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수석코치서 2005년 사령탑을 맡은 선동열(현재 KIA) 감독은 빈약한 마운드 보강에 집중했다. 홈런과 장타를 뻥뻥 날리던 팀컬러는 마운드로 급격하게 중심 이동을 했다. 특히 불펜에 많은 투자를 한 선 감독은 이기는 경기를 확실히 잡는, 이른바 '지키는 야구'로 승승장구했다. 2005년과 2006년 삼성은 불펜 야구, 지키는 야구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키며 한국야구를 평정했다. 부임하자마자 한국시리즈 2연패 감독이 됐지만 그는 손에 든 채찍을 놓지 않았다.
2007년 준플레이오프서 한화에 패한 뒤 선 감독은 세대교체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기 시작했다. 그해 10월 삼성은 이선희, 박흥식 코치와 재계약을 포기하고 선수 16명을 방출하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했다. 이 중에는 김종훈과 김대익 등 아직은 활약할 수 있는 고참 선수들도 포함돼 있었다. 구단도 선 감독의 세대교체 방침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당시 김재하 단장은 "내년 시즌엔 1군의 절반 정도가 새로운 인물들로 채워질 것이다"며 당장의 열매보다는 미래를 위한 씨 뿌리기에 팔을 걷어붙였다.
2004년 시즌을 마친 뒤 심정수와 박진만 영입을 끝으로 FA 시장에서 발을 뺀 삼성은 본격적으로 팀 내 유망주 육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필요한 전력을 외부에서 조달하는 데 아낌없는 투자를 했던 삼성은 '돈 삼성'의 이미지를 벗고 다소 더딜 수 있는 길을 택했다.
2005년 대졸 신인이던 오승환을 중간계투로 활용하다, 마무리 권오준이 팔꿈치 통증을 호소하자 과감하게 마무리로 돌린 선 감독은 권혁과 정현욱, 안지만 등의 조련에도 힘을 썼다. 마운드 정비가 끝나자 선 감독은 타선에 눈을 돌렸다. 묵묵히 땀을 흘리며 껍질을 까고 나올 힘을 응축하고 있던 유망주들을 본 그는 이들이 경험만 보탠다면 앞으로 삼성을 이끌 주축선수가 될 것임을 자신했다.
2007년 시험 가동했던 채태인과 경찰청 소속으로 2군 북부리그서 타격 3관왕을 차지한 최형우, 2004년 1차 지명을 받은 뒤 군 복무를 마치고 팀에 복귀한 박석민은 선 감독의 세대교체 방침에 따라 2008년부터 본격적으로 1군 무대에 서게 됐다.
보스턴 레드삭스를 거쳐 해외파 특별지명을 통해 삼성에 입단한 채태인은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한 뒤 무서운 성장속도를 보이고 있었다. 방출의 아픔을 딛고 다시 방망이를 움켜쥔 최형우는 선 감독의 따뜻한 시선에 웅크렸던 몸을 펼 기회를 잡았다.
입단 후 2년 동안 타율 0.173 1홈런 7타점이라는 실망스러운 성적을 기록한 채 상무에 입대, 2007년 시즌 타율 0.345 101안타 22홈런 75타점(2군 북부리그)으로 일취월장한 박석민도 1군 무대 시험대에 올랐다.
허승민, 우동균, 최원제 등 신인선수들도 1군 무대에서 뛸 수 있다는 가능성이 열리자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그러나 선 감독의 실험은 팬들로부터 후한 점수를 받지 못했다. 2008년 정규시즌을 4위로 마감하며 포스트시즌에 턱걸이한 삼성은 준플레이오프서 부산 갈매기 돌풍을 일으킨 롯데를 사뿐히 제압했지만 플레이오프서 두산에 2승4패로 무릎을 꿇으며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했다.
2009년, 삼성은 만년 1.5군으로 평가받던 강봉규, 신명철이 주전으로 성장한 모습과 젊은 타자들의 경험 축적이라는 소득을 얻었으나 12년 연속으로 이어오던 포스트시즌 티켓을 받지 못했다. 정규시즌 5위. 늘 보너스처럼 가을야구를 즐겨왔던 삼성 팬들은 선 감독이 앞서 이룬 결과는 아랑곳없이 무료한 가을을 보내게 된 데 대한 분풀이를 쏟아냈다.
선발투수가 5회까지 이기는 상황만 만들어놓으면 불펜을 가동, 승리를 굳히는 지키는 야구는 팬들에게 승리의 기쁨을 안겨줬으나 밋밋한 타격라인은 팬들의 입맛을 맞추기엔 부족했다. 이기는 경기보다 지는 경기가 많아지자 주변에서 외압 아닌 외압이 구단을 향했다.
하지만 삼성은 2009년으로 계약이 끝난 선 감독을 재신임하며 그에게 다시 5년이라는 시간을 보장해줬다.
세대교체 과정에 있었던 삼성은 될성부른 재목들을 찾았고 또 그들이 노쇠한 1군들의 공백을 메울 만큼 실력을 향상시켰지만, 평가는 '약방의 감초' 정도로 머물렀다. 팬들은 대형스타의 부재를 아쉬워했다. 2008~2010년, 삼성은 3년 연속 단 한 명의 골든글러브 수상자도 배출하지 못했고 또 같은 기간 타격 부문에서도 타이틀을 하나도 거머쥐지 못했다. 1군과 2군의 간격이 좁혀졌지만 팬들이 바라는 이승엽과 같은 1군 스타급 선수는 없었다.
"명성보다는 실력이 중요하다"고 확실히 선을 그은 선 감독은 "결과는 감독인 내가 진다"며 당면한 세대교체라는 확실한 목표를 수정할 마음이 없었다.
선 감독은 개인통산 최다안타'최다홈런 등 공격 부문서 신기록을 써가던 프랜차이즈 스타 양준혁을 사실상 전력 외로 분류하면서 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양신'은 팀에서 설 자리를 잃게 되자 2010년 시즌 후반 결국 은퇴를 선언했다.
재계약 첫해인 2010년, 선 감독은 젊은 선수들을 주축으로 정규시즌을 2위로 마감했으나 한국시리즈서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 끝에 SK에 0승4패로 완패를 당한 뒤 지도력에 의문부호가 붙게 되었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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