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대구 북구 노원동의 한 병원. 설금자(가명'49'여) 씨가 왼팔에 붕대를 친친 감은 채 누워 있었다. 전날 왼쪽 팔꿈치와 왼쪽 손목이 끊어질 듯 아파 병원을 찾았다가 팔꿈치에는 염증, 왼쪽 손목은 손목터널증후군이란 진단을 받아 수술을 받은 것.
그런데 설 씨가 이미 앓고 있는 병은 섬유근육통, 베체트병 등 어림잡아 10가지 정도나 된다. 여기에다 병이 두 개 더 추가됐다. 설 씨는 "너무 참기 힘든 고통 때문에 우선 수술을 받기는 했지만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며 "잠시도 끊이지 않고 찾아오는 관절 하나하나의 고통에다 수술에 따른 병원비와 생활비 등 때문에 밤잠을 설친다"고 하소연했다.
◆섬유근육통, 베체트병, 알츠하이머… 병, 병, 병
설 씨가 앓고 있는 병 중 설 씨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섬유근육통과 베체트병이다. 이 두 개의 병 때문에 설 씨는 온몸으로 통증을 감내해야 한다.
설 씨는 "온종일 아픔이 그치지 않는다. 마치 누군가가 바늘 한 줌을 들고와서 내 몸에다 무자비하게 꽂아대는 듯한 고통"이라고 말했다. 고통이 심한 탓에 설 씨는 온종일 집에만 있을 수밖에 없다. 움직인다고 해봐야 통증이 약간 덜할 때 동네 슈퍼 겨우 가는 정도다.
지난해 겨울 설 씨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픈 몸으로 폐지를 줍다가 무리하게 몸을 쓴 탓에 결국 손목과 팔꿈치에 만성적인 통증을 얻게 됐다. 왼쪽 손목은 조금이라도 무거운 것을 들면 힘을 줄 수 없어 떨어트리기 일쑤였다.
어지간한 진통제는 고통을 줄여주지 못해 병원에서 마약성 진통제를 처방받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게다가 올 초에 자신이 초기 알츠하이머병에 걸렸다는 사실까지 알게 돼 큰 충격을 받았다.
"언제부턴지 오늘이 며칠인지, 무슨 요일인지 기억이 안 나더라고요. 그리고 애들한테도 내가 무슨 말을 하긴 했는데 뒤돌아서면 기억이 안 나고요. 결국 봄에 병원을 찾았다가 알츠하이머 초기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설 씨에게 이런 고통이 찾아온 것은 19년 전 둘째 아이를 낳고 나서부터였다. 둘째 아이를 출산한 뒤 자궁에 혹이 생기고 출혈이 시작됐다. 원인은 자궁근종. 결국 10년 전 자궁을 들어내는 수술을 할 수밖에 없었고, 그 후부터 온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섬유근육통과 베체트병도 수술 후 남편과의 불화와 생활고로 인한 스트레스로 면역력이 떨어지면서 생긴 것이었다.
◆억척스러웠던 삶, 그러나 생긴 건 또 다른 병뿐
설 씨는 현재 남편과 이혼한 뒤 자녀와 함께 살고 있다. 정신장애를 가진 남편과 생활고 때문에 더는 결혼생활을 유지할 수 없었던 설 씨는 지난해 이혼을 했다. 이혼하기 전에도 결혼생활은 너무나 힘겨웠다. 1989년 중매를 통해 만난 남편은 만날 당시만 해도 대학을 나온 번듯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결혼 후 얼마 되지 않아 남편에게 말 못 할 마음의 상처가 있고, 그것이 남편을 온전한 정신으로 살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남편은 결혼 후 집에 돈을 벌어 가져다준 적이 없었어요. '마음의 병이 깊어서 그런 것'이라고 남편을 이해하려고 했지만 한계가 오더군요. 마음의 문도 걸어 잠가버린 남편에게 더는 기댈 수 없어 결국 이혼을 했지요."
이 때문에 설 씨가 대신 가정을 꾸려야 했다. 설 씨는 한 보험회사에 보험설계사로 취직해 대구 전역을 발이 닳도록 뛰어다녔고 부업으로 시골에서 농작물을 떼어 와 직접 팔기도 했다. 어떻게든 가정을 꾸리기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둘째 아이를 낳은 뒤 얻은 갖가지 병들 때문에 더는 일할 수도 없었다.
결국 대출과 신용카드로 생활비를 마련할 수밖에 없었고 빚은 점점 불어나 결국 지난해에는 개인회생을 신청했다. 설 씨는 "개인회생 신청을 한 뒤 '가만히 있다가는 정말 굶어 죽겠다'는 생각에 지난해 이맘때쯤부터 폐지라도 주워 팔려고 돌아다녔다"며 "그때 무거운 짐들을 들다 무리해 결국 손목, 팔꿈치에 통증이 가실 날이 없었고, 수술까지 받게 됐다"고 말했다.
◆애들 대학도 보내야 하는데'''
설 씨는 대학생 아들과 올해 수능을 친 고3 딸이 대학을 마치기 전까지는 맘 편히 눈을 감을 수가 없다고 했다. 올해 초 제대한 아들은 복학했지만 등록금 마련을 위해 내년에 휴학을 고민 중이다. 학자금 대출도 두 번이나 받은 상태에서 더는 빚을 늘릴 수 없기 때문이다. 설 씨는 "아들의 체력이 좋지 않아 힘든 일을 잘 못 하는데 혼자 어떻게든 대학등록금을 마련해 보겠다고 하니 행여 몸에 탈이나 나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대학에 진학해야 하는 딸이다. 한 대학의 수시전형에 합격했지만, 입학금과 앞으로의 등록금 마련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게다가 딸이 대부분 살림을 도맡아 하는데다 설 씨 병간호를 해 줄 사람이 없어 결국 딸이 어머니 옆을 떠날 수 없는 상태다.
지난해 받은 개인회생신청이 받아들여져 설 씨는 한 달에 20만원씩 5년 동안 빚을 갚아나가야 한다. 그동안 설 씨가 진 빚이 1천만원이 넘고, 아들이 빌린 학자금대출금 1천만원도 설 씨에게는 부담이다. 기초생활수급대상자에게 지급되는 정부보조금 70만원으로 살아가기에는 너무나 삶이 팍팍하다.
설 씨는 아픈 몸 때문에 '자살'과 같은 극단적인 생각도 많이 했다. 너무 고통스럽다 보니 의사에게 "차라리 암에 걸렸으면 이만큼 고통스럽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맘에 없는 말을 하기도 했다. 설 씨는 "몸의 고통 때문에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게 더 고통스럽다"며 "희망이 안 보인다"고 답답한 마음을 털어놨다.
알츠하이머병 초기인 설 씨는 자식들이 대학을 졸업하기 전까지 이 병이 더 깊어지지 않기를 기도한다. 설 씨는 "애들이 대학을 졸업해 밥벌이를 하는 모습까지 보는 게 소원"이라고 했다.
이화섭기자 lhssk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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