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백범 김구와 달이실 마을 인연

日첩자 살해 체포 후 탈옥 부항 성태영 집에서 은거

달이실 마을에 있는 떠오르는 달을 쳐다보는 두꺼비 바위를 형상화 한 안내 표석.
달이실 마을에 있는 떠오르는 달을 쳐다보는 두꺼비 바위를 형상화 한 안내 표석.

백범 김구 선생은 김천시 부항면 월곡리 달이실 마을에 은거한 적이 있다. 백범은 22세 되던 해인 1895년 만주로 건너가 의병활동을 벌이던 중,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가 시해됐다는 소식을 접했다. 백범은 이듬해인 1896년 귀국길에 일본인 첩자를 살해하고 고향에 머물다 체포됐다. 백범은 사형 선고를 받았지만, 고종의 특사로 감형됐고, 1898년 탈옥해 삼남(三南) 일대를 돌며 피신생활을 하게 된다. 이때 험준한 김천의 부항면 달이실 마을로 들어와 성태영(成泰英)의 집에 한 달간 은거했다. 백범 일지에는 "이시발의 집에서 하루를 묵고, 또 이시발의 편지를 받아가지고 지례군 천곡 성태영을 찾아갔다. 성태영의 조부가 원주목사를 지냈으므로 성원주댁이라고 불렀다. 대문에 들어서니 수청방 상노방에 하인이 수십 명이요, 사랑에 앉은 사람들은 다 귀족의 풍이 있었다. 주인 성태영이 내가 전하는 이시발의 편지를 보더니 나를 크게 환영하여 상좌에 앉히니 하인들의 대우가 더욱 융숭하였다. 성태영의 자는 능하요, 호는 일주였다. 성태영은 나를 이끌고 산에 올라 나물을 캐며 혹은 물에 나아가 고기를 보는 취미 있는 소일을 하고, 혹은 등하에 고금사를 문답하여 어언 일삭이 되었는데, 하루는 유인무가 성태영의 집에 왔다"고 적었다.

천곡은 달이실 마을의 옛 이름이다. 당시 위기에 처한 백범에게 많은 도움을 줬던 성태영의 이후 행적은 찾을 길이 없어 안타깝다. 백범 김구 선생이 한 달간 머물며 민족의 장래를 걱정하고 청운의 꿈을 키웠던 성태영의 대저택(부항면 월곡리 113번지)은 사라졌지만, 선생의 웅혼한 기상은 아직도 생생히 남아 있다. 글'박용우 특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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