛰면 죽음이며 미처 발을 옮기지 못하면 이승의 단애다. 그것이 진짜 한계다.
만취와 미취의 상태도 한잔 술이 정해주지만 마시는 사람은 다만 어느 잔이 그 잔 인지를 모를 뿐이다. 물은 100℃라는 비등점에서 끓지만, 사람의 눈으로는 그 한계를 알아채지 못한다. 그러면 무엇이 사랑이고 무엇이 이별인가. '사랑한다'하면서도 이별한 상태보다 못한 경우가 있고 이별했지만 사랑하고 있는 '잉(ing)의 상태'도 있다. 어느 누가 감히 '사랑'과 '이별'을 얕잡아 본단 말인가.
"세상 끝 어딘가에/ 사랑이 있어 전속력으로 갔다가/ 사랑을 거두고 다시 세상의 끝으로 돌아오느라/ 더 이상 힘이 남아 있지 않은 상태./ 우리는 그것을 이별이라고 말하지만./ 그렇게 하나의 모든 힘을 다 소진했을 때/ 그것을 사랑이라 부른다."(이병률의 시 '이별 없는 사랑을 꿈꾼다'에서) 이 시 역시 사랑과 이별이란 한계의 벽을 과감하게 무너뜨리고 있다.
그날 한계령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설악의 만산홍엽이 살금살금 고양이 발걸음으로 내려와 길가에서 쉬는 '비 오는 한계령'.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만 그리운 사람이 그리워지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이렇게 비에 젖은 단풍 숲길 속에서도 지칠 줄 모르고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고 있으니 사랑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갔다 돌아와 탈진하는 그리운 마음들은 하나같이 미쳤나 봐.
한계령에만 가면 멋진 시가 나올 것 같기도 하고, 근사한 산문 한 편쯤은 어렵잖게 써질 것 같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감동이 크면 어간이 막히는 법이라더니 바로 그랬다. 그것이 나의 한계였다. 금강산을 세 번 다녀왔으나 아름다운 산문 한 편 쓰지 못했다. 정비석의 '산정무한'이란 명편 산문이 나를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닌 모양이다. 고려 때 '해동 제일'이란 명성을 얻었던 뛰어난 시인인 김황원은 평양 부벽루에 올라 벽에 붙어 있는 시가 마음에 들지 않아 현액들을 끌어내려 모조리 불살라 버렸다. 그는 온종일 기둥에 기대 서서 시상을 떠올렸으나 '장성일면용용수 대야동두점점산'(長城一面溶溶水 大野東頭點點山)이란 두 구(句)만 겨우 쓰고는 통곡하며 내려왔다고 한다. 나는 앞서 말한 선비와는 달리 글을 먼저 쓴 시인들이 이뤄 놓은 결실에 주눅이 들었음이 분명하다.
겨울에 접어들어 눈이 내릴 때마다 폭설이 퍼붓는 한계령을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모른다. 뉴스에서 '눈이 내리겠다'는 소리가 들리기만 하면 이른 아침 창문을 열고 멀리 팔공산 쪽을 바라보는 버릇도 한계령 때문에 생긴 것이다. 그건 순전히 시인 문정희의 '한계령을 위한 연가'란 시가 한몫한 것이다. "한겨울 못 잊을 사람하고/ 한계령쯤을 넘다가/ 뜻밖의 폭설을 만나고 싶다.(중략) 오오, 눈부신 고립/ 발이 아니라 운명이 묶였으면(하략)"
또 있다. 가수 양희은의 '한계령'이란 축축하게 젖은 눈물 손수건 같은 노래 때문이기도 하다. "저 산은 내게/ 잊어라 잊어버리라 하고/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군중 속의 고독'이란 말은 '둘이 있어도 외로움을 느낀다'는 말과 궤를 같이한다. 사람이면 누구나 한 번쯤은 익숙한 일상에서 탈출하여 사방이 온통 흰 것뿐인 눈 속 동화나라에 갇히고 싶을 때도 있을 것이다. 머리 위를 날아가는 헬기에 구조의 손길 한 번 흔들지 않고 난생처음 짧은 축복에 몸 둘 바를 모르고 싶을 때가 분명히 있을 수 있다.
또 '한계령'이란 노랫말에서처럼 설악에 기대어 사람에게서 입은 아린 상처를 치유하고 싶어 투정을 부릴 수도 있을 것이다. 모두가 한계를 모르고 하는 소리거나 그걸 뛰어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날 한계를 잊어버리고 비에 젖은 한계령을 넘었다. 오색에서 방 한 칸을 얻어 한계령의 저리고 아픈 쓸쓸함을 술잔에 타 홀라당 마셔 버렸다.
구활(수필가 9hwa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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