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서명수의 집중 인터뷰] 김용판 서울경찰청장

"서울에 폭주족·주폭 활보 어림없다" 취임 8개월 600명 검거

'주폭'(酒暴)은 술에 취해 상습적으로 관공서와 지구대 등 경찰관서 등에서 공무집행을 방해하거나 선량한 주민들에게 폭력과 협박을 가하고 재산상 피해를 주는 사회적 위해범을 가리킨다. 우리 주변에서 종종 이런 주폭들의 모습을 심심치 않게 봐온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요즘 서울에서 주폭들이 사라지고 있다.

김용판(54) 서울경찰청장이 수도 서울의 치안사령탑에 취임, '주폭척결'을 첫 번째 과제로 내세우면서 주폭들에 대한 강력한 단속에 나선 덕분이다. 지난 5월 취임한 후 12월 현재까지 서울에서 검거된 주폭은 568명.

'주폭'이란 다소 생소한 용어도 김 청장이 만들어냈다. '조폭'이 조직의 힘을 빌려 범죄를 저지르는 사회적 위해범이라면 주폭은 술의 힘을 빌리는 폭력배라는 의미다. 그는 서울경찰청장에 취임하기 전에 충북경찰청장으로 재임하면서 주폭 척결에 나서, 지역사회로부터 엄청난 박수를 받는 등 의미 있는 성과를 냈다.

2011년 주취자(酒醉者)에 의한 강력범죄는 ▷살인 37.1%(291명 중 108명) ▷강간과 성추행 30.6%(5천149명 중 1천574명) ▷폭력 35.7%(9만7천338명 중 3만4천719명)에 이를 정도로 실제로 음주로 인한 범죄와 사회경제적 손실 등 폐해는 심각하다.

김 청장은 "그동안 경찰이 주폭에 대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은 사실상 '직무유기'라고 할 수도 있다"며 반성했다. 주폭척결은 그런 자기반성에서 시작된 셈이다.

지난 10월 말, 김 청장은 는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선문답 같은 제목을 단 이 책에는 사실 '주폭 척결사'를 바탕으로 한 그의 치안철학이 담겨 있다. 그는 범죄신고가 없다고 해서 치안이 완벽한 것은 아니다면서 경찰이 아니라 주민의 관점으로 치안에 대한 발상의 전환을 한 결과가 우리가 모른다고 없는 것이 아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보복이 두려워 신고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인데 그 대표적인 사례가 주폭 피해자라는 것이다.

그의 주량이 궁금했다. 그랬더니 '주무량 불급란'(酒無量 不及亂)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술은 양을 정해놓고 마시고, 난잡함에 미쳐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그는 누구와 마셔도 함께 마실 수 있는 주량인데다 지금껏 한 번도 '주폭질'한 적이 없다고도 했다.

그는 '판선생'으로 불린다. 서로 공감할 수 있는 '판'을 만들어주는 사람이라는 의미라고 했다. 그의 이름에 들어 있는 '판'(判)이 판'검사는 아니지만, 서울의 치안을 책임진 경찰관이라는 새로운 판을 열어준 것인지도 모른다. 행시 30회로 공직에 입문한 그는 4년여가 지난 1990년 경찰직으로 전환했다.

송년 모임이 집중돼 있는 연말, 우리 사회의 음주문화에 대해 곰곰 생각해보자는 뜻에서 김 청장을 만났다.

-주폭척결에 나서게 된 계기가 있는가.

"국민의 든든한 지킴이가 돼야 할 경찰이 술에 취한 사람에게 얻어터지고 서울역이 지금과 달리 노숙자와 주폭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면 외국에서 과연 대한민국을 어떻게 평가하겠는가.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자화상이었고 '국격'이 부끄러웠다. 주폭척결은 술에 취해 상습적으로 행패를 부리는 사람에게서 선량한 주민을 보호하자는 데서 출발했다. 여기에는 저의 치안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범죄를 척결하여 선진 법질서를 확립하는 것은 국격과 상통하는 경찰의 기본 책무다. 그 선진 법질서의 지표가 되는 것이 국가 공권력이고 그 상징이 경찰이다. 그런 면에서 저는 주폭척결을 법질서 확립의 '킹핀'(King-pin'볼링의 중심핀)으로 봤다. 선진국의 문턱에 있는 나라에서 주폭들에 의해 공권력이 무시당하는 나라는 없다. 끊임없는 주취자의 공무집행방해로 인한 경찰력의 낭비를 막고 공권력을 바로 세워 선량한 주민들의 평온한 삶을 되찾는 방안을 진지하게 고민했다.

주민의 관점에서 그들을 바라본 것이다. 보복이 두려워 신고조차 못 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인데, 신고가 없다고 해서 치안이 확립된 것이 아니다. 평범하고 선량한 동네주민이 어디에서 치안 불안을 느끼고 있는지를 먼저 생각했다. 지구대 등 경찰관서에까지 와서 행패를 부리는 주폭들이 시민들에게 어떤 존재였겠느냐 생각하자 이들을 먼저 척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폭이란 우리 사회의 술 문화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서울역 노숙자 주폭이 그냥 없어진 것은 아니다. 그거 하나만도 뉴스가치가 있다. 그들이 그냥 하루아침에 저절로 없어진 것이 아니다. 주폭척결의 결과다. 지금은 지구대에 와서 행패를 부리는 사람이 거의 없어졌다. 술에 취해 횡설수설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직원들이 카메라를 들이대고 주폭이십니까 하면 도망간다. 주폭척결은 엄청난 일이다. 1만 명의 경찰력을 동원, 서울 시내에 푼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예산으로 치면 조 단위가 될 것이다. 주폭과 노숙자들이 주인 노릇하던 공원도 시민들에게 돌려줬다.

주폭의 피해자는 사회적 약자다. 아동과 여성이 먼저 피해를 보고 장애우와 노인이 피해자다. 경찰을 때리는 사람은 조폭이 아니라 주폭이었다. 상습적으로 술의 힘을 빌려 폭력을 쓰는 사람들이 그동안에는 일부러 경찰서에 가서 행패를 부리고 경찰이 제공하는 차를 타고 집에 가고 그랬다.

584명의 주폭을 구속시켰다. 정치권도 언론도 누구도 못한 일이다. 경찰관서뿐 아니라 주민센터와 병원 응급실이 가장 좋아한다.

그동안 주폭의 행패가 심하고 피해자들이 말 못 할 고통에 신음해왔던 것은 우리 사회 전반에 얽힌 그릇된 음주습관과 이를 용인하는 사회분위기 탓이 크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지난 한 해 동안 병원 응급실에서 발생한 폭력의 51.3%, 아동 성범죄의 37.1%가 주취자라는 통계도 있다."

-'주폭'이라는 용어는 어떻게 만들어낸 것인가.

"'주폭'이라는 말은 조폭에서 따왔다. 주폭척결 전에 대구 달서경찰서장 때 폭주족을 처리한 경험이 크게 작용했다. 폭주족은 도심의 무법자다. 피해가 엄청나다. 달서경찰서 관할 내에 대구지역 폭주족의 집결지인 두류공원이 있다. 서장으로 가기 훨씬 전부터 저는 폭주족 척결을 벼르고 별렀다. 1996년이었는데 그때 서울 강서구 화곡사거리를 택시를 타고 가고 있는데 100여 명의 폭주족이 거리를 꽉 메우고 지나가는 차량을 말채찍으로 내리치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저 폭주족들을 척결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결심했다.

그때까지 폭주족은 따라가서 잡거나 막는 정도였다. 그런 방법으로는 폭주족들을 압박하지 못했다. 해결책을 찾아낸 것이 '선(先) 채증, 후(後) 체포' 기법이었다. 형사와 수사관 등으로 태스크포스(TF)를 편성, 광범위하게 첩보를 수집하고 철저한 증거수집을 했다. 그 결과 상습적이고 악질적인 폭주족을 구속하고 오토바이는 몰수'공매처분했다. 이런 성과를 언론에 적극적으로 알림으로써 폭주심리를 차단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당시 52명의 폭주족 계보를 완성, 두목급 6명을 구속하고 오토바이 16대는 몰수'공매처분하는 성과를 거뒀다."

-김 청장의 치안철학이 폭주족과 주폭 척결사를 통해 잘 알려지고 있다.

"치안은 과학이자 전략이다. 단면적인 고정관념에서 탈피, 주먹구구식 또는 지시일변도의 치안에서 발상을 전환, 입체적'종합적으로 치밀하게 분석, 주민의 관점에서 제대로 된 경찰활동을 전개해야 한다. 제한된 경찰력으로 최상의 치안복지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치안활동의 '킹핀'을 선택, 역량을 집중하고 불필요한 일을 버려 기회비용을 최소화해야 한다.

이를 통해 범죄를 제압할 수 있는 최적의 위치를 경찰이 선점, 심리적인 우위에 서 있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주폭 척결이 성공하면서 우리 사회 전반에 주폭은 다시는 용인될 수 없는 사회적 범죄라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만취'를 감경사유에서 제외하거나 가중처벌할 수 있도록 주취폭력에 대한 지침을 변경했고 서울 중앙지법 형사재판부도 만취상태의 범죄를 감경해주던 관행에서 벗어나 범죄예방 효과를 높이는 방향으로 재판을 운영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런데 주폭에 대한 대응은 처벌 등 공권력으로는 한계가 있다. 출소 후 다시 주폭이 될 가능성이 크다.

"주폭은 사회구조적 문제다. 서울경찰청만의 힘으로는 주폭을 완전히 우리 사회에서 척결할 수 없다. '함께 한다'는 정신을 바탕으로 기존의 계도와 제재의 행정에서 벗어나 치안서비스를 공동으로 생산한다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다양한 기관, 단체들과 협약을 체결하고 있다. 12월까지 총 890여 개 기관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주폭에 대해서는 처벌뿐 아니라 사회 전반의 유기적인 협조를 통해 건전하게 사회로 복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도 병행해야 한다. 그 목적으로 대한병원협회 서울시 병원회와 MOU를 체결, 협력병원을 지정하고 전문의와의 상담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서울시와 합동으로 공공의료기관 내에 '주취자 One stop 응급의료센터'도 운영하면서 주취자 보호에도 나서고 있다.

주폭 출소 후의 재범 위험성에 대해서는 피해자와 담당형사 간 핫라인을 구성, 보복범죄 예방에도 철저하게 대비하고 있다."

서울정경부장 didero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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