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漢)의 말기는 그야말로 혼돈이었다. 한나라는 중간에 신(新)을 세운 왕망에 의해 맥이 끊겼다가 광무제 유수가 황제에 오르며 다시 이어졌다. 이를 구분하려고 전한(동한), 후한(서한)이라고도 부른다.
후한은 중기가 지나면서 내내 어린 황제를 앞세운 황후와 외척의 섭정, 환관의 폭정이 끊이지 않았다. 이런 결과로 황건적의 난이 일어났고, 이어 위'오'촉의 삼국시대가 열린다. 그리고 조조의 아들인 조비가 마지막 황제인 헌제를 폐위해 한나라는 420여 년의 막을 내렸다.
후한 말기의 환제(132~167)는 환관과 손을 잡고, 패악 무도한 최고 권력자이자 황후의 오빠인 양기를 몰아냈다. 이때 환제를 도와 정권을 잡은 환관이 5후(五候)라고 불린 단초, 좌관, 구원, 서황, 당형이었다. 단초가 곧 사망해 4후가 된 이들의 부패와 횡포도 양기에 못잖았다. 그래서 당시 세간에서는 천자의 마음도 돌리는 '좌회천'(左回天), 교만함에 대적할 사람이 없는 '구독좌'(具獨坐), 무서울 것이 없는 '서와호'(徐臥虎), 일 처리에 규칙 없이 왔다갔다하는 '당양타'(唐兩墮)라고 비아냥거렸다 한다.
이들의 말로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그러나 곧바로 한을 멸망의 길로 몰아넣은 십상시(十常侍:10명의 내시 권력자)가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곧 자멸했음이 분명해 보인다.
요즘 검찰이 위기다. 뇌물 수수, 피의자와의 성추문, 브로커 검사 문제 등이 잇따라 터졌다. 이어 검찰총장과 중수부장의 갈등이 여과 없이 드러나면서 검찰총장이 사직했다. 최고의 엘리트 집단이라던 검찰의 자부심이 여지없이 무너지고, 검찰 내부에서조차 올 것이 왔다고 할 정도다.
사실 그동안 검찰은 후한의 4후까지는 아니더라도 3후 정도는 버금가는 행태를 보였다. 정권의 입맛에 따라 다른 잣대를 들고, 대적할 자가 없을 정도로 교만하고, 국민에게는 누구보다 무서운 집단이다. 4후 위에는 절대권력밖에 없었듯, 검찰도 비슷하다.
뒤에 검찰총장까지 지낸 한 분이 중간 간부 시절에 한 말이 기억난다. 권력과 명예를 위해 검사의 길을 택했다는 이야기였다. 가만히 따져보면 권력과 명예는 함께 얻기가 어렵다. 권력은 부패하기 쉽고, 명예는 허망한 것이기 때문이다. 요즘 검찰의 모습은 권력과 명예를 둘 다 가지려고 발버둥치다 결국은 모두 잃고 마는 어리석은 집단처럼 보여 안타깝다.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