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를 횡단했던 실크로드 여행도 어느덧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대구와 자매결연 도시이며 카자흐스탄 제2의 도시인 알마티시를 통해 귀국길에 오르기로 했다. 알마티시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은 많은 역사자료를 수집 전시하고 있어 평원을 누비며 살아온 유목민의 역사를 알 수 있다. 이곳을 방문한 큰 목적은 유명한 '황금인간'을 보기 위해서였다. 한반도의 황금문화 특히 신라금관과의 연관이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금은 시간이 지나도 거의 변하지 않기 때문에 고대 왕들은 종종 황금으로 자신을 감싸면 영생할 것으로 기대한 모양이다. 몸 전체를 황금으로 만든 옷으로 감싼 황금인간이 고분에서 출토됐다. 금은 영생과 부의 상징이자 세계사 변동과 교류의 중심이 되었던 금속이다. 그리고 황금은 고대 유라시아 초원과 한반도를 이어준 가교이기도 했다.
1969년 카자흐스탄 과학아카데미 아키세프 교수는 알마티시 동쪽에 있는 이시크 고분을 발굴하던 중 황금조각을 몸에 두르고 묻혀 있던 한 유구의 존재를 확인했다. 그것은 기원전 4세기경 스키타이의 한 부족인 사카족 문화권에 속하는 고분으로 한 귀족 청년이 잠들어 있었다. 4천여 장이나 되는 황금조각으로 옷을 지어 주검에 입혔기 때문에 황금인간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이 발굴은 고고학계를 놀라게 하는 세계적 발견이 됐다. 발굴 현장 부근에는 약 60여 기의 고분이 있었으나 현재는 30여 기가 남아있고 그나마 거의 도굴되었다.
황금인간은 중앙 묘실이 아니라 측실이었던 관계로 도굴을 면했다고 한다. 1년에 걸쳐 발굴이 진행됐는데 기타 부장품으로 약 4천 점의 황금유물도 함께 나왔다. 알타이산맥 일대의 스키타이인 고분을 발굴하기 위해 많은 해외 역사학자들도 연이어 연구에 참여했다. 20여 기의 무덤에서 발굴된 유골 중 상당수는 말'소지품과 함께 묻혀 있었는데 냉동 미라 상태여서 비교적 형태가 남아있었다. 한 고분에서 나온 여성의 주검은 상태가 너무 깨끗해 '얼음공주'로 명명되기도 했다.
이들 고분군의 무덤 구조와 유물들은 그 성격으로 미루어 고대 신라의 '적석목곽분'의 원류로 추정되고 있다. 또 그곳에서 발견된 암각화는 우리나라 울주군 천전리 암각화나 반구대 암각화와도 유사성을 보이며 나무에 달아놓은 천조각 등 한반도의 샤머니즘과 비슷한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그 후 실물크기로 복원된 황금인간은 한국과 일본을 비롯한 해외 이동전시를 통해 스키타이 문명의 놀라운 황금 공예기술을 세계 각지에 소개했다. 황금인간의 이미지는 현재 카자흐스탄의 국가 상징 문양으로 되어 있다.
황금인간의 세부장식품으로 새겨져 있는 나무, 새 모양 장식이나 머리 관 부분과 각종 조임쇠 장식 등에 대해 학자들은 신라금관이나 다른 황금유물과 거의 똑같다고 한다. 금관에 나타나는 나뭇가지형의 모양새는 알타이 주변과 중앙아시아 수렵민족의 신앙적 상징과 거의 동일하다. 신라는 금관 등 황금유물에서 나타나듯 아시아 대륙 동쪽 끝에서 이 황금문화의 전성기를 누렸다고 할 수 있다. 신라의 금관은 중앙아시아나 알타이, 몽골 만주지역에 나타난 여러 형태 금관의 아름다운 요소들을 모두 소화해내고 추상화하여 가장 아름답게 예술적으로 승화한 것이다. 세계 현존하는 여러 금관 중 7개나 만들어낸 '금관의 나라'로 자리매김했었다. 국립경주박물관의 금세공 유물의 찬란함에서 신라는 황금의 왕국임을 알 수 있다.
기원전 5세기부터 기원 후 5, 6세기경까지 약 1천 년 동안 알타이산맥을 중심으로 유라시아 대륙 동쪽에서 서쪽으로 광범위한 황금문화대가 형성되었다. 당시 흉노는 중국 한나라와 조공관계를 맺고 다양한 물자교류를 하고 있었다. 이 황금문화의 전파자는 스키타이와 흉노를 비롯한 유목기마민족들이며, 그 통로는 다름 아닌 알타이산맥에서 동서로 뻗어나간 초원 실크로드다. 이른바 당시의 스텝로드, 즉 실크로드의 북쪽 루트는 황금의 초원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초원길 서부지역은 스키타이, 알타이산맥 넘어 동부지역은 흉노가 장악하고 있었다. 그 후 한나라의 멸망과 동아시아 기마민족 대이동의 와중에서 신라에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고 있다.
한반도는 실크로드 3대 간선로인 오아시스로, 초원로, 해로 모두에 연결되어 있었다. 일찍부터 오아시스 육로로 연결되었고 3국 시대에는 신라 금성으로부터 로마까지 이어진 것이다. 신라문화는 토착 문화를 바탕으로 하고 대륙문화에 중앙아시아'로마 문화까지 수용하여 융합시킨 하나의 복합적 문화라고 할 수 있다. 스키타이는 인류에게 실로 풍부하고 값진 문화유산을 남겨놓았다. 그 가운데 으뜸가는 것이 단연 신비의 경지에 이른 황금공예였고 그 진수가 황금인간과 신라 금관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글'사진: 박순국(전 매일신문 편집위원) sijen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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