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고등학교 3학년 늦은 봄이었다. 부산의 서면 번화가에서 대학생으로 보이는 이가 뿌린 유인물 한 장을 주웠다. 이내 사복 경찰에 붙잡혀 피를 흘리며 끌려가던 그 청년의 눈빛을 오랫동안 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단지 그 유인물을 주웠다는 이유로 몇 번이나 학생지도실로 불려가야만 했다.
1981년 봄이었다. 이른 아침, 도서관으로 가는 길에 강의실 의자를 꺼내어 불태우며 낄낄대고 있는 한 무리의 청년들을 보았다. 하숙집의 선배들은 맞서 싸우기라도 할 태세의 철없는 신입생의 손을 서둘러 잡아끌었다. 그들이 대학에 상주하는 경찰들임을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긴 시간 그들은 그렇게 살기 어린 눈빛으로 학교 안을 휘젓고 다녔다. 1983년 봄이었다. 후배 여학생이 학교를 떠났다. 그녀가 대학을 포기한 이유는 전태일이라는 이름 석 자 때문이었다. 이해할 수 없었다. 왜 그녀가 이제 막 절망의 터널을 빠져나와 겨우 꽃 피우고 있는 대학생활을 포기하려 하는지, 그리고 왜 노동자의 길을 가려고 하는지. 하지만 그녀는 어떠한 물음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단지 그녀는 맑은 눈빛으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1984년 봄이었다. 선배에게서 작은 책자 한 권을 건네받았다. 이미 여러 번의 복사를 거친 탓인지 몇몇 글자들은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내용은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이불 속에서 밤을 꼬박 새우며 몇 번이고 읽다가 눈물을 쏟았다. 불온한 밤, 그 책자는 라는 가슴 아픈 이름을 안고 있었다. 그해 가을 책자를 전해준 선배가 학교를 떠났다. 얼마 뒤 그 선배가 푸른 죄수복을 입고 법정에 섰을 때, 그의 눈빛은 분명 어딘가에서 마주쳤던 눈빛이었다. 그는 법정에서 분노하지 않는 것은 광주학살의 공범이며 침묵은 또 다른 죄악이라고 말했다. 1985년 여름이었다, 우리는 굳게 닫힌 철문 안에서 다시 만났다. 회유와 협박, 그리고 끊임없는 폭력이 우리를 짓눌렀다. 하지만 우리는 더 단단해지고 있었다. 그것은 사람에 대한 뜨거운 사랑 때문이었다.
그리고 1987년 겨울이었다. 우리는 다른 길을 가고 있었다. 작은 차이를 참지 못하고 서로에게 생채기를 내면서 마치 그것이 올바른 길인 듯 소리치고 있었다. 목숨처럼 지켜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던 인간에 대한 예의는 섣부른 이론 앞에 힘없이 무너져 갔다. 사랑은 감상에 불과하다고 다들 그렇게 소리쳤다. 우리의 눈빛은 그렇게 아프게 흐려져만 갔다.
1993년 봄,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했다. 하지만 그보다도 더 힘들었던 것은 젊은 날의 열정이 공허한 메아리로 바뀌는 것이었다. 위로해줄 그 어느 누구도, 지탱할 그 무엇도 하나 없었다. 결국 병든 노모를 핑계로 영혼을 팔았다. 선택은 쉽지 않았지만 쉽게 사는 길이었다. 아니 그렇게 믿었다. 돌이킬 수 없는 부끄러운 봄은 그렇게 사람을 잊게 만들고 잊히고 있었다.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서로에게 날을 세웠던 시간들을 저주하며 살아왔다. 그리고 세상을 증오했다. 그리고 그 뒤에는 늘 또 다른 변명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변절이라는 단어 이외에는 그 어떠한 말로도 설명될 수 없는 것이었다.
쉰의 나이를 넘기는 오랜 시간 늘 어깨를 짓누르던 삶의 무게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늙고 외로워 비루한 참회가 될지 모르지만 할 수만 있다면 세상에 대한 헌신으로 삶을 마감하고 싶다.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첨탑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윤동주 시, 송창식 노래 십자가 전문)
지난 일요일 저녁, 가수 전경옥의 앨범 "혼자사랑2"에 실린 윤동주 시 "십자가"를 송창식의 노래로 듣는다. 젊은 날의 신념을 지키지 못한 사내에게 맑은 영혼을 가진 시인의 시와 노래는 비수가 되어 찌른다. 그리고 깊은 밤, 어둠을 가르는 꾸짖음으로 메아리친다. '군자가 도를 닦고 덕을 세우는데 곤궁하다고 해서 절개를 꺾어서는 안 된다.'(君子修道入德 不以困窮而改節)
전태흥 미래티앤씨 대표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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