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인터뷰 通] 국내 '말박사 1호' 경북대 수의학과 조길재 교수

'말 산업은 떠오르는 블루오션이다'. 조길재 교수가 말 산업의 경제적 효과와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과거 말(馬)은 곧 국력이었다. 말을 많이 가진 나라가 강대국이었고 말을 잘 타는 민족이 세계를 지배했다.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필수품이었고 가장 빠른 교통 및 통신 수단이기도 했다. 그러나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개나 소와 동급으로 취급받으며 오락용 '가축'으로 전락했다.

그랬던 말이 최근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다. 싸이의 말춤이 전 세계를 들썩이게 만들고 드라마 '마의'는 월화드라마 1위를 기록했다. 지자체도 앞다퉈 말 산업 육성을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다. 말의 당당한 귀환인 셈이다.

'말의 귀환'에 신이 난 사람이 있다. 국내 '말박사 1호'로 대구경북의 말 산업 육성에 앞장서고 있는 경북대 수의학과 조길재(53) 교수다. 이 대학 부설 말의학연구소장과 상주 캠퍼스 내 말산업연구원 부원장으로도 있다. 지역 내 말 관련 인력 양성과 산업 인프라 구축에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있는 'TK(대구경북) 말목장'의 실질적인 주인이다.

◆'TK 말목장' 주인

인터뷰를 위해 경북대 수의과대학 연구실을 찾았을 때도 그는 수십 장의 말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의 연구실은 온통 '말판'이다. 말 사진과 그림이 사방을 도배하고 말인형들이 책상 위를 달리고 있었다. 조 교수는 "말 연구를 위해 청춘을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했다. 그만큼 그의 말 사랑은 지극하다.

조 교수는 2005년부터 이 학교에서 '마학'(馬學)을 강의하고 있다. 말의 역사와 품종, 혈통은 물론 말의 특성과 관리에 이르기까지 말에 관해 전반적인 것을 연구하고 가르친다.

개나 소가 아니고 말 관련 교수라서 설움도 받았다. "처음 부임했을 때만 해도 일부 교수들의 반대가 심했어요. 말 전문 교수가 들어오면 개나 소 전문 교수도 있어야 되지 않느냐는 논리였지요. 그러나 당시 총장은 향후 말 산업이 뜰 것이라고 판단했지요."

예상은 맞아 떨어졌다. "몇 년 지나지 않아 말 산업이 구제역 등 가축 전염병과 FTA 파고에 견딜 수 있는 축산업 대안으로 급부상했습니다. 국민소득이 2만달러를 넘어서면서 말 산업이 급속히 성장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도 나오고 있지요. 선견지명이 있었다고 할까요."

지역 내 '말 붐' 조성에는 조 교수의 역할이 컸다.

"2000년대 중반만 해도 대구경북은 말 관련 연구와 산업에 대한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당장 교육인프라 구축이 절실하다고 느꼈지요." 조 교수는 관련 학과 개설에 동분서주했다. 틈틈이 지역 대학들과 지자체를 찾아다니며 말 산업과 관련 인재 육성의 필요성에 대해 역설했다. 그 결과 성덕대학 재활승마학과, 서라벌대 마사과, 포항대학 마사과, 상주 용운중'고 말과 등 지역내 대학과 고교에 말 관련 학과가 속속 생겨났다. 지난해에는 경북대에 말의학연구소를 설립하기도 했다. 지역내 말 연구와 말 산업 육성을 위한 씨를 뿌리고 물을 준 셈이다.

조 교수가 뿌린 씨는 최근 결실을 앞두고 있다. 영천 경마장이 2016년 개장을 앞두고 있고 말의학연구소 역시 말 전문 인력 양성 교육기관으로 지정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지역에서도 말 산업 육성과 인력 양성에 투자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경북도 역시 경마공원 유치에 발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조 교수는 경쟁 지자체들로부터 마사회 출신의 '스파이'라는 지적까지 받으며 말 인프라 구축에 앞장서고 있다. 마사회에 근무한 경력을 활용해 말 산업과 관련된 여러 정보를 경북도와 대학들에 은밀히(?) 전달했기 때문이다.

◆말은 내 운명

"어릴 때부터 가축에 대한 관심이 컸어요. 시골에서 유년기를 보낸 탓에 자연스레 소나 개 등 가축들에 대한 기억이 남다를 수밖에 없지요." 전형적인 농촌마을인 경남 거창에서 자란 조 교수에게 가축은 식구나 다름 없었다.

"어린 시절 집안 일을 돕고 소에게 풀을 뜯어다 주고 닭에게 줄 개구리를 잡으러 다니는 것이 일과였어요. 가축(家畜)이란 말의 어원처럼 늘 곁에 두고 가깝게 지내다보니 동물과 친할 수밖에 없었지요." '수의사가 되어 동물들과 평생을 함게 하겠다'는 다짐도 이때부터였다. 고교를 졸업하자 의대에 진학하라는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수의학과를 선택했다.

말과의 인연은 1985년 한국마사회에 수의사로 입사하면서부터다. "입사 당시 22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했을 때만 해도 말보다는 소나 개가 더 좋았습니다. 그러나 입사 후 5년간 아픈 말들을 돌보면서 정이 들었고 말의 매력에 푹 빠졌습니다." 그러나 치료 방법에 한계를 느끼고 수의학을 더 공부하기로 했다. 야간 진료를 위해 꼬박 밤을 세우는 일이 잦았지만 경북대에서 말 관련 연구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내에서는 최초의 말 관련 박사다. 이어 일본 경주마이화학연구소로 유학을 갔다. 말과 관련된 다양한 수의학을 배운 후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국내 최초로 말유전자 감정법을 도입하는 등 최고의 마의(馬醫)가 됐다.

말의 매력은 무엇일까? 그는 주저없이 변덕이 없는 우직함을 꼽았다. 잔머리를 쓰지 않는 솔직함도 매력이라고 말했다. "말은 사람이 노력한 만큼 보답을 주는 동물입니다. 그리고 말에서 떨어졌을 때 절대 밟지 않지요. 새침한 외모와는 달리 따뜻한 정이 있는 동물입니다."

◆말 달리자

요즘 들어 조 교수가 주변 사람들을 만나면 꼭 권하는 게 있다. 승마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승마를 시작했지만 어느새 승마 마니아가 됐다. "30분 말을 타면 온몸이 땀에 흠뻑 젖습니다. 보기와는 달리 그만큼 운동량이 많지요. 하체 힘도 튼튼해져 격무에도 끄떡없어요. '애마 부인'(영화) 시리즈가 나온 게 다 이유가 있습니다." 요즘도 틈만 나면 어김없이 말 등에 오른다.

그는 말을 통해 신뢰를 배웠다고 했다. "말을 탈 때는 교감이 중요해요. 자신이 타고 있는 말에 대한 깊은 신뢰 없이는 승마를 즐길 수 없으니까요. 특히 말은 믿음과 신뢰를 형성할 수 있는 몇 안되는 똑똑한 동물입니다."

승마와 함께 권하는 것은 말고기 먹기다. "말고기는 영양이 풍부하고 미용에 좋아요. 웰빙으로 따지면 쇠고기보다 한 수 위라고 할까요. 다만 지역에는 말고기를 파는 식당이 없어서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식용에 맞는 품종 개량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말은 1년에 새끼를 한 마리만 낳아요. 버릴 게 없는 소와 달리 식용가능한 부위도 몸무게의 40%에 불과합니다." 비육마를 위한 품종 개량이 절실한 이유란다.

인터뷰 말미 조 교수에게 말춤을 선보일 수 있냐고 깜짝 제안을 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거절했다. 그러나 취재진의 끈질긴 권유에 마지못해 말춤 포즈를 취했다. 말에 대한 열정과 순수함이 묻어났다.

최창희기자 cchee@msnet.co.kr

사진'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조길재는?=경남 거창에서 태어나 거창중'고교를 졸업했다. 1985년 경북대 수의학과를 졸업하고 1990년 한국마사회에 입사했다. 1995년 국내 최초로 말에 대한 연구로 경북대 수의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5년 경북대 수의학과 교수로 부임했고, 현재 대학 부설 말의학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2001년 말 관련 연구 성과를 인정받아 정부로부터 신지식인에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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