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그린 꽃은 '정말' 시들지 않았다…이영철 전시회

이영철, 그의 전시장에는 열 개가 넘는 환한 보름달이 떠 있다. 그 보름달 아래로, 꽃이 펴 꽃 비가 내리고 아늑한 집들은 오밀조밀 밤을 즐긴다. 달은 유난히 휘영청 밝고, 인생 가장 절정의 행복을 누리는 사람들은 그 아래서 마냥 행복하다. 이영철의 그림은 이처럼 따뜻하고 행복하다. 수성아트피아와 동원화랑 공동기획으로 이영철 작가의 전시가 열린다. 이번 '그린 꽃은 시들지 않는다'는 작가의 최대 전시다.

이렇게 이영철이 행복이란 꽃을 피워내기까지, 고단한 청춘이 밑거름되었다.

20대, 아버지와 형이 세상을 떠났다. 30대, 고사리 끊고 버섯 팔아 그를 지원해주던 어머니마저 중풍으로 쓰러지셨다. '가망 없다'는 말을 들은 병원 입원실의 흰 벽에, 그는 의식 없는 어머니를 위해 작은 부처를 하나 그려 붙여둔다.

"그때부터였어요. 한 달 넘게 병원에서 어머니 병시중을 하면서 저의 화풍이 바뀌었어요. 저는 병실에서 오히려 희망을 봤죠. 삶과 그림이 다르지 않다는 걸 알았거든요. 환자들, 간호사들에게 그림을 그려주면서 말이죠." 의식이 없던 어머니는 그가 붙여놓은 손바닥만 한 그림을 보며 마침내 병원에서 걸어나오셨다.

그에겐 정말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전시를 하던 때가 있었다. 일년내내 엉덩이가 짓무르도록 그림을 그리고 팔았지만, 그에게 남은 건 빚뿐이었다. 화가로 산다는 것은 그만큼 고단한 일이다.

"하면 할수록 더는 그림을 그릴 수 없는 현실에 절망했죠. 그러다가 다시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린 게 3, 4년 전부터예요."

그에게 시련은 그뿐만이 아니다. 실명이 된 적도 있다. 그래도 그는 절망하지 않았다. 이제 고도근시이지만 다시 볼 수 있게 됐다.

그의 그림에는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진하게 녹아 있다. 실제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추풍령 아래 동네, 달을 따러 다니고 봄이 되면 꽃 비가 내리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겨 있다.

그는 원래 문학을 꿈꿨던 문학도였다. 그래서 그의 그림에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림으로 표현한 글'인 셈이다. 평소에도 언제든 그림을 그릴 수 있게 인물 드로잉을 멈추지 않는다. 전시실에는 그의 드로잉 3천여 점이 함께 전시돼 있다. 이렇게 평소 '예열'해두었다가 작업실에 들어가자마자 그림을 그린다.

16년을 앓던 어머니는 올해 어버이날 세상을 떠나셨다. 이상하리만큼 그 후 일이 잘 풀린다. 혜민 스님의 저서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의 표지 그림으로 선정된 것만 해도 그렇다. 베스트셀러 표지를 장식하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앞서 표지를 그렸던 화가가 그만두면서 출판사 측에서 급하게 표지 그림을 구했어요. 외국 사이트들까지 다 뒤졌대요. 때마침 신작 20여 점이 완성돼 블로그에 올렸고, 편집자가 그것을 보고 연락해왔죠."

이에 앞서 그의 저서 '그린 꽃은 시들지 않는다'도 큰 인기를 끌었다. 나지막하고 서정적인 글과 그림이 어우러져 큰 인기를 끌었다. 오랫동안 힘겨움을 낙관적으로 견뎌와서일까. 그의 그림에는 희망이 가득하다.

"이제 비로소 화가가 되었구나 싶어요. 이번 전시는 그동안 작업활동을 매듭짓고, 새롭게 나갈 수 있는 힘이 돼주었어요."

수성아트피아(053-668-1566) 전시는 9일까지, 동원화랑(053-423-1300) 전시는 11일부터 22일까지 열린다.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사진'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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