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가야문화의 세계화] ⑥대가야의 화려한 영광, 지산동고분군

최전성기 1세기 반 무덤 700여기…정상 부근엔 강력한 통치자

철의 왕국, 신비의 왕국 등으로 불리는 가야. 600여 년 동안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과 나란히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우리 고대문화의 한 축을 이루다 신라에 통합된 것은 고구려와 백제가 신라에 멸망 당하기 100여 년 전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가야는 삼국시대에 포함되지 않고 있다. 잊힌 왕국일 뿐이다. 이 때문에 가야의 역사와 문화를 일궈 나왔던 고대 영'호남지역 사람들의 역사가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우리의 고대사를 삼국사가 아닌 사국사로 새롭게 재조명하는 가야 역사의 자리 매김이 필요한 이유이다. 가야 사회를 주도했던 국가는 서기 400년을 전후해 전기는 김해 금관가야, 후기는 고령 중심의 대가야였다. 대가야는 정치'문화적으로 가야의 최전성기를 이끌었으며, 순장문화와 가야금, 토기'철기문화 등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해 우리 고대문화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영'호남 아우르며 고대국가로 발전한 대가야

고령을 중심으로 성장한 대가야는 400년대 초부터 주변 세력 확장에 나섰다. 400년대 중반부터 합천 북부지역을 시작으로 거창, 함양과 전북 남원, 임실, 장수와 전남 순천 일대까지 영향력을 행사했다. 합천을 중심으로 한 황강유역과 거창, 함양, 남원 등 지리산 주변과 진주 등을 중심으로 한 남강유역까지 세력을 확장했다. 또 고성'구례'하동을 중심으로 한 남해안과 섬진강 유역을 비롯해 장수, 진안, 임실을 중심으로 한 금강 상류 유역 등 매우 넓은 지역에까지 세력을 떨쳤다. 이처럼 전성기의 대가야는 고령지역을 도읍으로 정해 경상남도와 전라북도, 전라남도 일부까지를 아우르는 명실상부한 대가야국으로 성장했다. 특히 대가야는 영'호남 지역을 아우르는 영역국가로 성장했으며, 삼국에 버금가는 고대국가 단계로까지 발전했다.

◆지산동 고분군의 현황

고령읍을 병풍처럼 감싸는 주산(해발 310m)에는 대가야시대의 산성인 주산성(主山城)이 있다. 산성에서 남쪽으로 뻗은 능선과 고령읍내 쪽으로 뻗어 내린 가지 능선에는 대가야가 성장을 시작한 400년쯤부터 멸망한 562년 동안 만들어진 대가야의 무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화려했던 대가야의 역사와 문화를 간직하는 이 고분군(사적 제79호)은 주능선을 따라 고아동벽화고분이 있는 산지 끝자락까지 길게 분포한 대가야시대 최대 고분군이다.

구덩식 돌방무덤(竪穴式 石室墓)이 주 묘제로 대가야의 왕을 비롯한 통치자들과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묻힌 것으로 추정된다. 700여 기의 봉토분 가운데 주산성과 인접한 해발 160∼180m 구간은 직경 20m 이상의 대형분이 분포돼 있다. 해발 100∼160m 구간은 직경 10∼15m의 중형분이 집중적으로 분포돼 있으며, 평지에 속하는 능선 하단부에도 고아동벽화고분을 비롯한 대형분이 2, 3기 있으며, 능선 높이에 상관없이 대형분의 주위와 능선 사면에는 봉분이 없는 소형 무덤이 광범위하게 분포돼 있다. 이곳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발굴된 순장 묘 왕릉인 지산동 44호와 45호분을 비롯해 왕족과 귀족 무덤으로 추정되는 크고 작은 700여 기의 무덤이 분포하고 있다. 대가야의 독특한 토기와 철기, 말갖춤(마구)을 비롯해 금동관과 금귀걸이 등 화려한 장신구가 출토된 대가야 최대 중심고분군이다. 하지만, 이 무덤들은 모두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대부분 아래쪽 무덤이 먼저 만들진 후 차츰 능선의 높은 쪽으로 올라가면서 만들어진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무덤은 위로 올라갈수록 규모가 크다. 왕의 힘이 점점 커지면서 더 높은 곳에, 더 큰 무덤을 만들려 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5, 6세기쯤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지산동 고분의 일반적 구조는 으뜸돌방(내부 목곽)과 딸린돌방, 다수의 순장덧널로 구성된 다장묘(多葬墓)이다. 대부분 구덩식으로서 할석(깬돌)을 이용해 무덤을 쌓고 긴 돌(장대석)로 뚜껑 돌을 덮어 밀봉한 형태이다. 또 주 묘제는 구덩식 돌방이지만 초기에는 대형 봉토를 쌓은 나무 덧널무덤도 있다. 으뜸돌방과 딸린돌방의 평면 배치는 T자 모양이며, 으뜸돌방의 양쪽에는 순장덧널을 두는 형태가 비교적 이른 시기의 기본형으로 생각된다. 차츰 규모가 커지고 순장자가 늘어나면서 봉토 중의 순장덧널이 많아져 44호분처럼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돌덧널은 할석이나 판석으로 만들었고, 대형의 돌방은 긴 돌을 뚜껑 돌을 여러 장 이어 덮은 구조로 벽석은 모두 할석으로 축조했다. 봉토는 돌덧널이나 돌방의 길이 방향으로 약간 긴 타원형을 이루면서 일부를 제외하고는 모두 둘레 돌을 갖췄다. 돌방의 평면 형태는 너비보다 길이를 5배 이상 길게 쌓아 길이보다 폭이 아주 좁은 긴 사각모양이다. 단면은 양쪽의 긴 벽이 약간 안으로 좁혀지는 사다리꼴의 형태가 많다. 지산동 고분군에는 이 밖에도 시기가 내려오면서 굴식 돌방무덤이 축조돼 있지만, 그 규모는 크지 않다.

◆지산동 고분군의 조사

지산동 고분군에 대한 발굴조사는 1910년대 후반부터 일본인에 의해 몇 차례 이뤄졌으나 본격적인 학술조사로 보기 어렵다. 당시 조사는 침략사관에 기초한 임나일본부설을 증명하기 위한 정치적인 목적으로 이뤄져 학술적인 보고서가 작성되지 않았으며, 대부분 유물은 일본으로 유출됐다. 이후 1977년 처음으로 우리 손에 의한 본격적인 발굴조사가 시작됐다. 대가야고분군의 정화사업에 따른 제44'45호분의 조사였다. 44호 고분에서 32기나 되는 순장덧널이 발견됐고, 45호고분에서도 11기의 순장덧널이 확인됐다. 도굴로 인해 원래의 모습은 알 수 없었으나 수습된 유물로 볼 때 화려하면서도 양적으로 풍부해 대가야의 왕릉으로 추정된다. 대규모 순장 묘의 새로운 고분 연구자료 확인으로 본격적인 대가야고분 발굴조사의 기폭제가 됐다. 이같이 왕이나 귀족들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대형고분은 가운데 주인공이 묻히는 으뜸돌방을 두고 그 가장자리에 여러 개의 순장곽을 만들어 순장자를 함께 묻고 하나의 거대한 봉분을 쌓아 덮었다. 하나의 봉토 속에 주인공과 순장자를 별도의 매장공간을 마련해 묻은 것은 대가야 장송 의례의 특징이다. 특히, 지산동 44호분은 3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가장 많은 사람이 순장된 순장 고분이다. 1978년 발굴한 지산동 32~35호분과 주변 무덤 가운데 중형의 봉토분에서도 순장 묘가 재확인 됐으며, 32호분에서는 대가야식 금동관과 철제 갑옷, 투구가 출토돼 고분 자료를 통한 대가야 문화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계기가 됐다. 1994,5년에 대가야왕릉전시관 부지에 대한 조사에서는 대가야시대의 중'소형 구덩식 돌덧널무덤 211기와 통일신라에서 조선시대의 무덤 등 총 344기가 확인돼 이 일대 모두가 대가야시대의 고분군이 형성돼 있음을 밝혀냈다. 또 대형 봉토 고분으로 지산동 30호분을 조사해 T자형 무덤 배치형태와 고분의 바닥 아래에 별도의 돌덧널이 설치된 특이한 구조가 밝혀졌다. 1999년의 대가야 역사관 건립부지에 대한 조사에서도 삼국시대에서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는 구덩식 돌덧널무덤 81기와 앞트기식과 굴식 돌방무덤 34기 등이 확인됐다. 이처럼 지산동 고분군은 대가야박물관이 위치한 작은 골짜기와 산기슭까지 빈틈없이 고분이 축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2007, 2008년에는 대가야박물관 인근 능선 끝 부분의 73'74'75호분이 발굴조사 됐다. 이 발굴은 대가야문화 연구에 대한 새로운 자료를 제공할 목적도 있었지만, 지산동 44'45호분 발굴 30주년 의미와 함께 도굴의 피해를 입어 심하게 훼손된 봉토를 정비할 필요성 때문에 조사가 시작됐다. 73호분과 75호분은 각각 나지막한 능선의 끝 부분에 자리 잡고 있으며, 봉분의 외형적 규모와 입지 등에서 볼 때 대가야의 최고위 지배자인 왕릉으로 추정하고 있다. 73호와 75호는 둘레돌의 지름이 25m 이상 되는 대형분으로서 그동안 지산동 고분군 조사에서 밝혀지지 않았던 많은 자료가 새롭게 확인됐다.

◆대가야왕릉전시관

대가야왕릉전시관은 국내 최초로 확인된 순장 무덤인 지산동 제44호분의 내부를 재현해 놓았다. 대가야의 역사와 문화를 일반인들이 더 쉽고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건립한 것. 고령군은 1994년 9월~1995년 5월 대가야왕릉전시관 부지 발굴 조사 후 2000년 9월 개관해 대가야박물관과 함께 운영하고 있다.

이 전시관은 8천65㎡ 부지에 연면적 1천617㎡ 규모의 지하 1층, 지상 1층 건물로 무덤의 모양처럼 직경 37m, 높이 16m 규모의 초대형 돔 형식 구조로 되어 있다. 이곳에는 최초로 확인된 대규모 순장무덤인 지산동 44호분의 내부를 원래의 모습대로 재현해 놓았다. 실물 크기로 만든 모형 지산동 44호분 속에 관람객이 직접 들어가 무덤의 구조와 축조 방식, 주인공과 순장자들의 매장 모습, 껴묻거리의 종류와 성격 등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다. 전시관 내부 중앙에는 발굴 당시의 돌방구조를 그대로 둔 채 발굴 보고서를 토대로 출토 유물과 남아있는 인굴 등을 복제해 넣어 두었다. 전시관 내부 벽체에는 대가야의 사인물을 전시하고 관련 영상물을 앉아 관람할 수 있으며, 벽을 따라 진열장에는 지산동 고분군 출토 유물 130여 점을 비롯해 다른 고분에서 출토된 토기'무구'관'장신구 등의 유물을 전시해 두었다. 입구에는 컴퓨터를 설치해 관람객들이 대가야의 역사와 순장, 지산동 44호분의 구조, 출토 유물 등 관련 정보를 편리하게 검색할 수 있다. 관람 시간은 하절기에는 오전 9시부터~오후 6시, 동절기에는 오전 9시~오후 5시이며 매주 월요일은 휴관한다. 문의 054)950-6071. 고령'정창구기자 jungc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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