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예술가'라는 이름으로…

"야야! 됐다, 그마 찍어라…늙은 에미 뭐 하로 자꾸 찍노."

"어무이! 어무이 건강이 조금이라도 더 좋을 때 찍어놔야 엄마가 오래오래 건강해지는 기라요"하며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그런데 사진 몇 장을 뽑아 보여드렸더니 영 시큰둥하시다. "엄니! 사진이 별로 마음에 안 드는가 봐요. 다시 한 번 더 찍어보이시더"라는 말에 화만 벌컥 내신다.

사진을 찍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다 보니 시골집에 갈 때마다 9순이 되신 어머니와의 대화는 사진으로 나눠본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 곁을 떠나지 않으시라는 믿음 때문인지, 어머니와 자식 간의 관계로 정성이 부족함인지, 아니면 주름진 당신 자신의 모습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런지 사진촬영은 번번이 실패만 거듭하고 있다.

5년 전부터 해마다 미국 서부 풍경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그때마다 라스베이거스 뉴라이프 노인 복지센터에 인연이 있어 들른다. 이곳은 은퇴한 이민자인 우리 교민과 남미계, 중국인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노후를 보내는 공간이다. 미국의 선진화된 노인복지제도가 부러워 여기를 방문할 때마다 은연중 마음이 설렌다. 낯선 이국에서의 진한 세월을 지탱해오면서 살아온 모습에, 내 어머니 마음에 드는 사진 한 장 찍어 놓지 못한 기억에, 여기서라도 사진 봉사 한 번 해보자라는 마음에. 할아버지 할머님들의 건강한 모습을 남겨 드리고 싶다고 제안을 했더니 모두가 너무 멋진 프로그램이라고 고마워들 하셨다.

사진 촬영이 있던 날,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곱게 차려입은 모습은 내 눈을 의심하게 했다. 그동안 아껴두었던 한복이랑 각국의 전통복장으로 최대로 화려하게 차려입고 정성스럽게 화장도 하고, 다들 자기 나름의 연출 방식으로 젊음(?)을 쏟아내신 열정을 보고서, 그분들이 지나온 삶의 방식을 담아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우리 교민들은 아주 근엄하고 우아한 모습으로, 중국인들은 이민자 삶의 무게보다는 오히려 여유 있고 담담한 모습에 익살스런 표정으로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들기도 하고, 남미계의 어르신들은 남미 특유의 낙천적이고 근심 걱정 하나 없는 해맑은 모습으로 친구와의 기념사진까지 요구하고서는 팁까지 챙겨 주셨다. 며칠 후 촬영한 사진을 약간의 리터칭을 하고 보여 드렸더니, "와우! 예술가가 찍은 사진은 역시 뭔가 다르네"라며 연신 감탄사를 연발하고는 어린아이 마냥 즐거워하는 어르신들의 인사는 건강함의 징표였다.

"먼 이국땅에서 살아오신 얼굴, 그 자체가 진짜 예술인 것 같아서 사진이 예술이 되었습니다. 어르신! 당신 삶의 자취가 예술이었습니다. 그리고 행복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홍상탁 (대구예술대학교 교수'디지털사진문화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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